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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사랑의 끝이 어떠할지 알면서도 무수한 사람을 만나 사랑을 나누고 그 끝에서 상처를 보듬게 된다. 그러면서 또 다른 사랑을 찾아 방황하고 애처로워하고 슬퍼한다. 하지만 사랑의 상처가 두려워 사랑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들은 모두 죽는 날까지 사랑의 뮤즈를 찾아 헤매는 영원한 나그네이다.

여행도 사랑과 같이,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고생과 수고로움, 그리고 끝자락에서 느끼는 허탈감 안긴다. 그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여행을 떠난다. 인생살이 자체가 길고 고된 여행이라고 하면서도, 그속에서 일상을 탈출하고픈 욕망에 짐을 챙겨 어디론가 떠나는 것이다.

무엇을 찾거나 얻으려는 목적을 가지고 떠난다면 그 여행 자체가 피곤하고 짐스러울 것이다. 그냥 떠나고 싶을 때 훌쩍 떠나 바람처럼 구름처럼 흘러 다니다가 오면 되는 것이다. 집 떠나 하게 될 고생이 두려워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

부산 김해공항에서 베트남 하노이를 거쳐 4월 9일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 도착하니 호텔 옆 메콩강변으로 저녁노을이 깔린다. 긴 여정의 피로도 잊은 채 호텔 라운지에 앉아 홉과 쌀을 섞어 만든 조금은 부드러운 듯한 "비어라오(Beerlao)"의 시원한 맛에 취하다보니 시간가는 줄 모르겠다. 강변의 야시장에서는 사람들이 늦은 시간까지 음악과 함께 북적인다.

메콩강을 사이에 두고 이쪽은 라오스, 강 건너는 태국이란다. 티베트에서 발원하여 미얀마·라오스·타이·캄보디아·베트남을 거쳐 남중국해까지 장장 4020㎞를 흐르는 메콩강은 인도차이나의 교통·생활상의 대동맥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엷은 황토빛의 메콩강 수면위로 낮게 물안개가 너울댄다. 아침인데도 낯을 씻지 않아 땟국물에 절은 듯한 강을 따라 간간이 부지런한 어부들이 기다란 목선을 타고 고기잡이를 하고 있다.

인구 약 49만 명의 비엔티안은 80여 개에 달하는 고대 불교사원이 있었으나 씨암(태국)의 침공으로 현재는 20개의 사원만 남아있다. 그 규모를 자랑하는 아침시장의 북쪽에 거대한 독립기념탑(충령탑)이 있다. 그리고 동북쪽 약 1km 지점에 금장식의 탓루앙(That Luang) 사원이 있다.

1566년 세타티라수(Scttathirath)왕이 건립한 것으로 탑에는 석가의 유발(遺髮)과 가슴뼈가 소장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라오스 국민들의 자존심인 탓루앙에는 성지순례를 하는 이들의 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탑 주변을 세바퀴 돌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무더운 날씨 때문에 한바퀴를 도는데도 힘에 겹다.

웅장한 탓루앙사원이 햇빛을 받아 라오스 국민의 자존심처럼 빛난다
▲ 탓루앙사원 웅장한 탓루앙사원이 햇빛을 받아 라오스 국민의 자존심처럼 빛난다
ⓒ 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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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밖으로 나오니 이방의 관광객들이 작은 둥지를 열어 어린 새를 방생한다. 그러나 겁에 질린 새는 날지 못하고 둥지 속에서 서성인다. 오랫동안 갇혀 지낸 새는 창공을 나는 자유마저 잊은 모양이다.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새를 잡아다가 다시 방생을 하는 것이 부처의 자비는 아닐 진데, 사람들의 상술이 부처의 자비마저 욕되게 한다.

시내 중심부에는 외견상으로는 다소 우중충한 세멘트로 조형된 독립기념탑인 빠뚜사이(Patuxay, 승리의 문)가 프랑스의 개선문처럼 서 있다.  라오스의 전사들의 기개를 기리기 위해 개선문 위에 사탑을 올려놓았다. 내부 계단을 통해 옥상 전망대까지 올라가니 비엔티안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 사방으로 잘 정돈된 넓지 않은 도시는 붉은 지붕의 낮은 건물사이로 녹지가 잘 형성되어 4월의 푸르름을 더한다.

약 27m 높이의 빠뚜사이는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시멘트 건축물로 지어져 시내 중심가에 있다
▲ 승리의 문 빠뚜사이 약 27m 높이의 빠뚜사이는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시멘트 건축물로 지어져 시내 중심가에 있다
ⓒ 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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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티안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북쪽으로 4시간 거리에 있는 방비엔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소금마을 '콕싸앗(Khoksaath)'에 들렀다. 동남아 유일의 내륙국인 라오스는 소금을 바다에서 얻는 대신 암염이 녹은 이곳의 지하수를 끌어올려 장작불을 피워 말린다.

30℃가 넘는 무더운 날씨에 무표정한 얼굴로 불을 지피는 아낙의 얼굴이 피로에 지쳐 보인다. 떠나오는 마을입구에서 조막손을 흔드는 어린아이들의 얼굴이 한없이 천진스럽다. 여기에서 생산되는 소금은 요오드 함량이 적어 갑상선에 좋다고 가이드가 설명을 곁들이며 기념으로 소포장의 소금을 한 꾸러미씩 안겨준다.

육지의 하롱베이 '방비엥'

방비엥은 비엔티안에서 100km 떨어진 소도읍으로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지역이다. 석회암 지역 특유의 병풍처럼 둘러선 산들이 쏭강과 어울려 '육지의 할롱베이'라 할만하다. 호텔에 들러 여장을 풀고 구경삼아 시가지로 나가보니 저녁시간에 걸맞게 카페며 식당마다 국적을 알 수 없는 관광객들이 자리를 메우고 앉아 이방의 정취를 즐기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여행자의 발길이 뜸한 오지였던 곳인데 해마다 여행자들이 증가하고 있단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난데없는 폭우가 뇌성과 함께 거칠게 퍼붓는다. 열대몬순 특유의 기후 때문에 쏟아지다가 금방 그친다고 한다. 비는 거짓말처럼 한 시간 정도 내리다가 그쳤다. 쏭강 상류에 석회암 동굴이 형성되어 있어 우리 일행은 튜브와 줄 하나에 의지해 줄줄이 동굴 속에 들어가 동굴탐험을 마치고, 마을을 관통해 흐르는 강을 따라서 카약을 즐겼다.

쏭강을 따라 관광객을 위한 방갈로가 즐비하고, 그 뒤로는 병풍처럼 산들이 둘러서 있다
▲ 방비엥의 전원풍경 쏭강을 따라 관광객을 위한 방갈로가 즐비하고, 그 뒤로는 병풍처럼 산들이 둘러서 있다
ⓒ 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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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 1조가 되어 카약을 타고 내려오는 강변에 아름다운 풍경들이 동양화처럼 펼쳐진다. 강변에서 빨래를 하거나 목욕을 하다가 마주치게 되는 주민들이 이방인의 반가운 인사에 수줍게 손을 흔든다. 강기슭 곳곳에는 연인 또는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낚시와 다이빙과 튜잉 등을 즐기고 있다. 원시의 자연 속에서 시름을 벗어놓고 여유를 즐기는 그들을 보니 낙원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할 수만 있다면 며칠쯤 이곳에 머물려 세사의 찌든 때를 벗고 싶다.

하지만 짜여진 일정에 맞춰 움직여야하는 패키지여행이다 보니 다음 여정에 따라 이동해야 한다. 시간과 비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되고, 여행사에서 미리 정한 코스를 밟으며 정해진 숙소와 정해진 식당에 우르르 몰려다니며 식사를 해야 하는 패키지여행이 편하기는 하겠으나, 여행의 묘미를 반감시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여행을 하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충분한 시간을 갖고 미리 여행지를 꼼꼼히 챙겨 숙소와 식당을 예약한 후 여유로운 여행을 하고 싶다.

방비엥에서 다시 북쪽으로 루앙프라방까지는 무려 7시간이나 걸린다. 켜켜이 겹쳐진 산길을 따라 한국에서 관광회사 시트를 그대로 입힌 채 수입하여 운행되는 버스를 타고 헉헉거리며 달렸다. 산모퉁이를 돌아 지칠 때쯤이면 산비탈을 등지고 위험스럽게 서있는 마을이 나타나곤 했다. 그들은 깊은 산촌에서 주로 목축을 하거나 화전을 일궈 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고 한다.

차창 밖으로 종종 불을 지펴 산림을 태우는 곳이 보였다. 그렇게 태운 곳에서 한 2-3년 감자나 옥수수 등을 재배하다가 토양이 척박해지면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하곤 한단다. 생활상은 원시의 모습인데 집집마다 위성안테나가 설치되어 있고 주민들은 3G폰을 들고 다닌다. 문명의 이기도 좋다지만 초가집 댓돌 위에 통가죽 부츠가 놓여있는 것처럼 어쩐지 부자연스럽다.

사원의 도시 '루앙프라방'

'사원의 도시' 루앙프라방은 도시 전체가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손때 묻지 않은 아름다움과 고고함이 그대로 남아있는 도시다. 1975년 공산화가 되기 전까지 800년간 란쌍왕조의 수도이기도 했다. 교외에 위치한 호텔은 메콩강을 발아래 끼고 있어 풍경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잘 가꿔진 프랑스풍의 정원이 열대의 신비스런 꽃들을 선명한 빛깔로 피워내고 있었다. 이른 아침 정원을 걷는데 라오스 국화 독참파의 은은한 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호텔 정원에 줄지어 자라고 있는 참파꽃은  희생과 존경, 그리고 젊은 연인들의 사랑을 상징하며, 이 꽃을 활용해 신년에 이웃에게 전하는 향수(香水)를 만들기도 한다.
▲ 라오스의 국화 독참파 호텔 정원에 줄지어 자라고 있는 참파꽃은 희생과 존경, 그리고 젊은 연인들의 사랑을 상징하며, 이 꽃을 활용해 신년에 이웃에게 전하는 향수(香水)를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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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콩강이 내려다보이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오랜만에 우아한 식사를 마치고 도심에서 30여분 거리에 위치한 광시폭포를 찾았다. 우리의 방문을 환영이라도 하듯 입구에서부터 시작한 하얀나비의 군무행렬이 숲속까지 이어져 장관을 이뤘다. 숲을 헤치고 들어가면 푸른 보석을 쏟아놓는 듯한 빛의 폭포를 만날 수 있다. 그 영롱함에 취해 셔터를 눌러대는 관광객들의 표정이 튀어 오르는 물방울처럼 맑다.

광활한 아열대 숲속을 뚫고 쏟아지는 광시폭포가 마음을 확 트이게 한다. 그 아래 고인 옥빛 물이 관광객을 유혹한다.
▲ 광시폭포의 시원스런 물줄기 광활한 아열대 숲속을 뚫고 쏟아지는 광시폭포가 마음을 확 트이게 한다. 그 아래 고인 옥빛 물이 관광객을 유혹한다.
ⓒ 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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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앙프라방의 또 다른 볼거리는 루앙프라방박물관과 왓시엠통이다. 루앙프라방박물관은 라오스 란쌍왕조의 마지막 왕이 머물던 왕궁으로 란쌍왕조의 번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유리모자이크가 유명한 사원  왓시엠통은 1560년대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빛을 발할 때마다 장관을 연출한다.

해질 무렵, 우리는 시내 중앙에 위치한 푸시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328개의 계단으로 만들어진 산행길은 관광객들이 빼곡하다. 모두들 한계단 한계단 부처를 가슴에 담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올라간다. 얼굴색과 표정은 달라도 그들이 추구하는 인생행로는 부처의 마음을 닮아있을 것이다. 숨이 찰 무렵 도착한 산 정상에서는 루앙프라방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잔잔하게 흐르는 메콩강 너머로 떨어지는 일몰과 아름다운 시내전경이 교차하면서 숨을 멎게 한다.

해질 무렵 메콩강과 시내를 물들이는 노을이 환상적이다
▲ 푸시산 정상에서 맞는 석양 해질 무렵 메콩강과 시내를 물들이는 노을이 환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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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일은 라오스의 새해가 시작되는 날이다. 우리는 이른 아침 탈랏달라(Talat Dala) 시장으로 향했다. 이미 어제부터 들뜨기 시작한 거리는 동이 트기 전부터 분주하다. 황갈색 장삼을 걸친 어린 수도승들이 시장거리에 맨발로 줄지어 탁발에 나섰다. 검소한 생활을 표방하는 동시에 아집(我執)과 아만(我慢)을 없애고, 보시하는 이의 복덕을 길러 주는 공덕이 있다고 하여 부처 당시부터 행하였다는 행걸이다.

길가에는 시민과 관광객들이 섞여 숙연한 자세로 무릎을 꿇고 앉아 발우에 준비해 온 음식을 보시한다. 보시하는 이들이 많아 발우는 금방 넘친다. 스님은 넘치는 발우를 빈 바구니를 들고 뒤따르는 어린아이들에게 퍼준다. 매일아침 이렇게 부처의 자비로 나눔을 몸소 실행하는 이들이 있어 가난해도 그들은 행복하다.

낮 시간 태양이 달아오르면서 도시는 음악과 젊음으로 요동치기 시작한다. '삐마이'라고 불리는 물축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상점마다 요란스럽게 음악을 틀어놓고 얼굴에 분장을 한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춤을 추며 지나가는 자동차나 행인들에게 바가지, 물총 등 각가지 도구를 활용해 물세례를 퍼붓는다. 더위를 잊게 하고 액운을 없애준다는 행운의 물세례다. 우리 일행도 기분 좋게 물세례를 받고 도시를 빠져나왔다.

동서양의 문화가 조화를 이루며 원시와 문명이 교차하는 동남아시아에서 생태환경이 가장 잘 보존된 나라, 국가의 75%가 푸른 숲으로 덮여있고, 북부의 산과 남부의 평원을 넉넉히 적시며 메콩강이 흐르는 물의 나라 라오스에 언제 또 다시 갈 수 있을까? 메콩강 만큼이나 느리고 고요하며 평화로운 나라 라오스, 이곳 사람들의 순박한 품성과 느긋하고 평화로운 삶이 각박한 우리네 일상과 겹쳐 떠나오는 여행객의 발길을 잡는다.


태그:#라오스, #비엔티엔, #방비엥, #루앙프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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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물처럼, 바람처럼, 시(詩)처럼 / essayist, reader, trave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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