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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연못 저 끝에 옥련사가 보인다.
아름다운 연못 저 끝에 옥련사가 보인다. ⓒ 정만진

안평면 소재지를 지나 3km 가량 북쪽으로 더 올라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왼쪽은 신평면 소재지를 향하고, 오른쪽은 왜가리 서식지인 중율리로 간다. 옥련사는 중율리 가는 길로 접어들면 바로 나타나는 삼춘(三春)리 안쪽 산속에 있다.

삼춘리 중 가장 큰 마을이 춘생(春生)이다. 본래 우리말로 '봄살이'라 불렀는데, 한자로 바뀌면서 그렇게 되어 버렸다. 1170년 '정중부의 난' 때 문신(文臣)들이 깊은 산중으로 피난을 오다 보니 이곳까지 닿아 봄[春]이 되도록 살았다고[生] 해서 그런 이름을 얻었다. 

삼춘리 중 제일 먼저 나타나는 집들이 절골이다. 마을 이름으로 보아, 이 집들 사이로 들어가 산까지 가면 옥련사가 있을 것은 너무나 뻔하다. 도로 왼편 절골에서 산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간다. 작은 연못이 나온다. 이 연못의 이름은, 처음 오는 사람도 짐작할 있는, '절골지'이다. 물론 본래는 절골지(池)가 아니라 '절골못'이었을 것이다.

 낚시 금지
낚시 금지 ⓒ 정만진
그런데 이 절골못은 보통의 그저 그런 작은 연못이 아니다. 옥련사(玉蓮寺)의 이름을 지어낸 연못이다. 절을 짓는 공사를 할 때 이 연못에서 옥구슬처럼 아름다운 연꽃들이 가득 피어나 사찰의 이름을 옥련사라 지었다고 한다.

연못은 지금도 여전히 아름답다. 둑에 올라 바라보면, 양옆으로 산자락을 끼고 세모꼴로 모여 있는 물은 맨 위 뾰족한 자리에 옥련사를 모시고 있다. 옥련사 절집 너머로 머리를 드러낸 천등산 정상도 물에 제 모습을 고스란히 비추고 있고, 푸른 하늘을 둥둥 떠가던 하얀 구름들도 목이 마른지 연못 속에 풍덩 뛰어들었다. '불자(佛子)들이 수시(隨時)로 방생(放生)을 하고 있으니 낚시는 금지'해 달라는 주지스님의 부탁말씀이 적힌 안내판이 세워져 있지 않다 하더라도, 절 바로 아래에 있는 이렇듯 맑고 고운 연못에서 물고기를 잡아먹겠다는 생각을 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옥련사 극락전과 그 앞의 백일홍. 아직 꽃이 피지 않았으나 만개하면 너무나 아름다울 것 같아 '그 때 다시 옥련사를 찾아오리라'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옥련사 극락전과 그 앞의 백일홍. 아직 꽃이 피지 않았으나 만개하면 너무나 아름다울 것 같아 '그 때 다시 옥련사를 찾아오리라'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 정만진

절 마당으로 들어오는 순간, '옥련사는 8월 말쯤에 와서 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조금 전 연못 물속에서 본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꿈틀거리는 용처럼 힘차게 가지들을 내뻗은 채 극락전 앞에 좌우로 서 있는 배롱나무 때문이다. 본래 겨울 배롱나무가 정결한 줄이야 진작부터 잘 알고 있었지만, 이처럼 가지들이 고우면서도 화려한 것은 처음 본다. 멀찍이 계시던 주지스님께서,

"옥련사는 이 배롱나무들이 꽃을 피울 때가 제일 멋이 있지요." 

하신다. 답사자가 그렇게 생각하는 줄을 어떻게 아셨는지 신기하다.

스님과 함께 극락전 안에 모셔진 목조(木造) 불상을 본다. 안내판은 유형문화재 355호인 이 불상을 '임진왜란 이전인 1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시기의 불교조각 연구에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지닌' 문화재라고 설명하면서 그 근거로 첫째, '곡선미 있는 신체에 통통하게 살이 오른 상호', 둘째, '정수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전형적인 육계(肉髻) 표현', 셋째, '가슴 아래까지 올린 군의(裙衣) 위에 양 어깨에서 내려오는 통견(通絹)의 가사는 가슴 아래로 내려와 복부 아래에서 한번 접혀져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양 무릎 사이로 부채꼴 모양으로 흘러내리고 있는 의습(衣褶)'을 들고 있다. 

 불상의 상호
불상의 상호 ⓒ 정만진
'곡선미 있는 신체에 통통하게 살이 오른 상호'의 '상호(相好)'는 무엇인가. '부처의 몸에 갖추어진 훌륭한 모양'을 뜻한다. 특히 '상'은 '몸에서 드러나게 잘 보이는 32곳'을 뜻하고, '호'는 '세밀하고 작아서 잘 드러나지 않는 80곳'을 가리킨다. 상호들이 완벽하면 그를 불신(佛身)이라 한다. 따라서 '곡선미 있는 신체에 통통하게 살이 오른 상호'가 임진왜란 이전 16세기에 제작된 불교조각의 특징 중 한 가지였다는 안내판의 표현은 당시 불상이 '신체에 곡선미가 있으면서 동시에 몸은 전반적으로 통통하게 살이 오른 모습'이었다는 말이다. (흔히 '상호'를 '얼굴'로 받아들이므로 '통통하게 살이 오른 상호'는 '통통한 얼굴' 정도로 해석해도 별 무리는 없다.)

'정수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전형적인 육계 표현'도 뜻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육계(肉髻) 때문이다. 육계는 불정(佛頂)이라고도 하는데, 불상의 머리 위에 상투처럼 솟은 살덩이를 말한다. 그러므로 '정수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전형적인 육계 표현'이 16세기 불교조각의 한 가지 특징이었다는 안내판의 말은, 당시에 만들어진 불상들에는 머리 꼭대기에 상투 모양으로 불쑥 솟은 살이 튀어나와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가 하면, 긴 문장에 어려운 한자어도 더 많이 들어 있는 마지막 근거는 답사자를 더욱 답답하게 만든다. '가슴 아래까지 올린 군의(裙衣) 위에 양 어깨에서 내려오는 통견(通絹)의 가사는 가슴 아래로 내려와 복부 아래에서 한번 접혀져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양 무릎 사이로 부채꼴 모양으로 흘러내리고 있는 의습(衣褶)'은 무슨 뜻인가?

 옥련사 불상, 유형문화재 355호이다.
옥련사 불상, 유형문화재 355호이다. ⓒ 정만진
이 어려운 불교 한자용어들을 쉽게 보통말로 바꾸면, '하의는 가슴 아래까지 올라와 있고, 스님들이 장삼 위에 걸쳐 입는 옷인 가사는 엉성한 비단으로 만들어졌는데, 어깨에서 배 아래로 내려와 한번 겹쳐진 다음 책상다리를 하고 있는 무릎 사이로 부채처럼 펼쳐져 흘러내린다' 정도의 뜻이다. 안내판은 그렇게 옷을 입히고 또 옷에 그렇게 주름을 잡는 것이 임진왜란 이전 16세기 불상의 특징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제는 '의성 옥련사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이라는 안내판의 길다란 제목이 궁금하다. 이는 극락전 안에 모셔져 있는 높이 132㎝, 좌우 무릎폭 93㎝ 불상의 이름이다. 그 중에서 '아미타'가 특히 궁금하다.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옥련사에 있는, 나무[木]로 만들어진[造], 앉아[坐] 있는 불상(像)까지는 쉽게 알 수 있는데,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는 무엇인가?

'아미타여래'는 대략 '아미타불과 같은[如] 길을 걸어 깨달음의 경지에 온[來] 사람' 정도의 뜻이다. 불상이 부처 그 자체는 아니니 '여래(如來)'를 뒤에 높임말로 붙였다고 보면 되겠다. 그렇다면 아미타불(阿彌陀佛)은 누구인가?

흔히 "나무아미타불"이라고들 한다. 이때 '나무'는 '귀의(歸依)'한다는 뜻이다. 즉, "나무아미타불"은 '아미타불에게 의지하겠습니다'하고 고백하는 말이다. 그래서 이를 염불(念佛)이라 한다. 마음[念]을 부처님[佛]께 밝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옥련사 극락전 전경
옥련사 극락전 전경 ⓒ 정만진
과거 세상에서 왕이었던 법장이 스님이 되어 사불(師佛) 세자재왕불을 만나 가르침을 받은 끝에 드디어 부처가 된다. 그 부처를 아미타불이라 한다. 아미타불은 지금 극락 세계에서 중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나무아미타불"의 염불을 되풀이하여 외는 것은 '아미타불님께 극락 세계에 가서 가르침을 받고 싶은 저의 마음을 고백합니다'하고 맹세하는 일이다.

이제 옥련사 부처님의 집이 '극락전'인 까닭을 알았다. 온갖 악귀를 물리치시는 위대(大)한 영웅(雄)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집[殿]이면 대웅전(大雄殿) 현판을 달았을 터인데, 극락으로 인도하는 아미타불을 모셨으므로 '극락전'이 되었구나. 끝없는[極] 즐거움[樂]의 세상에는 언제나[百日] 꽃이 붉게[紅] 피어 있을 터, 극락전(極樂殿) 앞에는 백일홍(百日紅, 배롱나무)이 좌우로 당당하게 자라고 있는 것이구나.

봉양면에서는 서원만 보았는데, 안평면에서는 절만 보았다. 세상에 같은 것은 없으며, '한 배에 난 자식도 아롱이 다롱이 다르다'고 했지만, 남북으로 맞붙어 있는 두 면도 이렇듯 다르다. 오늘, 세상에 같은 것은 없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의성여행#옥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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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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