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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처럼 하류의 물을 상류로 끌어올려 다시 하류로 흘려보내는 '역펌핑' 방식. 이명박 대통령의 청계천 사례를 본뜬 대전천은 실패작이었다.

120억 원 들여 청계천 따라 하기, 전기료만 연 1억 5000만 원

 유등천 하류 취수보에서 역펌핑한 물은 상수도 원수와 섞여 8.7km 떨어진 대전천 상류인 옥계교 로 역펌핑된다.
유등천 하류 취수보에서 역펌핑한 물은 상수도 원수와 섞여 8.7km 떨어진 대전천 상류인 옥계교 로 역펌핑된다. ⓒ 심규상

지난 2008년 6월 대전시는 청계천처럼 하류의 물을 대전천 상류로 끌어올려 다시 하류로 흘러 보내는 '역펌핑' 공사를 마무리하고 통수식을 거행했다.

대전에는 3대 하천이 있다. 대전구도심을 흐르는 대전천(유등천과 합류)과 뿌리공원에서 대전서부버스터미널을 거쳐 갑천과 합류하는 유등천, 가수원동, 유성구청 앞을 지나 금강과 합류하는 갑천이다. 이중 상대적으로 수량이 적은 대전천 상류(중구 옥계교)에 유등천 하류(서구 한밭대교 아래) 물을 퍼 올려 흘려보내고 있다.

취수정 등 역펌핑을 위한 공사비는 약 120억 원. 약 8.7km로 역펌핑해 공급하는 하천수량은 1일 평균 약 3만5000톤이다.  소요비용은 전기료만 매년 1억 5000만 원에 이른다. 대청호에 끌어온 상수도원수 25%를 섞어 공급하는데 수 천만 원의 원수사용료는 별도다. 당시 대전시는 청계천을 예로 들며 대전천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장담했다. 대전천은 생태하천으로 다시 살아났을까? 청계천 따라하기 통수식 후 4년여가 지난 10일 오후 대전천전 구간을 직접 돌아보았다.

한밭대교 아래 취수원은 '썩은 물'

 대전천으로 물을 펌핑하는 취수원인 한밭대교 아래 취수보
대전천으로 물을 펌핑하는 취수원인 한밭대교 아래 취수보 ⓒ 심규상

 대전천으로 물을 펌핑하는 취수원인 한밭대교 아래(갑천방향)
대전천으로 물을 펌핑하는 취수원인 한밭대교 아래(갑천방향) ⓒ 심규상

우선 대전천으로 물을 펌핑하는 취수원인 한밭대교 아래 취수보로 향했다. 멀리에서 본 취수보는 가뭄에도 제법 물이 차 있었다. 며칠 전 내린 소나기에 해갈이 좀 된 듯하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본 취수보물은 달랐다. 거무튀튀했고 바닥에는 짙은 물때가 엉겨 붙어있다. 막대기로 물을 휘젓자 걸쭉한 부유물과 함께 악취가 피어올랐다.

대전천 상류에 물을 공급하는 취수보의 물 자체가 심하게 상해 있었다. 하류까지 흘러오는 동안 탁해진 데다 물을 취수하기 위해 만든 보로 고이면서 상태가 더욱 나빠진 것으로 보인다. 

인근에 사는 한 주민이 취수보를 건너다 기자를 보고 손짓한다.

"여긴 아무것도 아녀. 저기 갑천 쪽으로는 녹조 천지여."

갑천 방향으로 하천을 따라 걸었다. 미역 줄기 같은 두꺼운 부유물이 곳곳에 걸려있다. 취수보로 물길이 막히면서 수량이 줄어드는데다 그나마 역한 물이 넘어왔으니 당연지사였다.

먹지 못하는 물고기 낚는 강태공들

 대전천 하류인 평화병원 (중촌 주공임대아파트)부근
대전천 하류인 평화병원 (중촌 주공임대아파트)부근 ⓒ 심규상

 대전천 하류인 평화병원 (중촌 주공임대아파트)부근
대전천 하류인 평화병원 (중촌 주공임대아파트)부근 ⓒ 심규상

 대전천의 녹조현상이 심각한 상황이다.
대전천의 녹조현상이 심각한 상황이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취수보에서 대전천 상류를 따라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대전천 하류인 평화병원 (중촌 주공임대아파트) 부근에 이르자 강태공들의 모습이 보인다.

"물 보세요. 먹지는 못해요. 그냥 시간 보내려고 낚는 거죠."

물속은 부유물로 꽉 차 있다.  한남대교 부근 아래에서는 굴착기 작업이 한창이다. 하천바닥을 준설하면서 흘러온 흙탕물이 오히려 깨끗하게 느껴졌다.

다시 상류를 따라 가다 삼선교에 이르렀다. 다리 아래 가동보에 가로막힌 물에서 역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이곳을 중심으로 하류 3km 구간은 지난달 31일 대전충남녹색연합 조사 당시 대규모 녹조가 발생했었다.

펌핑된 물 흘러나오는 옥계교도 마찬가지

 대전천 중상류인 중구 석교 아래. 중하류에 비해 덜 했지만 흐르는 물인데도 하천바닥엔 부유물이 여전했다. 바닥에서 자갈이나 모레 등을 찾아볼 수 없다.
대전천 중상류인 중구 석교 아래. 중하류에 비해 덜 했지만 흐르는 물인데도 하천바닥엔 부유물이 여전했다. 바닥에서 자갈이나 모레 등을 찾아볼 수 없다. ⓒ 심규상

목척교와 중앙시장 부근, 보문교를 거쳐 상류인 석교에 이르렀다. 처음 유등천 취수보로부터 거의 7km 이상을 거슬러 올라왔다. 중하류에 비해 덜 했지만 흐르는 물인데도 하천바닥엔 부유물이 여전했다. 잘 정비된 하천바닥엔 돌덩이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물이 정화되기 어려운 구조다.

거슬러 올라 목적지에 도착했다. 취수보에서 역펌핑한 물이 흘러나오는 옥계교 아래다. 펌핑된 물이 시원스럽게 물줄기를 토해 냈다. 대전천 상류에서 흘러온 물과 펌핑된 물의 합류지점. 하지만 둘 사이 만남은 시원하지 않았다. 합류지점 하천바닥이 녹조로 뒤덮여 있다. 그러고 보니 역펌핑한 물줄기에서 간간이 악취가 묻어 나온다. 애당초 상한 물을 역펌핑 끌어왔으니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취수보에서 역펌핑한 물이 8.7km 관을 거쳐 흘러나오는 옥계교 아래. 펌핑된 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취수보에서 역펌핑한 물이 8.7km 관을 거쳐 흘러나오는 옥계교 아래. 펌핑된 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 심규상

 역펌핑된 물이 합류하는 옥계교 아래 하천바닥이 녹조로 뒤덮여 있다.
역펌핑된 물이 합류하는 옥계교 아래 하천바닥이 녹조로 뒤덮여 있다. ⓒ 심규상

대전충남녹색연합 관계자는 "청계천 사례를 베껴 물을 펌핑하기보다는 원래 흐르는 물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대전천을 복원한다며 설치한 인공시설물이 물의 흐름을 막아 담수화되면서 수질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썩은 물을 펌핑하지 말고 콘크리트 시설물과 인공여울을 걷어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전환경운동연합 관계자도  "물의 양을 늘리면 하천이 복원되고 보기 좋다는 식의 장식용으로 공사를 벌이면서 원래의 하천 생태계가 무시됐다"며 "지역 하천 생태계 여건을 고려한 복원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대전시 관계자는 "물을 역펌핑해 대전천 수위를 평균 10cm이상 유지하도록 해 하천이 마르는 걸 막아주는 등 효과가 크다"고 주장했다. 또 "만약 물을 역펌핑해 공급하지 않는다면 대전천은 메마르고 더욱 오염이 심해졌을 것"이라며 "역펌핑으로 수량이 늘어나면서 시민들의 왕래가 늘어나고 심리적 안정 효과까지 거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시민들은 왜 수량 적은 옥계교 위쪽으로 몰릴까

 옥계교 위쪽에 위치한 초지공원(산내 운전면허시험장 부근) 앞. 역펌핑된 물이 미치지 않아  수량은 적지만 어른들과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옥계교 위쪽에 위치한 초지공원(산내 운전면허시험장 부근) 앞. 역펌핑된 물이 미치지 않아 수량은 적지만 어른들과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 심규상

 옥계교 위쪽에 위치한 초지공원(산내 운전면허시험장 부근) 앞. 역펌핑된 물이 미치지 않아 수량은 적지만 어른들과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옥계교 위쪽에 위치한 초지공원(산내 운전면허시험장 부근) 앞. 역펌핑된 물이 미치지 않아 수량은 적지만 어른들과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 심규상

어느 쪽 얘기가 맞을까? 

옥계교 위쪽에 위치한 초지공원(산내 운전면허시험장 부근) 앞. 이곳은 역펌핑한 물이 쏟아지는 옥계교에서 상류쪽으로 불과 300여 미터 떨어져 있다. 이날 오후 초지공원 부근 하천변은 수백여 명의 나들이객들로 붐볐다. 역펌핑된 물이 미치지 않는 이곳 하천의 수량은 적었다. 하지만 부유물질이나 냄새는 없었다. 어른들과 아이들 모두 스스럼없이 발을 담그며 물놀이를 즐겼다. 하천 바닥엔 콘크리트 대신 모래와 자갈이 깔려 있다. 

만약 유등천에서 역펌핑한 물이 이곳을 적신다면 주민들은 이를 피해 다시 물이 위쪽으로 피신하듯 옮겨갈 것임이 자명해보였다.


#대전천#청계천#대전시#역펌핑#3대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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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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