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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복직과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희망과 연대의 날' 행사가 열린 가운데, 참가자들이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복직과 비정규직 문제 해결 등을 요구하며 풍선을 들어보이고 있다.
 16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복직과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희망과 연대의 날' 행사가 열린 가운데, 참가자들이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복직과 비정규직 문제 해결 등을 요구하며 풍선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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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5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의 '새누리당 사내하도급법 입법 추진 규탄대회'에 100여 명의 노동자들이 모였습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비롯해 기아차, 한국지엠 등 사내하청 노동자들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동국대 시설관리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참가했습니다.

새누리당이 19대 국회 개원일인 5월 30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한다며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100일 내에 입법화하겠다고 밝힌 지 보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열린 집회였지만 별다른 항의도 없이 40분 만에 끝나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이날 집회에서 민주노총 정규직 노동자들의 얼굴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새누리당의 사내하도급 법안이 불법파견을 은폐하고 불법고용에 면죄부를 주는 '정몽구 보호법'이며, 현대차 사내하청은 정규직이라는 대법원 판결을 무력화시키는 법안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법안은 정규직과는 상관없는 법일까요?

사내하도급법 반대는 비정규직만?

이는 이명박 정부와 노동부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재벌들의 오랜 염원이었던 파견법의 파견 대상을 제조업, 건설업, 운수업 등 전 산업으로 확대하고, 파견 기간을 연장하며, 고용의무 조항을 완화하는 '국가고용전략 2020'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다 2010년 7월 22일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는 불법파견이므로 정규직으로 간주한다는 대법원 판결과 그해 11월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25일 점거파업으로 인해 사내하청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떠올랐습니다. 그러자 노사정위원회에서 사내하도급법을 추진했고, 2011년 7월 새누리당의 사내하도급법과 비슷한 '사내하도급 근로자의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을 발표됐습니다.

이어 2011년 12월 노동부는 기아자동차,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한국지엠 등을 '가이드라인 준수 우수기업'으로 선정해 발표했습니다.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판정을 받아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있는 현대차를 빼고 완성차 업체 모두가 합법적으로 사내하도급을 사용하고 있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노동부는 기아자동차에 대해 "생산라인 중 의장(조립) 등은 원청노동자가 일하는 곳에 하청노동자를 사용하지 않아 불법파견 관련 법적 분쟁을 원천적으로 차단"했고 "사내하도급 노동자 처우도 비교적 합리적으로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지엠에 대해서는 "2003년부터 2011년까지 1400여 명의 사내하도급 근로자를 직접고용"했고,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에 대해서는 원청의 정규직 노동자 성과급의 70%를 사내청 노동자에게 지급하거나 임금인상을 많이 했기 때문에 '우수기업'이라고 했습니다.

기아자동차에서는 2005년 10월 화성공장 44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노동부에게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습니다. 또 500여 명의 노동자들이 법원에 기아차 정규직이라는 '근로자 지위확인소송'을 낸 상태입니다. 한국지엠의 창원공장은 2010년 12월 23일 항소심 판결에서 불법파견이라고 판결받았고, 조선소 사내하청 노동자들도 법원에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0년 7월 22일과 올해 2월 23일 내려진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이라는 자동흐름방식으로 생산되는 제조업 생산과정은 합법도급이 아니라 파견노동이기 때문에 정규직이라고 판정한 것입니다.

정규직을 사용하게 될 이유가 없어지는 사내하도급법

그런데 노동부는 공정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자의적인 판단을 하고, '합리적인 처우'를 하면 '사내하도급 우수 기업'으로 인정해준 것입니다. 즉, 노동부의 '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을 법으로 보장하는 새누리당의 사내하도급법이 통과되면 모든 제조업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 아니라 합법적인 사내하도급이 됩니다.

지난 2월 8일 오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승용차 생산라인에서 노동자들이 부품 조립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2월 8일 오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승용차 생산라인에서 노동자들이 부품 조립 작업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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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법이 통과되고 2013년 7월 1일 시행되면 현대, 기아, 한국지엠 등 자동차 완성사,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삼성중공업 등 조선소, 포스코, 현대제철 등 철강회사, 삼성전자, 엘지전자 등 모든 제조업의 재벌회사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을 사용할 이유가 전혀 없게 됩니다. 

현대자동차에는 4만5000여 명의 노조원을 가진 힘 있는 노조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회사가 곧바로 정규직을 정리해고 한 뒤, 그 자리를 '합법적인' 사내하도급으로 채우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회사는 1차적으로는 시트나 변속기 등의 업무부터 블록화, 외주화, 분사화를 시도할 것입니다.

하지만 10년 후에는 어떻게 될까요? 현대차는 2020년까지 1만 명 이상이 정년퇴직으로 공장을 떠납니다. 그 자리는 사내하도급으로 채워질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내하도급 노동자는 늘어나고, 정규직의 조직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회사와 협력적인 노조가 있는 사업장이나 노조가 없는 회사는 이 법안이 통과되면 엄청난 태풍이 몰아칠 것입니다. 회사는 유럽발 경제위기를 핑계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요구할 것이고, 그 자리는 '합법적인' 사내하도급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고용이 불안한 상황에서 감히 임금인상의 요구도 함부로 꺼내기 힘들어질 것입니다.

기아자동차 모닝공장, 현대모비스 11개 공장 중 8개 공장, 현대중공업 군산공장, STX중공업, 현대위아 3개 공장 등 처럼 정규직은 관리자들 뿐이고, 모든 생산 공정은 합법적인 사내하도급 노동자들이 일하는 야만적인 공장이 전국에서 들불 번지듯 번져나갈 것입니다.

공공, 병원, 서비스 등 모든 영역으로 확대

더욱 끔찍한 것은 사내하도급법안이 제조업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노동부의 '가이드라인 준수 우수기업'에는 서울성모병원, 롯데백화점, 조선호텔 등 공공부문과 서비스 산업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노동부는 시설, 경비, 주차, 안전, 청소, 계산원, 식품, 전기A/S, 객실정리, IT, 주차관리, 기획광고, 경호, 응급수납 등 많은 업무들을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을 '우수'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철도공사는 '경영혁신'과 '비핵심업무'라는 이유로 역무, 차량정비, 보선, 승차권발매, 레일교환, 전산정보 등 수많은 업무를 외주화해 왔고, 철도노조는 이를 막기 위해 힘겨운 투쟁을 해왔습니다.

이제 새누리당의 사내하도급법이 통과되면 주변업무뿐만 아니라 핵심업무까지 합법적인 사내하도급으로 전환될 것입니다. 노동조합은 무력화될 수밖에 없고, 정규직의 일자리는 빠르게 비정규직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정년을 1~2년 앞두고 있는 노동자가 아니라면, 새누리당과 재벌이 추진하는 사내하도급법의 총구를 비켜나갈 정규직 노동자는 많지 않을 것이고, 이제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는 어디에도 찾아보기 어렵게 됩니다. 

새누리당의 사내하도급법안이 경영에 부담을 준다며 사용자단체와 보수언론, 경제신문들이 이 법안에 반대하는 듯한 '짜고 치는 쇼'를 하고, 중립적이라고 주장하는 인사들이 대타협을 하라며 장단을 맞추고 있습니다.

지난 2월 8일 오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정문에서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이 들고 온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지난 2월 8일 오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정문에서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이 들고 온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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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총은 "기본적으로 사내하도급 근로자는 협력업체의 정규직 근로자이고 원청기업 근로자와 사내하도급 근로자는 서로 다른 회사의 근로자로 비교대상 자체가 될 수 없다"고 반발하는 듯한 논평을 냈습니다.

그러나 5월 24일 대한상공회의소가 기업의 인사노무 부서장 3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19대 국회가 고용활성화를 위해 우선 추진해야 할 노동정책'으로 대기업은 무려 42.6%가 '비정규직, 사내하도급 사용에 대한 규제 완화'를 꼽았습니다.

정규직 노조는 알고 있는가?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는 지난 6월 5일 노조소식지를 통해 "이름만 희망이지 실제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희망을 걷어차고 이를 자본가들에게 주는 불법파견 면죄부에 불과하다"며 "새누리당 사내하청 확산법안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사내하도급 법안이 누구의 심장을 향하고 있는지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충분히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많은 민주노조에서 매주 발행되는 소식지에는 새누리당의 사내하도급법이 어떤 내용인지 실리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사회 고용구조의 대대적인 지각변동을 불러와 정규직 고용을 무너뜨리는 악마 법안을 새누리당이 100일 안에 통과시키겠다고 장담하고 있는데, 사내하청 노동자들만이 외롭게 맞서고 있습니다. 민주노총과 정규직노조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습니다.

새누리당 사내하도급 법안은 정규직의 안정된 일자리 겨누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프레시안>, <레디앙>, <참세상>에도 송고하였습니다.



태그:#사내하도급,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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