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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11월 4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현병철 인권위원장 사퇴 촉구 시민인권단체 공동 기자회견' 에서 참가자들이 현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모습.
 2010년11월 4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현병철 인권위원장 사퇴 촉구 시민인권단체 공동 기자회견' 에서 참가자들이 현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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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에서 오래 근무했지만, '인권'이라는 주제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인권이 '인간의 권리'라는 뜻인지라, 그 권리의 목록은 세계인권선언, 국제규약, 헌법, 각종 법률, 하다못해 각종 선언문에도 줄줄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머리로 그 목록을 외우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결국 '인간'입니다. 인권의 핵심은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기에 법전, 혹은 각종 문서에 존재하는 권리 목록은 종종 현실의 '사람'과 갈등합니다. 사람을 대하는 우리의 시각, 태도 같은 것이 인권의 가치를 돋보이게 하며, 그래서 '인권'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연임 결정에 직원들 '멘붕'

누군가 "이해란, 누군가를 대신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 다시 그들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인권위 조사관에게 하는 말 같아서 늘 마음에 담습니다. 사랑까지 나아가지는 못하더라도, 누군가를 대신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해보자고 반성하고 또 다짐합니다. 그것이 인권위 직원의 소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중 한 명이 현병철 인권위원장입니다.

"다리가 후들 머리가 띵~. 임기 만료가 가까워 오면서 왜 조용할까 걱정했었는데, 올 것이 왔네요."

"설마 연임을 하시겠어요? 위원장님이 얼마나 양식(良識)이 있으신 분인데. 본인 스스로 고사하시겠지요. 상식적인 눈과 귀, 가슴을 가진 분이시라면… 그동안 보고 듣고 느낀 것이 얼마나 많으시겠어요? 위원장님이 사심을 갖고 자리에 연연하시겠어요? 그 정도의 상식은 있으시라고 믿어요. 그럼에도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염치 있기, 없기…"

"비뚤어질 겁니다. 완벽하게 비뚤어져야죠. 그동안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고분고분 살아왔지만 지금부터는 완전히 비뚤어질 겁니다. 얼마나, 얼토당토 않게 비뚤어지는지, 보여줄 겁니다."

인권위 인트라넷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직원들의 반응입니다. 허망, 허탈, 분노, 좌절, 어이없음, 냉소 등 인권위 구성원으로서 느끼는 복잡한 감정들이 쉼표 하나, 말줄임표 하나에 묻어납니다. 인권위 직원들은 요즘, 시쳇말로 '멘붕' 상태입니다.

국내외 신뢰 잃은 '인권위 3년'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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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병철 위원장 체제의 인권위 3년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김대중 정부 때 3년이 넘는 지난한 투쟁과 한겨울 노숙농성도 마다하지 않았던 시민사회, 인권활동가의 피나는 노력으로 만들어진 인권위는 한동안 국내외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현 위원장 취임 이후 그 위상이 급전직하하였습니다. 최근 3년 동안, 권력을 향해 인권 옹호자로서의 기개와 결기를 보이지도 못했고 국민들 앞에 겸손하지도 않았습니다. 더구나 용산참사 희생자와 그 가족들, 쌍용자동차 해고자 및 희생자 등과 같은 사회에서 소외된 분들의 죽음의 행렬 앞에 숙연하지도 경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권력 앞에 엄숙하고, 권력의 동향에 민감했습니다. 인권위를 향한 국민들의 좌절과 분노만 높아졌고, 인권위 구성원으로서 극도의 상실감, 좌절감이 되풀이 될 뿐입니다.

인권위가 흘려보낸 사건들을 돌아봅니다. MBC <피디수첩> 사건, 박원순 변호사에 대한 국가정보원의 손배사건,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로 문제가 되었던 '김종익씨 사건',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와 강제진압,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제주 강정마을에서 벌어진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 등 우리 사회를 뒤흔들던 사건들에 대해 침묵하거나 방조했습니다.

현 위원장은 MBC <피디수첩> 사건에서는 법원에 인권위 의견을 제출하는 데 11명의 위원 가운데 찬성 의견을 가진 문경란 위원이 해외출장을 간 틈에 회의를 열어 서둘러 부결시켰고, 박원순 변호사 손해배상사건 의견제출건은 위원들 간에 5대5 동수가 된 상황에서 위원장 자신만 찬성의견을 제시했으면 가결되었을 안건을 역시 부결시켰습니다.

그 방법 또한 노련했습니다. 찬성과 반대가 5대5로 팽팽한 가운데 정작 본인은 의견을 제시하지 않고, 찬성 의견이 과반을 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결을 선언한 것입니다. 그러고는 추후에 대외적으로 위원들의 생각이 서로 달라서 의결에 이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국무총리실의 일부 정치인에 대한 불법사찰 사건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직권조사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사건 모두가 어디에서, 무엇으로 인해 촉발되었는지 알고 있지만, 인권위는 그저 침묵함으로써 자신의 허명만을 유지하여 왔습니다. 그 정점에 위원장이 있었습니다.

연임한다면 인권위 '소멸'될지도

2011년 3월 15일 문을 연 북한인권침해센터 현판. 진정사건이 접수되지 않자 현병철 위원장이 진정을 독려하는 편지를 탈북자들에게 보냈지만 80여 건만이 접수됐고 그나마 각하될 것이라는 소문이다.
 2011년 3월 15일 문을 연 북한인권침해센터 현판. 진정사건이 접수되지 않자 현병철 위원장이 진정을 독려하는 편지를 탈북자들에게 보냈지만 80여 건만이 접수됐고 그나마 각하될 것이라는 소문이다.
ⓒ 최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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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원장 연임의 중요한 근거가 되었던 북한인권분야에서의 공적 또한 손에 잡히는 것이 없습니다. 막대한 돈을 들여 해외에서 심포지엄을 개최한 것, 북한인권침해신고센터를 개소한 것 정도 뿐입니다.

현 위원장은 2011년 3월 15일 북한인권침해신고센터를 개소하고 진정사건이 접수되지 않자 그해 여름 2만 명에 가까운 탈북자에게 인권위 진정을 독려하는 서신을 친히 발송했습니다. 하지만 1년여가 다 된 지금까지 접수된 80여 건의 진정사건은 정책국과 조사국 사이를 떠돌다가 곧 각하시킬 거라는 이야기만 들릴 뿐입니다. 가히 사기극에 가깝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내부에서도 위원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높았습니다. 인권위라면 이러한 비판의 목소리를 억누를 것이 아니라 받아들일 것은 겸허히 받아들여 반성과 개선의 계기로 삼아야 하는데, 현 위원장은 일관되게 비판자들을 배척하고 배제해왔습니다. 시민단체 출신으로 자신과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특정 과장을 업무에서 사실상 배제시켜 나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고, 평소에 관행적으로 계약을 갱신해왔던 능력있는 계약직 직원에 대해 '더 이상 계약직은 필요없다'는 이유로 쫓아냈습니다.

그녀가 평소 위원장에게 비판적이었던 노조 부지부장이었으니, 왜 하루아침에 아무 설명없이 쫓겨나게 되었는지는 능히 짐작하고 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계약 거부에 대해 비판하며 1인 시위를 했던 11명의 직원들을 '공무원 품위유지 위반'등의 이유로 중징계하기도 했습니다.

직원들에게 더 가혹한 것은 무력감 혹은 자기검열입니다. 넘치는 의욕으로 인권사안을 물고 늘어지던 직원들도 이제는 "이 건이 제대로 의결되겠어?"라며 스스로 무너져 버립니다. 비상임위원들이 전원위에 안건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일 때도 왜 안올라오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겁니다.

위원장이 바뀌었다고, 과거에 가졌던 소신도 스스로 팽개치는 '영혼없는' 일부 간부들과 결재 과정에서 논쟁하며 기운을 빼거나 통과되지 않을 것이 뻔한 사안을 가지고 골머리 썩느니, 그저 무난한 사건 몇 건만 갖고 있으면 별 일 없을 거라는 무력감, 무기력증… 조사관이나 실무자들의 무력감은 인권위가 나약해진 증거이자, 또 다른 무력감을 낳는 악순환의 고리입니다.

현 위원장이 3년 더 인권위를 맡는다면 인권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어쩌면 현 정부가 현위원장의 유임을 통해 바라는 것은 인권위의 무력화를 넘어서 인권위의 소멸인지도 모릅니다. 인권위는 탄생부터가 권력의 시혜로 탄생된 것이 아닙니다. 군부독재시기의 인권침해를 겪은 시민의 힘으로 만들어진 인권위입니다.

인권위의 자연스러운 소멸을 유도하는 권력에 맞서 인권위를 지켜내려는 시민들의 의지가 필요한 때입니다. 그 출발은 현 위원장의 연임을 막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권위의 새로운 판을 짜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앞에 놓인 절박한 요구 중에 하나입니다.

덧붙이는 글 | 최준석씨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국가인권위지부 지부장입니다.



태그:#현병철, #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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