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버릴 각오는 되셨죠?"지난달 말 '새 아이패드'를 빌려준 애플코리아 직원은 자신만만했다. 그래, 우리 집엔 이미 1세대 아이패드가 있다. 15개월 전에 샀지만 아이들 장난감이 된 '구닥다리'다. 아이들은 '더 선명하고 얇고 가벼운' 새 친구(3세대 아이패드)에 관심을 보인 건 당연했지만 이번엔 분명히 선을 그었다.
"새 아이패드는 아빠 거야, 넘보지 마!"겨우 30g 차이, 새 아이패드도 별거 아니네?말로만 끝난 게 아니라 1주일 내내 가방 속에 넣고 다니면서 아이들 손길을 '원천봉쇄'했다. 일단 무게와 부피가 줄어(?) 들고 다닐 엄두가 났다. 사실 새 아이패드(와이파이 기준 652g)는 아이패드2(601g)보다 50g 더 무거워진 탓에 1세대(680g)와는 겨우 30g 차이에 불과하다. 두께가 2.3mm나 줄어 훨씬 가벼워 보이지만 실제 무게 차이를 느낄 순 없었다. 눈을 가리고 시험했을 때 새 아이패드와 아이패드2 무게 차이도 감지할 수 없었다.
새 아이패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레티나 디스플레이'다. 9.7인치 큰 화면 탓에 아이폰3Gs에서 아이폰4로 넘어갈 때 충격을 뛰어넘었다. 해상도가 '2048×1536'으로 기존 제품(1024×768) 4배여서 웬만한 노트북 화면보다 더 선명했다. HD급 고화질 사진과 동영상을 볼 때 진가가 나왔다. 고성능 DSLR 카메라로 찍은 고화질 사진들이 선명하고 섬세하게 살아 있어 내 노트북 화면(1366×768)이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눈은 확실하게 버렸다.
이런 초고해상도 화면은 카메라 업그레이드와 상승 작용을 일으켰다. 새 아이패드는 'iSight'라고 이름 붙인 500만 화소 카메라를 뒷면에 달아 2592×1936 고해상도 사진과 1080p급 HD 동영상(아이패드2는 720p) 촬영이 가능하다.
[아이포토] '애물단지' 사진들, '포토 저널'로 거듭나다
아무리 좋은 단말기도 활용하기 나름이다. 새 아이패드가 단순한 미디어 소비 기기에서 벗어나 '생산성'에 초점을 맞춘 만큼 사진이나 영상, 문서 등을 편집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응용 프로그램)을 골랐다.
우선 카메라가 없는 1세대 아이패드에선 살 수 없는 4.99달러(약 6000원)짜리 '아이포토(iPhoto)'와 '아이무비(iMovie)' 앱, 지난달 처음 선보인 9.99달러짜리 '한컴오피스한글'을 깔았다. 1세대를 쓰면서 유료 앱은 0.99달러짜리 하나로 버텼는데 겨우 1주일 쓰자고 프로그램 값만 2만4000원을 투자한 것이다.
사실 그동안 아이폰으로 찍은 2000장 넘는 사진과 동영상은 저장 공간만 차지하는 '애물 단지'였다. 하지만 아이포토를 이용하면 구도가 비슷한 사진들을 비교해 가장 잘 나온 사진만 골라낼 수 있고 포토샵 못지않은 사진 편집도 가능하다. 특히 사진 색감을 조정할 때 마우스가 아닌 손가락의 섬세한 움직임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도 큰 매력이다.
온라인 앨범인 '포토 저널' 만들기에도 도전했다. 아이들 어린이집 가는 길에 찍은 사진과 동영상들을 모아 편집하니 온라인 매거진처럼 한 눈에 보기 편했고 촬영 장소가 담긴 지도와 촬영일 날씨까지 집어넣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애플 온라인 저장 공간인 '아이클라우드'에 올려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도 있다.
[아이무비] 아빠가 만든 영화 예고편, TV 상영 '개봉박두'
'아이무비'는 원래 맥 PC용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인데 1080p 고화질 영상 촬영이 가능한 새 아이패드와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냈다. 아이패드로 찍은 영상을 바로 편집해 그럴 듯한 영화 한 편을 만들 수 있고 짤막한 예고편 제작도 가능하다. 모험, 동화, 로맨스, 발리우드 등 예고편 테마를 정하면 견본 화면을 통해 어떤 위치에 어떤 동영상을 넣으면 되는지 알려준다.
동영상 클립들을 장면장면 나눠 시간대별로 보여주기 때문에 필요한 장면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영상 편집 초보자인 아빠도 30분 남짓 고생하니 동네 꽃밭을 정글처럼 누비는 어린 탐험가를 그린 1분짜리 '모험 영화' 예고편이 탄생했다.
이렇게 편집한 가족 영화는 아이패드뿐 아니라 디지털TV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아쉽게도우리나라에선 애플TV가 시판되지 않아 5만8000원짜리 디지털 AV 아답터와 HDMI 케이블을 따로 사서 유선으로 연결해야 한다.
'애플TV' 셋톱박스가 있으면 '에어플레이' 미러링 기능을 이용해 TV와 무선으로 연결할 수 있다. 사진, 동영상뿐 아니라 아이패드와 똑같은 화면을 TV에 띄워놓고 게임이나 인터넷 검색도 할 수 있다. 아이패드가 TV 리모컨 역할까지 하는 셈이다.
[한컴오피스한글] 워드프로세서로도 모바일 노트로도 '어정쩡'아이패드용 한글 워드프로세서로 큰 관심을 모은 '한컴오피스한글'은 기대에 못 미쳤다. 문서를 불러오기만 할 뿐 글자 하나 수정할 수 없는 '한컴뷰어'의 아쉬움은 달래줬지만 PC용 워드프로세서 대용으로 쓰기도, '에버노트'나 '메모' 같은 기존 모바일 노트 앱을 대신하기도 어정쩡했다.
우선 자동 저장 기능이 없어 기자회견 현장에서 받아 적은 내용을 버튼 조작 실수로 모두 날려 버렸고 문서 목록과 편집 창을 한 눈에 볼 수 없어 여러 문서를 오가며 작업하기에 불편했다. 또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 공유 기능도 없고 '씽크프리 온라인' 같은 일부 클라우드 서비스에 가입해야 웹폴더 기능을 이용할 수 있었다. 표나 도형 만들기처럼 복잡한 문서 작성 기능에 신경 쓰기에 앞서 모바일 특성에 맞춰 기록과 저장, 공유 기능에 좀 더 충실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눈 버리는 건 참아도 '새로운 경험'은 못 참아지난 1주일 새 아이패드를 쓰면서 느낀 건 카메라와 소프트웨어가 업그레이드되면서 쓸모가 훨씬 다양해졌다는 점이다. 여전히 커다란 아이패드를 치켜들고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는 모습이 어색하긴 하지만, 한 기기 안에서 촬영과 편집, 공유까지 할 수 있다는 분명 혁신이다.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이나 사진을 PC에 연결해 저장하고, 편집한 영상을 다시 모바일기기와 연결해 옮기는 번거로운 작업들을 한 번에 해결했기 때문이다.
'더 얇고 가볍고 선명한' 신제품의 유혹은 한 번 '눈 버렸다' 생각하고 넘기면 끝이지만 이런 '새로운 경험'들까지 떨쳐 버리기란 쉽지 않을 듯하다. 이래저래 새 아이패드를 빌린 것부터 내 실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