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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각장애인이 스마트폰을 제대로 이용하는 건 여전히 어려울 일이다.
 시각장애인이 스마트폰을 제대로 이용하는 건 여전히 어려울 일이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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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달 동안 시각장애인 사회는 새로운 IT제품 하나 때문에 시끄러웠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에서 작동하는 스마트폰용 '스크린리더' 때문이다. 그동안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은 애플의 아이폰뿐이었다.

터치 방식인 스마트폰은 화면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아이폰은 화면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 또는 손의 동작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위한 별도의 인터페이스가 존재한다. 그래서 시각장애인들은 그동안 아이폰만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국내 자그마한 벤쳐기업인 (주)ATLAB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인 스마트폰에서도 작동하는 '샤인리더'라는 스크린리더를 개발해 지난 5월부터 시판에 들어갔다. 그동안 갤럭시 등 아이폰이 아닌 다른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싶어하던 시각장애인들에게도 일단 선택의 폭이 열렸다는 점에서 많은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일부 시각장애인들이 샤인리더에 대해 여러 문제점을 제기했고, 현재 이런 공방이 시각장애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온라인공간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국내에서 첫 개발한 안드로이드용 모바일 스크린리더

샤인리더는 크게 세 가지 제품으로 나뉜다. 저시력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 확대 프로그램인 샤인리더뷰와 전맹의 시각장애인이 사용할 수 있는 샤인리더프로페셔널, 그리고 아이폰의 보이스오버 기능과 인터페이스가 유사한 샤인리더베이직이 그것이다.

ATLAB 측은 현재 샤인리더가 총 3개 부문에서 세계 특허를 취득했다고 밝히고 있다. 현재 안드로이드의 4.0버전부터 장착되기 시작한 '토크백'과는 기능이 전혀 다르다는 게 ATLAB측의 주장이다.

ATLAB의 윤수봉 이사는 "샤인리더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인 스마트폰에서 작동되는 세계 첫 스크린리더"라며 "기존 아이폰의 보이스오버나 안드로이드의 토크백과는 전혀 기능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윤 이사는 "샤인리더는 키보드 방식이어서 객체의 탐색이 정확하고 빠르며, 목적 키를 바로 터치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각장애인이 어려워하던 문자 입력이 빠르다"고 강조했다.

또 윤 이사는 "키패드 구조가 전화 다이얼 패턴이기 때문에 익히기 쉽고, 필기 인식이 가능하여 다양한 문자 입력 수단을 갖추고 있다"면서 "샤인리더는 모바일 접근성 업데이트 기능으로 이미지 레이블링, 가상 포커스, 키 매크로 등 다양한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고 모든 이용자와 공유할 수 있다"고 장점을 설명했다.

루팅방식의 스크린리더 과연 괜찮을까?

그러나 시각장애인들은 샤인리더에 대하여 몇 가지 문제점을 제기한다. 우선, 샤인리더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스마트폰에 장착할 때 정상적 방법이 아닌 루팅이라는 방법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루팅은 일종의 해킹으로 제조사가 정한 규약을 넘어서는 방법이다. 따라서 이러한 루팅방식으로 스크린리더를 장착하면 나중에 전화기에서 고장이나 예기치 못하는 장애가 발생했을 때, 시각장애인이 이를 대처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시각장애인 1급 박의권씨(40세)는 샤인리더를 탑재한 폰을 구입하고 자신이 원하는 앱을 설치했는데 "이 폰은 루팅된 폰이어서 설치가 안 된다"는 메시지를 받고 당혹해했다.

또한 시각장애인들은 늘 휴대폰을 곁에 지니고 있어야 하는데 샤인리더를 설치하기 위해선 회사로 전화기를 보내서 설치를 받아야 하는 불편함도 있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일은 만약 스마트폰에 고장이 생겨 A/S센터에 가져갔을 때 '루팅폰이어서 수리가 안 된다'고 했을 때다.

이런 문제에 대해 개발사인 ATLAB 측은 "만약 그런 문제가 생기면 회사 측에서 전적으로 책임을 지겠다"고 약속하고 있으나 시각장애인들은 걱정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는 샤인리더를 장착하는 방법이 루팅방식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ATLAB의 윤 이사는 "그런 문제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며 "그래서 향후 샤인리더의 탑재 방식을 앱 방식으로 변경하는 것을 현재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각장애인을 '동물원'에 가두는 스크린리더

두 번째로 샤인리더의 폐쇄성을 지적하는 시각장애인도 많다. 샤인리더는 애플의 아이폰과 달리 별도의 인터페이스와 런처(Launcher) 방식을 채택한다. 그래서 일반인이 사용하는 앱, 화면과 다르다는 지적이다. 대전에 사는 J씨는 샤인리더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는데 곁에 있던 친구에게 "어, 네 거랑 내 거랑 똑같은 S사의 스마트폰인데 화면이 다르다. 내 건 멋진데 네 건 이상하게 보여"라는 말을 들었다.

무엇보다 문제는 시각장애인용 스크린리더를 개발한 회사가 시각장애인만이 별도로 사용할 수 있는 앱을 개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화면을 읽어주는 기능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별도의 컨텐츠를 통해 일반인 사용자와 시각장애인 사용자를 분리한다는 지적이다.

'uminsem'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한 블로거는 "샤인리더 제품 외에 현재 제품 소개에서 밝힌 어플리케이션은 13종에 달하며, 이중에는 샤인 브라우저, 샤인 레코더, 샤인 맵 등
기존의 구글 크롬이나 구글맵 등 기존 구글 서비스를 활용해도 되는 것들까지 시각장애인을 위한다는 미명 하에 포함되어 있다"며 "샤인 레코더는 단순한 녹음 어플인데 대개 이런 앱은 통신사나 제조사의 기본 어플로 포함되어 있어 굳이 샤인리더가 개발할 필요가 없는 어플리케이션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샤인리더와 브라우저, 레코더, 맵 등 13종의 부가 어플리케이션에 (시각장애인이) 길들여지면 설령 비슷한 기능의 다른 스크린리더가 출시되더라도 사용자의 이탈을 막기위한 방법, 즉 '샤인리더'라는 동물원에 가두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런 주장에 대하여 ATLAB 측은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샤인리더는 범용성과 보편적 디자인을 추구한다"며 "샤인 제품군은 샤인리더를 보조하기 위한 수단이기보다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소프트웨어"라고 밝혔다.

이어 ATLAB 측은 "예를 들어 제품군에 '샤인문서인식기'라는 앱이 있는데, 인쇄물을 사진으로 찍어 음성으로 읽어주는 프로그램이다"라며 "'보편성 위배'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 '샤인문서인식기'를 개발하지 말아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스마트폰 무상 보급과 관련한 기업의 도덕성

한편 ATLAB은 SKT와 함께 지난 5월 22일부터 한 달간 삼성의 갤럭시2 1000대를 시각장애인 및 그 가족, 그리고 시각장애인 복지관 직원 등 관계자에게 무상으로 지급하는 행사를 벌이고 있다.

5월 22일에 나온 ATLAB의 공지를 보면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ATLAB과 SKT는 시각장애인용 스마트폰 스크린리더를 탑재한 갤럭시S2 1000대를 시각장애인 및 관계자에게 무상으로 보급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 신청한 시각장애인들은 "무상이 아니고 '34요금제' 이상을 2년간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고, 만약 중도 해약할 경우 기계값을 변상하도록 되어 있어 무상 보급이 아니다"라고 항의했다.

시각장애인 G씨는 "공지에 무상으로 되어 있어 신청했다가 기계를 받고 SKT 고객센터에 확인해보니 전혀 무상폰이 아니었다"며 "할 수 없이 해약을 신청했는데 너무 어렵다. 결국 방송통신위원회의 중재를 통해 겨우 해약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조 공학 제품을 개발하는 회사라면 그 소비자가 당연히 장애인이어서 더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야 하는데 이번 경우는 그렇지 못해 씁쓸하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ATLAB 측은 이런 항의에 대하여 "처음 공지가 게시된 2일간 당사 직원들은 복잡한 통신사 요금 체제를 완전하게 숙지하지 못한 채 통신사 요금제를 상담하는 실수가 있었다"며 "실제 고객이 부담하는 단말기 할부 부담금은 '0원'이고 또한 샤인리더 제품을 무상으로 탑재 하였으므로 무상이라고 표현을 하였던 것"이라며 이후 재공지를 통해 자세한 내용을 홍보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확인 결과 ATLAB 측은 처음 공지한 시각장애인연합회의 공지사항이 아닌 자사가 운영하는 컨텐츠의 공지사항에만 "기기는 무료이지만 2년간 약정이 필요하다"고 공지하였고 6월 18일에야 공지사항에 다시 안내를 하였다. 그러나 18일 공지한 사항에도 "기기는 무상이다"라는 표현이 버젓이 올라와 있다.

샤인리더는 자그마한 벤처회사가 시각장애인이 사용할 수 있는 스크린리더를 3년간 총 6억 원 이상의 개발비를 투입해 만든 제품이다. 삼성 등 스마트폰 제조사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개발업체인 구글 등이 시각장애인 접근권에 대해 손 놓고 있던 시점에 국내 자그마한 개발업체가 이런 제품을 개발한 것은 시각장애인의 한사람으로 고맙고 칭찬할 일이다.

그러나 보다 세심하고 꼼꼼하게 제품 개발과 사업 전개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왜일까? 이제 시각장애인들도 아이폰뿐만이 아닌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스마트폰을 선택할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구글의 시각장애인 개발자 라만 박사는 얼마 전 롯데호텔에서 열린 구글 코리아 기자 간담회에서 "단말기는 200달러인데 장애인은 500달러를 추가로 내 음성 변환을 하는 건 그 자체가 장벽"이라고 했다.

그러나 돈을 내도 좋으니 시각장애인도 모든 제품을 공유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스마트폰#스크린리더#ATLAB#샤인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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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1급 시각장애인으로 이 땅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장애인의 삶과 그 삶에 맞서 분투하는 장애인, 그리고 장애인을 둘러싼 환경을 기사화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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