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일부 대형마트가 의무적으로 월 2회 휴업한다. 민주당은 한 발 더 나가서 영업시간을 오후 9시까지로 제한하고, 휴업 날짜로 월 4회까지 늘이는 법안을 추진한다. 매출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러한 정책에 대형마트는 당연히 반대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언론은 소비자들, 특히 맞벌이 부부도 이 규제안을 반대한다고 전하고 있다.

주부 임순희씨(53)는 "퇴근 이후 저녁 식사와 장보기를 동시에 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후 9시 이후에 대형마트가 문을 닫는다면 장 볼 곳이 마땅치 않다"며 "중소상인을 살리자는 의도는 좋지만, 일반 서민에게까지 불편을 줄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아주경제, 2012. 6. 4 기사 인용)

영업시간을 추가 제한하면 그렇지 않아도 불편을 겪고 있는 맞벌이 부부와 혼자 사는 직장인에게 사실상 토요일 외에는 쇼핑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년간에 걸쳐 자리 잡은 시민의 생활 패턴을 행정력으로 억지로 바꾸겠다는 무리함의 극치이다. (서울신문 6월 1일자 사설)

이러한 규제에 대해서는 많은 근거와 주장이 있다. 그런데 대형마트에 가지 못하는 것이 맞벌이 부부에게 심각한 불편을 야기하고,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주장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맞벌이 부부는 다년간에 걸쳐서 주말 마트 쇼핑이라는 생활 패턴에 자리를 잡았다. 이 생활이 실제로는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한 번 살펴보자.

매일 장보기 vs 일주일에 한 번 장보기...어느 것이 더 절약?

맞벌이 부부의 생활방식을 살펴보면, 평일에는 장을 볼 시간이 없어서 주말에 장을 보게 된다. 매일매일 장을 보는 것과 일주일에 한 번 장을 보는 것, 어는 것이 돈을 더 적게 쓸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한 번만 장을 보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오히려 몰아서 하는 장보기가 돈을 더 많이 쓰게 된다. 일주일에 한 번 하다 보니 지금 필요한 것뿐만 아니라 필요할지도 모르는 것까지 사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 안 사면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라도 쉽게 산다. 특히 대형마트처럼 없는 것 없이 다 갖춰진 곳에서는 꼭 필요한 것만 사겠다는 의지는 쉽게 무용지물이 된다. '견물생심'이라는 말처럼 보이면 사고 싶은 것이 사람의 자연스러운 심리다. 필요한 것을 적어 가는 노력도 마트 안에서 카트를 끌다 보면 늘 수포로 돌아간다.

여기에 또 필요한 것이 있다. 물건을 카트에 가득 채운 후, 집까지 가야 하니 당연히 차가 필요하다. 마트에서 싸게 샀다고 좋아하기 전에 기름값이라는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사 온 물건을 정리하려고 하면 냉장고 안에는 이미 음식이 가득하다. 새로 산 것을 넣으려면 결국 이전에 샀던 것들을 버려야만 한다. 유효기간이 얼마 안 남아 싸게 샀던 1+1 행사 상품은 결국 다 먹지 못하고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세일이라서 싸다고 산 물건은 몇 번만 쓰고는 집안 어디 한구석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꽉 차 있는 냉동실은 열 때마다 '뭐 하나라도' 툭 떨어져 발등이라도 깨질 것 같다.

주말 쇼핑의 단점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일주일 치 먹을 것을 한꺼번에 사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신선도가 떨어지는 식품을 먹어야 한다. 처음에 살 때 비쌌던 생고기는 나중에 먹기 위해 냉동실에 얼려 놓으면 결국 싼 냉동 고기가 되어 버린다. 채소는 두말 할 것도 없다. 때로는 유효기간이 지난 식품도 먹어야 한다. 상해서 버리는 것도 부지기수다.

우리는 열심히 번 돈을 물건과 바꾼다. 그 물건의 소유자가 될 때, 우리는 힘과 권력이 솟아나는 기분을 느낀다. 그래서 쇼핑은 필요를 채워 주는 행위일뿐만 아니라 오락이기도 하다. 그런데 쇼핑백을 손에 쥘 때, 느꼈던 그 쾌감이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소비는 그 순간뿐만 아니라 지속해서 돈이 들어가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음식을 냉장고에 넣으면 전기세를 내야 한다. 또, 물건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더 넓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비용을 치러야 한다. 보관할 공간이 마땅치 않으면 보관을 위한 물건을 또 소비해야 한다.

접시를 칸칸이 보관할 수 있는 싱크대용 접시 선반, 신발을 켜켜이 놓을 수 있는 신발 정리대, 안 쓰는 가방을 넣어서 장롱 위에 올려놓을 박스, 냉동실 정리 전용 플라스틱 그릇, 이불과 옷을 보관하는 압축팩 등. 이렇게 물건을 소비할 때는 소비 후 보관을 위해 드는 비용과 정리 정돈을 위한 스트레스까지도 감당해야 한다.

주말에 몰아서 쇼핑하는 소비 스타일은 당장 쓸 것뿐만 아니라 앞으로 필요할지도 모르는 것까지 사기 때문에 보관 비용이 더 많이 든다.

대형마트 규제는 맞벌이 부부에게는 기회

이에 반해 필요할 때마다 장을 보는 소비는 오히려 주말 쇼핑보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일 수 있다. 굳이 미리 살 필요 없고, 지금 당장 필요한 것만 사기 때문이다. 동네 슈퍼가 대형마트보다 조금 더 비싸다고? 동네 슈퍼를 이용하면 물건도 많지 않으니, 보면 사고 싶다는 '견물생심(見物生心)'도 생기지 않는다.

소비할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굳이 차를 타고 쇼핑을 가지 않아도 되니, 기름값도 절약한다. 사서 바로 소비하기 때문에 보관 비용도 적게 들고 정리 정돈하는 스트레스도 받지 않는다. 가장 신선할 때 먹을 수 있고 남거나 유통기한이 지나서 버리지도 않는다. 이 정도면 조금쯤 더 비싸게 사도 소비자에게 그리 큰 손해는 아니다.

대형마트 위주의 유통 구조가 국가 경제에 끼치는 문제와 관련하여 다양한 주제와 논쟁이 있다. 그러나 대형마트는 국가 경제뿐만 아니라 가정 경제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물건 하나하나를 따져보면 대형마트가 싸다. 그러나 불필요한 것까지 소비하는 과다소비를 일으키고, 과다소비로 높은 유지관리 비용을 지불하게 한다는 것까지 꼼꼼하게 따져보면 소비자에게 대형마트가 그리 싼 것만은 아니다.

맞벌이 부부의 주말 마트쇼핑은 위에서 이야기했던 과다소비와 높은 관리비용을 야기한다. 주말 마트영업 규제는 맞벌이 부부에게는 오히려 불필요한 과다소비를 줄일 좋은 기회다. 물론,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는 편리함은 희생해야 한다. 이 편리함을 한 달에 네 번만 포기한다면 조금은 더 넓은 공간, 줄어든 쓰레기 그리고 불어난 통장 잔고를 얻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지영 시민기자는 현재 지속가능한 경제적 자립을 돕는 생활경제상담센터 푸른살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푸른살림은 소중한 돈 잃지 않고 재때 잘 쓰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푸른살림카페((http://cafe.naver.com/goodsalim)를 참고해 주세요



#마트#돈관리#재테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