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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4월 둘째 주 일요일은 우리 집안 가족들이 선산(先山;조상의 무덤이 있는 산)에 모여
세 곳에서 32기(基)에 제사를 지내는 날이다. 제사는 열 집이 매년 돌아가면서 제물(祭物)을 준비한다.

올해는 의정부 작은집 차례인데 작은 어머니가 사정이 있어 직접 제사상 준비를 못한다며 제사상 준비를 대행해주는 업체에 맡겼다. 30여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어머니를 비롯해서 몇몇 친척 분들이 걱정을 했지만 어차피 연세가 드시면 당신들도 그렇게 해야 되지 않겠냐며 어떻게 준비하는지 지켜보자고 했다. 그런데 걱정은 현실로 나타났다.

 17기를 모시는 제사상이다.
 17기를 모시는 제사상이다.
ⓒ 이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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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사 순서에 따라 제사를 지내고 있는 가족들
 제사 순서에 따라 제사를 지내고 있는 가족들
ⓒ 이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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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제물은 1회용 그릇에 담겨 있었다. 심지어는 제삿밥과 국도 그랬다. 게다가 제삿밥에 꽂는 수저는 프라스틱 수저고 젓가락도 나무젓가락이다.

제사 순서 중에 계반삽시(啓飯揷匙 ; 밥그릇의 뚜껑을 열고 수저를 꽂는 것) 때 밥그릇 뚜껑을 열어 두었다가 철시복반(撤匙復飯 ; 숭늉 그릇에 있는 수저를 거두고 제삿밥 그릇을 덮는 것)에 열어 두었던 뚜껑이 서로 바뀌면 안 된다. 그런데 제사를 지내는 동안 프라스틱 그릇 뚜껑이 바람에 들썩이고 수저와 젓가락은 제사상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또 제사상에 바나나를 올린 것도 처음이다.

다행이 제기(祭器 ; 제사에 쓰는 그릇)를 가져가서 조금이라도 격식(?)을 갖췄지만 조상님들에게 면목이 없고 동생과 자식 조카들에게는 부끄러웠다. 90만 원을 쓰고도 대충 지낸 제사. 형식적인 제사를 지낸 것 같아 화가 났다.

가장 당황스러워하는 분은 어머니셨다. 지금껏 모든 제사는 어머니가 제삿장을 보셨다. 그런데 작년에 두 번의 뇌경색 치료와 심장 수술로 당신 몸 가누기도 힘들어, 어쩔 수 없이 주문해서 차린 제사상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제사 전에 미리 제물을 파악했어야 했다. 최소한 제삿밥과 국 수저 젓가락은 준비했어야 한다. 너무 안일한 제사 준비였다.

올해는 이렇게 모시고 내년에는 올해 부족한 것까지 더 정성을 드리자며 서로 반성을 하고 제사를 모셨다.

나는 귀신이 있어 제사를 지낸다는 것보다 매년 기일을 정해두고 함께 조상을 추모하며 가족들이 모여 오순도순 얘기할 수 있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 앉아 있는 작은 집 고모님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 앉아 있는 작은 집 고모님
ⓒ 이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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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사를 지내고 한 자리에 모여서 찰칵
 제사를 지내고 한 자리에 모여서 찰칵
ⓒ 이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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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 명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것이 쉽지 않다. 묘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아이러니지만 조상님들이 함께 좋아하실 것 같은 생각을 하며 앞에 모였다.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묘 앞에서 마치 살아 계신 것처럼 자리를 만들고 포즈를 잡는다.
사람들은 언젠가 무덤 속으로 간다. 시간이 빠르고 늦을 뿐이다.

지난해 여름. 눈물 속에 묻힌 당숙 묘지에도 연두색 잔디가 자리를 잡고 켜켜이 쌓여 있던 하얀 눈은 어디로 숨었는지 흔적도 찾을 수 없다. 산 벚꽃과 진달래꽃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다. 우리네 인생도 자연의 순리처럼 그렇게 변하고 있을 게다.

조상님들, 내년에는 우리가 정성을 다해 제사상 차리겠습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꼭 뵈러 올게요.


#이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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