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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나의 '진짜 얼굴'이 보일 듯 말듯 함과 동시에 소설<은교>의 마지막장을 덮을 수 있었다. 이적요가 한은교에게 쓴 말미의 편지내용은 그랬다.

"나의 진짜얼굴을 너로 인해 스스로 보게 된 셈이다. 생의 마지막에 너를 통해 만나 경험한 본능의 해방이야말로 나의 유일한 인생, 나의 싱싱한 행복이었다. 그게 바로 나 이적요다. 이적요는 본능을 가진 인간이었을 뿐, 신성을 본 적도 만난 적도 없다. 그러하니 아무도 더 이상 내게 속지 말라."

이적요 그는, 스스로 만들어 놓은 우상화에 뒤덮일까봐 두려웠던 내면의 본능을 깨우치기까지 꽤 오랜 세월을 흘려보내야 했다.

그 중심으로 선뜻 다가왔던 은교라는 소녀에게 품었던 갈망의 끝은 해방이었다. 그것은 죽음을 뜻하기도 한다.

결혼도 하지 않고, 평생 오로지 시만 쓰다 죽은 시대의 시인이었으므로, 그가 떠나버린 세계에선 분명 그를 우상화할 것이 뻔했다. 사후 풍토를 예견하자면 끝이 없었다. 문학을 계급쯤으로 여기는 일부 지식인들이 아니더라도 시인을 추앙해 마지않는 사람들은 많았다. 모든 예견을 등에 업고 시인의 사후 일들이 척척 진행되었다. 기념관이니 문학관이니 새로 짓는 것은 여반장이거니와 남겨진 유작이 없는지 쫑긋대는 관련업 종사자들도 등장했다.

이적요 시인은 이렇게 뻔한 그 세계에 끝까지 일침을 놓듯 죽기 전까지 기록을 한다. 그는 자신이 말년에 품었던 갈망의 과정을 남김없이 기록한다. 낱낱이 획을 그어 문자로 기록해 냈다. 그 기록은 필명처럼 고요하지도 쓸쓸하지도 않다. 더러는 추악할 수도 있고, 또 환상적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호텔캘리포니아처럼.

굳이 비교하자면, '별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주입된 지식에만 그쳐 문학적 성장을 하지 못했던 서지우의 문학적 신성에 대한 갈망보다도, 할아버지 이적요의 소녀이자 처녀의 싱그러운 관능을 향한 갈망의 과정에 내 들끓는 마음이 더 갔다.

 박범신 소설 <은교>
 박범신 소설 <은교>
ⓒ 인터넷서점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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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을 표현하는 갈망은 그 어떤 종류의 갈망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본능은 진실과도 같으며 진실을 갈망하는 사람에겐 광채가 나온다. 적요의 갈망은 그러했다. 광채가 났다. 병으로 죽어가던 적요가 어떤 약물치료도 거부하고 철저하게 죽음의 그림자를 따르려 했던 것도, 육체가 말하고 있는 본능적인 진실을 이미 깨우쳤기 때문이다.
내겐 적요가 필요하다. 덤으로 은교가 함께 필요하다며 두서없는 내 뇌 상자를 정리했다. 그렇게 서지우를 뺀, 적요와 은교가 필요했다.

'고요하고 쓸쓸하다'라는 뜻의 적요라는 필명을 철저하게 실천할 수 있었던 이적요 시인에게 등장한 은교라는 그의 처녀는, 그의 모든 실천을 가능케 했던 관념과 뿌리 깊은 본능을 파헤치게끔 했다.

적요를 실천하기 어려운 최악의 조건에서 근근이 버티고 있는 나이다. 잡스러운 소음에 파묻혀 살고 있는 내게 적요가 필요하고, 적요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울뿐인 진실과, 본능이 아닌 그림자가 드리우고, 급기야 내 진짜얼굴을 모르게 되어버렸을 때, 내게 거울을 들이 밀어줄 은교가 필요하다.

적요와 은교가 내 안에서 그렇게 만나야만 한다고. 그래야만 한다고 되뇌인다.


은교

박범신 지음, 문학동네(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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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신#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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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문화, 다양한 사회현상에 관해 공부하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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