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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1학년 <가정> 교과서. 가정 교과서에 나온 청소년기 '바람직한 성적 욕구 발산 방법'
중학교 1학년 <가정> 교과서. 가정 교과서에 나온 청소년기 '바람직한 성적 욕구 발산 방법' ⓒ 조은미

"이성 교제는 성 역할의 학습과 이성과의 조화로운 인간관계를 이루기 위한 경험이 될 뿐만 아니라, 서로 인격적으로 성숙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성에 관한 관심이 지나치면 학업에 소홀해지기 쉽고, 다른 친구와 폭넓게 사귀는 데 방해가 되는 등의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이성 교제가 새로운 자기 발전의 기회가 되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중학생 아이가 오늘부터 중간고사 기간입니다. 어제저녁에 가정 문제집을 채점해 주다가, 서술식 문제 중 이성 교제에 대해 서술하라는 문제가 있어서 '모범답안'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아이의 <가정> 교과서를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마침, 지난 27일(금)에 있었던 레이디 가가 내한공연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일부 개신교도들이 레이디 가가는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공연을 막자고, 통성기도 하는 사진이 기사에 실린 것을 보았습니다. 동성애가 범죄던가요?

이성 교제에 대해 서술하는 문제를 풀어야겠기에 아이와 동성애에 관해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성 역할의 학습'은 동성애에서 할 수 없지 않냐고 아이가 대꾸하길래, 제가 알기로는 동성애 커플도 성 역할을 나누어서 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아들은 "성적 욕구, 어떻게 다스릴까?"하는 문제도 서술했습니다. '바람직한 성적 욕구 발산 방법'의 모범답안은 이렇습니다.

"학업을 통한 성취감이나 운동·취미 활동, 봉사 활동 등을 통해 정신적, 정서적 기쁨을 얻는 것이 바람직하다."

바람직한 성적 욕구 발산 방법 읽자니, 아이들이 안쓰럽다

 중학교 1학년 <기술.가정> 교과서
중학교 1학년 <기술.가정> 교과서 ⓒ 조은미

중학교 1학년 아들의 <기술·가정> 교과서를 보니,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와 배우는 내용이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나마 한 가지 진일보한 것은 남녀 구분 없이 기술, 가정을 같이 배운다는 것입니다. 아들은 <가정>시험을 공부하며, 월경 주기가 28일인 여성이 가임 가능성이 높은 날짜가 언제인지 계산하는 문제를 풀 것입니다. (엄마인 저조차 가끔 헷갈리는데, 청소년들은 성에 관한 관심이 높아서인지 잘 외우고 있습니다.)

교과서에 실을 수 있는 내용은 가장 기본적이고, 중립적인 것을 실을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인정합니다. 그러나 바람직한 성적 욕구 발산 방법을 읽자니, 아이들이 참 안쓰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어른에게 말해도 가혹한 것을, 아이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성적 욕구가 생기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등수를 올리고, 점수를 올려서 풀거나, 어디 가서 봉사 활동하면서 숭고한 만족감을 얻으라는 소리지요. 여러분은 성욕이 생기면 회사 일을 열심히 하거나, 거리 청소 봉사를 하면서 뿌듯한 마음으로 성욕을 잊을 수 있나요?

교과서, 10대 임신 "미숙아 확률 높거나, 태아와 산모 사망..." 

저는 이성에 대한 첫사랑을 느꼈던 것이 딱! 지금 제 아들의 나이인 '중1' 때였습니다. 그 남자아이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떨려서 봄날 교정을 걸으면서도 늘 어질어질 어지럼증을 느꼈습니다. 또 가슴 아래와 배꼽 위 중간 어딘가쯤에서 알싸한 통증인지, 간지러움인지 알 수 없는 감각이 찌릿하게 흐르곤 했습니다. 아마 그것이 그리운 감정을 수반하는 성욕의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다시 읽었는데, 로미오는 16세, 줄리엣은 14세입니다. 그들은 비밀 결혼을 하고 하룻밤을 같이 보냈지요. 우리 고전 <춘향전>의 커플도 10대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요. 10대의 임신에 대해서 교과서에는 "자궁의 성장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아 미숙아를 출산할 확률이 높을 뿐만 아니라, 태아와 산모를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고 무시무시한 말로 경고합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10대에 장가 가고, 시집갔을 텐데 말입니다.

우리가 흔히 '교과서적이다'고 표현하면, 고리타분하고 융통성이 없다는 뜻으로 쓰지요. 학교 교육이 청소년들을 사회화하고, 사회의 보편적 규범과 질서를 지키도록 훈련하는 데에도 목적이 있으니, 대체로 청소년기의 성욕 발산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라고 하는 것을 이해합니다. 저도 "청소년의 성을 자유롭게 허용해줘야 하는가"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대답을 주저하게 되니까요.

그래도 어쩐지 아이들이 가엾습니다. 성적 욕구가 생길 때마다, 문제집을 풀어대거나 농구를 죽도록 한다거나,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부과한 봉사 활동을 나가야 하니까요. 부모들은 10대의 성 충동이나 성욕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저도 도무지 뾰족한 답이 없습니다. 단지 아이에게 옥죄는 틀을 조금 느슨하게 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어른들도 '역지사지'.


#청소년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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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산책하는 삶을 삽니다.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 숲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과 사람,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공동대표이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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