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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울산·경남의 총선 지형도가 온통 붉은 색(새누리당 상징색)으로 물들었다. 민주통합당의 상징색인 노랑은 부산 2곳, 경남 1곳에서만 외로운 섬으로 남았다. 통합진보당의 상징색인 보라색은 아예 자취를 감췄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은 1990년 3당 합당 이후 보수의 텃밭이었던 영남지역에 민주진보 세력의 교두보를 확보하겠다며 칼을 갈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넘지 못한 지역주의의 벽을 이번에는 넘겠다며 '정예 부대'를 배치했다.

부산 사상구에 도전장을 낸 문재인 후보와 문성근(북강서을) 후보를 중심으로 김정길 전 장관(부산 진을)과 김영춘 전 최고위원(부산 진갑), 최인호 부산시당위원장(사하갑)과 조경태 의원(사하을)을 한데 묶어 '낙동강 벨트'를 만들었다. 이곳을 진원지로한 야당 바람, '노풍'을 등에 업은 '문풍'을 경남의 김해와 양산, 울산까지 확산시키겠다는 전략을 짰다. 출사표를 던질 때만해도 목표는 최대 15석이었다.

 새누리당 박근혜 선거대책위원장은 7일 경남지역 총선 후보 지원유세에 나섰다. 박 위원장은 이날 오후 창원 한서병원 앞 광장에서 열린 유세에서 강기윤(창원성산).박성호(창원의창) 후보와 함께 연단에 올라 연설했다.
새누리당 박근혜 선거대책위원장은 7일 경남지역 총선 후보 지원유세에 나섰다. 박 위원장은 이날 오후 창원 한서병원 앞 광장에서 열린 유세에서 강기윤(창원성산).박성호(창원의창) 후보와 함께 연단에 올라 연설했다. ⓒ 윤성효

공들였지만 성적표는 최악... 야권 영남 의석수 반토막

하지만 야권은 영남 지역에서 16대 총선 이래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18대 총선에서 당시 민주당 2명, 민주노동당 2명 등 4석을 확보했던 야권의 의석수는 19대 총선에서 오히려 1석이 더 줄었다. 전국에서 가장 먼저 합의를 이룬 야권연대에 유력 대선 후보까지 앞세웠지만 '박근혜 바람'을 이기지 못한 셈이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부산에서는 문재인·조경태 후보 두 사람만이 살아 남았고, 경남에서는 민홍철(김해갑) 후보가 접전 끝에 새누리당 김정권 후보를 물리쳤다. 노무현 전 대통령 고향인 봉하마을이 있는 김해을(김경수 후보)과 노 전 대통령 비서관을 지낸 송인배 후보가 출마한 양산 등 나머지 지역에서는 전멸했다.

통합진보당의 성적도 뒷걸음질 쳤다. 18대 총선에서 당시 민주노동당은 경남에서 권영길(경남 창원을), 강기갑(경남 사천) 등 2명의 당선자를 냈지만 이번에는 단 한명의 당선자도 배출하지 못했다. '노동자의 도시'인 울산에서도 마찬가지다. 야권연대 전략지역으로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았던 남구을(김진석 후보)과 동구(이은주 후보)에서 모두 새누리당에 무릎을 꿇었다. 특히 재보선에서 조승수 의원이 당선됐던 북구마저 새누리당에 내줬다.

이로써 영남의 정치 지형도는 17대 이전으로 회귀하게 됐다. 야권은 지난 16대 총선에서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한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이 분 17대 총선에서는 민주당 조경태(부산 사하을), 김맹곤(경남 김해갑), 최철국(경남 김해을), 민주노동당 권영길(경남 창원을), 조승수(울산 북) 등 총 5석의 당선자를 냈다. 1988년 13대 총선 이래 사실상 처음으로 영남 지역주의의 벽에 균열을 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야권은 대선 참패 직후 치러졌던 18대 총선과 달리 신공항과 저축은행 파동, 지역 경제 침체 등으로 정부여당에 대한 민심 이반과 심판론이 비등한 상태에서 치러진 이번 총선에서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민주당 고위 당직자는 "사상 최악의 영남권 패배"라고 자인했다.

위기의 보수 총결집... 김용민 막말 파문도 영향

참패의 원인으로는 대선을 염두에 둔 보수의 총결집이 꼽힌다. 총선을 내주면 대선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는 보수의 위기감이 정권심판론과 야권의 인물론을 잠재웠다는 것이다. 민주당 핵심 당직자는 "이번 총선은 정치권도 유권자도 대선까지 염두해둔 선거였다"며 "위기 의식을 느낀 보수가 똘똘 뭉쳤다, 이들이 변화를 저지하기 위해 쳐놓은 마지막 바리케이드 하나를 치우지 못했다"이라고 아쉬워했다.

진보진영 관계자는 "야권연대로 새누리당과 1:1 대결을 펼치게 됐고 여기에 정권심판 바람까지 불면서 오히려 긴장을 늦춘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선거 막판 서울에서 몰아친 김용민 후보의 막말 파문도 야권의 힘든 싸움 중에 여권의 지지층 이탈을 최소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야권으로서 한 가지 위안 거리는 비례대표 정당 득표율과, 지역구 에서 야권 후보들이 얻은 득표율이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은 부산에서 31.8%, 경남에서 25.6%의 정당 지지율을 얻었다. 통합진보당도 부산 8.4%, 경남 10.5%, 울산 16.3%를 득표했다.(11일 새벽 4시 기준)

민주당의 경우 17대 총선에서 부산 33.7%, 경남 31.7%로 정점을 찍은 이후, 18대 총선에서는 부산 12.7%, 경남에서는 한 자리수까지 득표율이 추락했던 것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성과다.

후보들도 선전했다. 문성근(부산 북강서을) 후보는 45.2%를 얻었고 전재수(북강서갑) 후보는 47.6%를 얻는 등 낙선한 대부분의 후보들이 45%가 넘는 표를 얻었다. 불과 2000~3000여표 차 패배였다. 경남과 울산에서 낙선한 통합진보당 후보들도 40% 이상의 득표를 하는 등 새누리당 후보를 턱밑까지 쫓았다.

민주당 고위 당직자는 "막판 뒷심이 부족했다, 고비에서 박근혜 바람을 넘지 못했다"며 "비록 의석수는 반토막이 났지만 정권에 대한 심판 의지와 변화에 대한 욕구가 확인된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위원장과 문재인 후보의 대선 전초전으로 치러졌던 영남권의 성적은 총선 이후 펼쳐질 대권 후보 지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4.11총선에 나선 민주통합당 김경수.민홍철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22일 오후 김해민속5일장을 찾았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4.11총선에 나선 민주통합당 김경수.민홍철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22일 오후 김해민속5일장을 찾았다. ⓒ 윤성효

박근혜 수도권 확장력 부족 재확인, 문재인은 영남 확장력에 물음표

박근혜 위원장은 총선 선거 운동 기간 동안 부산 지역을 5번이나 찾았다. 전국적으로 가장 많이 방문한 지역이 부산이다. 결국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막지는 못했지만 심상치 않았던 지지층 이탈을 적극 막아냄으로써 텃밭을 지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후 당 쇄신과 공천 작업을 이끌어 단독 과반의석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기 전 100석도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뚫어낸 것이다. 특히 영남은 물론 강원에서 완승을 거두고 충청에서 선전함으로써 박근혜의 영향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는 평가다. 때문에 여권 내에서의 '박근혜 대세론'은 더욱 견고해 질 수밖에 없게 됐다. 

단, 수도권에서의 참패는 박 위원장에게 뼈아픈 대목이다. 박 위원장은 선거일을 이틀 앞둔 9일부터 48시간 수도권 집중 지원유세에 나서는 등 접전지에 공을 들였다. 하지만 수도권의 정부·여당 심판 바람을 막지 못했다. 그동안 박 위원장의 고질적인 약점으로 지적돼 왔던 수도권과 20~40대에서의 확장력 부족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는 점은 대권 행보에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

"국회의원 한번 하려고 정치를 한 게 아니다"라며 대권 도전 뜻을 밝혔던 문재인 후보는 '나 홀로 생존'이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사상구에서 박근혜 위원장이 4번씩이나 지원한 손수조 후보에게 패배를 안겼지만 부산·경남에서 목표로 했던 '야권 벨트' 확보에 실패하면서 대선 주자로서 영남 지역의 확장력에 물음표가 달리게 됐다.

문 후보는 특히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등 야권이 새누리당에 1당 자리를 내주면서 야권 전체가 대안 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한 게 뼈아픈 대목이다. 민주당이 지도부 퇴진 문제 등으로 내홍에 휩싸일 경우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다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당 내에서는 지역 기반이 겹치는 김두관 경남지사의 거센 도전도 예상된다.


#박근혜#문재인#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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