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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다 한 번 이상 와본 도시 경주를 두고 '도시 전체가 유적의 보고'라 말한다. 주변이 온통 유적이긴 한데, 그중 '경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큰 고분군들이다. 신분상 분명 왕족의 무덤으로, 왕릉일 가능성도 있는 옛 신라시대 무덤들이다. 지난 2일 고분들을 둘러보기위해 이곳을 찾았다. 출발지는 경주의 관문인 고속버스터미널 관광안내소로 잡았다. 10여분 정도 걸었더니, 고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경주 고분군 경주 고분군
경주 고분군경주 고분군 ⓒ 김환대

고분들이 경주시 노동동과 노서동에 있어서 예전에는 노동동 고분군, 노서동 고분군이라고 불렸으나 현재는 '사적 제512호 경주 대릉원 일원'이 공식 문화재 명칭이다. 그러나 아직도 현장에 있는 문화재 안내문은 수정되지 않았고, 아직 옛 명칭으로 부르는 것이 편하다.

노동동·노서동 고분군은 길을 마주하고 도로로 갈라져 있다. 전세계적으로 발견된 10개의 금관 중 6개가 경주 신라시대 고분군에서 나왔다. 특히 노동동와 노서동에서 3개의 금관이 발굴되었는데 금관총, 금령총, 서봉총이다. 위치와 발굴 이야기를 듣고 있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노동동 고분군은 가장 커다란 무덤인 봉황대를 비롯해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식리총과 금령총이 있다.

노서동 고분군 안내문 노서동 고분군 안내문
노서동 고분군 안내문노서동 고분군 안내문 ⓒ 김환대

노서동 고분군에는 금관이 처음으로 발굴된 금관총, 1926년 스웨덴의 황태자 구스타프 아돌프가 발굴에 참여한 서봉총이 있는데 서봉총은 스웨덴의 가차인 서전(瑞典)중 '서'자와 금관에 새겨진 '봉(鳳)'자를 합쳐 지은 이름이다.

노서동 고분군 일대 노서동 고분군 일대
노서동 고분군 일대노서동 고분군 일대 ⓒ 김환대

1946년 해방 이후 우리나라 최초로 중앙박물관에서 발굴한 무덤인 호우총이 있다. 호우총에선 '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우십' 명문 글자가 적힌 호우가 출토되었는데 이는 광개토왕 사후 3년 후인 415년 장수왕이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서동 고분군 노서동 고분군
노서동 고분군노서동 고분군 ⓒ 김환대

호우총 호우총
호우총호우총 ⓒ 김환대

이외에도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돌방형식의 무덤 3기와 발굴되지 않은 고분들이 주변에 있다.

노동동 고분군 노동동 고분군
노동동 고분군노동동 고분군 ⓒ 김환대

노동동 고분군은 3기 중 규모가 작은 금령총, 식리총은 발굴 조사되었고, 일명 봉황대(鳳凰臺)라고 불리는 신라시대 무덤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이 고분은 아직 발굴되지 않았다.

봉황대 봉황대는 가장 큰 고분이다.
봉황대봉황대는 가장 큰 고분이다. ⓒ 김환대

산과 같은 무덤 크기인 봉황대는 신라 어느 왕의 무덤임에는 틀림 없을 것으로 추정하나 그 주인은 아직 알지 못한다. 봉황대에서는 현재 몇 그루의 오래된 나무들이 계절의 바뀜을 알려주고 있다.

한편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이 이곳 주변 종각에 있었는데, 당시 성문을 열고 닫을 때 정로를 알릴 때 사용 되었으나 일제강점기 시대에 구)박물관으로 옮겨갔고, 지금은 국립경주박물관에 다시 옮겨져 전시되어 있다. 이 봉황대는 몇 년 전 경주에 눈이 엄청 온 날 한 사람이 이 곳에서 스노보드를 즐기는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화제를 일으킨 바로 그곳이다.

금령총 금령총
금령총금령총 ⓒ 김환대

봉황대 바로 앞 남쪽에 평평한 모양을 하고 있는 형태의 고분이 금령총이다. 이곳에서는 금관과 금귀고리, 목걸이, 허리띠 등 많은 유물이 수습되었는데, 금관총에 이어 두 번째로 출토된 금관(보물 제338호)에 구슬이 달려 있어 이 무덤을 '금령총'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식리총 식리총
식리총식리총 ⓒ 김환대

바로 옆에 있는 식리총은 현장에 식이총라고 표지석에는 쓰여져 있다. 출토 유물이 많이 나왔는데 무덤 이름의 유래가 된 금동제 신발은 길이가 32.7㎝이며 3개의 금동판을 조립하여 만들었고 주목되는 유물로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다.

출토유물로 금제관수식, 금귀고리, 유리구슬목걸이, 은제 허리띠, 은팔찌, 마구류, 청동제 용기류, 금은장환두대도 등의 무기가 있다. 이 모두 우리나라 고분 발굴 역사에 있어서는 아주 중요한 고분군들이다.

노동 노서 고분군이 있는 도로 노동 노서 고분군은 도로로 나누어져 있다.
노동 노서 고분군이 있는 도로노동 노서 고분군은 도로로 나누어져 있다. ⓒ 김환대

늘 쉽게 주변에서 접할 수 있어 그냥 무심코 지나치는 경우가 많으나 한번 천천히 둘러보면 엄청난 숨은 이야기들과 역사적 사실들이 있어 역사 퀴즈나 현장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진행할 수 있을 듯하다.

경주를 많이 찾아도 이곳을 여유롭게 천천히 걸으며 둘러본 이들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혹 이곳을 찾는다면, 신라인들의 사상과 당시의 위대한 역사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봄 기운이 느껴지는 이대 경주를 찾으면 돈 안 들이고 신라의 역사를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경주고분군#봉황대#노동노서고분군#경주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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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문화유적을 찾아 답사를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구석진 곳에 우리문화를 찾아서 알리고 문화관련 행사를 좀 더 대중에게 보급하고자 하며 앞으로 우리문화재의 소중함을 일깨워 나아가려고 합니다. 괌심분야는 역사유적, 석조조형물과 민속,고건축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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