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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받는 경찰관의 증가 추세는 그리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다만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경찰청 내부게시판에 올린 비판글로 인해 파면·해임된 사례가 상대적으로 늘어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억울하게 파면당했다고 주장하는 8명의 경찰관 가운데 4명이 파면무효 소송 등에서 승소해 경찰서로 돌아갔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아직도 복귀하지 못한 이들과 경찰서로 복귀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말]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억울하게' 파면당했다고 주장하는 경찰관 8명 중에 4명이 복귀했다. 그 중 1명은 기사화를 끝끝내 거부해 그래픽에 반영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억울하게' 파면당했다고 주장하는 경찰관 8명 중에 4명이 복귀했다. 그 중 1명은 기사화를 끝끝내 거부해 그래픽에 반영하지 않았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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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봐 주세요. 하도 질려서 인터뷰는 못하겠어요."

경찰관 A씨가 손사래를 쳤다.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황당한 혐의를 뒤집어 쓰고 파면됐다가 최근 복직한 터였다. 그의 호소가 더 이어졌다.

"파면된 뒤로 병원 치료를 많이 받았어요. 정말 힘들었죠. 복직해서 이제 겨우 안정되어 가고 있어요. 그런데 저쪽에 꼬투리 잡힐 수 있는 인터뷰를 어떻게 하겠어요? 이해해주세요."

기자는 몇 년 전 파면된 A씨를 직접 만난 적이 있다. 그는 경찰업무에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성실하게 일해온 경찰관이었다. 지나치게 '원칙'을 지키려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하지만 그도 복직한 이후에는 발언을 삼가는 등 몸을 낮추고 있다. 이런 식으로 파면 효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전·현직 중·하위직 경찰관들의 모임인 '무궁화클럽'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 2009년 5월부터 2011년 8월까지 '억울하게' 파면·해임된 경찰관은 8명에 이른다. 서울지방경찰청과 경기지방경찰청, 광주지방경찰청 각 2명씩, 충북지방경찰청과 부산지방경찰청 각 1명씩이다. 이들 가운데 파면이 무효화돼서 경찰서로 돌아간 경찰관은 무려 4명이다.

이 수치로만 보면 파면·해임된 경찰관의 절반이 억울한 징계를 당했다는 말이 된다. "표적감찰에 의한 표적파면"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설령 경찰서로 돌아갔다고 해도 이들에게는 몇 개월씩의 정직 처분이 내려졌다. 게다가 일정기간 '특별관리대상'으로 관리된다. 
     
[박윤근] "경찰관 혼자서 벌면 이런 소송 못해요"

 박윤근 경사
 박윤근 경사
ⓒ 무궁화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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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다 끝난 게 아니에요."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하자 박윤근(서울지방경찰청) 경사가 이런 반응을 보였다. 그의 말에는 현직 경찰관, 특히 파면됐다가 겨우 복직한 경찰관이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가 다시 징계를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짙게 깔려 있었다.  

박 경사가 파면된 때는 지난 2009년 5월이었다. 그도 역시 경찰청 내부게시판에 올린 글이 문제였다. 촛불정국이 한참이던 지난 2008년 6월께 경찰 지휘부를 향해 "무식한 놈들"이라고 일갈한 것을 약 1년이 지난 시점에 문제삼은 것이다. 여기에다 근무태만("근무시간에 글을 썼다")과 부적절한 절도사건 처리를 끼워넣었다. 

"파면되기 전 1년 넘게 글을 썼어요. 주로 성과주의 검문정책이나 직원 관리, 리더십 등을 비판했죠. 대부분 내부문제들이에요. 그런 글을 쓴 게 파면의 주된 이유였어요. 다만 그것만으로는 파면하기 힘드니까 다른 건을 집어넣은 거죠."

박 경사를 파면시킨 이후 '경찰관 파면 행렬'이 이어졌다. 장재룡(2009년 10월), 양동열(2009년 11월), 김흥현(2010년 4월), 정해권(2011년 8월) 등 중·하위직 경찰관들이 잇달아 파면돼 경찰서를 떠나야 했다. 대부분 내부게시판에 쓴 글이 발단이었다.

"정부를 직접 비방하는 글은 거의 없었어요. 촛불집회는 주권자의 권리라는 점에서 정당하다는 정도의 댓글을 다는 수준이었어요. 촛불집회가 국민의 뜻이기 때문에 불법의 잣대로 보면 안 된다는 얘기도 있었죠. 하지만 지휘부 등에서는 이런 글들을 보고 경찰관들도 '좌파물'이 들었다고 판단한 것 같아요."

박 경사는 "청와대 쪽에서는 경찰을 이용해 사회기강을 잡으려고 했는데 경찰도 (촛불세력에 의해) 물이 들었다고 보고, 내부게시판에 비판글을 올리거나 언론에 기삿거리를 제보하는 사람을 잡으면 그런 분위기가 위축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게시판에 비판글 올리는 게 파면할 만큼의 범죄인가?"

기자가 접촉한 파면  경찰관들은 한결같이 "이전 정부에서는 이런 건으로 파면까지는 안 갔다"고 증언했다. 박 경사도 "이전 정부에서는 내부게시판에 비판글이 올라와도 용인하는 분위기였고, 심한 경우에도 경고하는 선에서 끝나곤 했다"며 "하지만 촛불집회 이후 분위기나 기조가 확 달라져 강력 대처하라는 지시가 위에서 내려왔다"고 주장했다.

"어떤 의견이든 내부게시판에 올릴 수 있어야 해요. 하지만 문제가 생겼을 경우 그것은 아이디 정지 등 글쓰는 공간에서 해결해야죠. 비판글을 썼다고 뒷조사하고 감찰해서 파면하면 되겠습니까? 그러면 입맛에 맞는 글만 쓰게 돼 현장 정보가 차단되고 이는 (위와 아래의) 소통에 악영항을 미치죠."

이러한 목소리는 이명박 정부에서 표현의 자유가 급격하게 후퇴했다는 분석과도 맞닿는다. 다행히 박 경사는 파면무효 소송에서 내리 승소했다. 그의 파면은 재량권과 인사권을 넘어서는 것이어서 파면을 취소하라는 결정이 일관되게 내려졌다. 이에 따라 그는 지난 2011년 3월 경찰서로 돌아왔다. 파면된 지 약 2년 만이었다.

"소송하는 동안 회사를 몇 군데 다니긴 했어요. 하지만 거의 실업자 수준이었죠. 다행히 부인이 공무원이어서 그 덕분에 살았어요. 경찰관 혼자서 번다면 이런 소송 못해요. 경찰관은 다른 기술이나 경력이 없으니까 갈 데가 없어요. 신문배달 아니면 노가다를 할 수밖에 없죠."

 2010년 8월 23일 오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열린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채수창 전 서울 강북경찰서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표창장과 함께 파면 인사발령통지서를 보여주고 있다. 채수창 전 서장은 조현오 서울청장의 실적주의를 공개비판하며 동반사퇴를 요구한 뒤 파면당했다.
 2010년 8월 23일 오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열린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채수창 전 서울 강북경찰서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표창장과 함께 파면 인사발령통지서를 보여주고 있다. 채수창 전 서장은 조현오 서울청장의 실적주의를 공개비판하며 동반사퇴를 요구한 뒤 파면당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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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복귀한 박 경사를 기다린 것은 '재징계'였다. 다시 징계위원회가 열려 그에게 3개월의 정직처분을 내린 것이다. 이는 파면됐다가 복귀한 경찰관들이 꼭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였다. 조현오 전 청장의 퇴진을 주장했다가 파면당한 채수창 총경(전 강북경찰서장)조차도 지난 2월 복직했다가 3개월 정직 처분을 다시 받았다.

"정직을 먹으면 21개월 동안 호봉 승진도 안 되고 인사 이동도 안 돼요. 특별관리대상으로 계속 관리받아요. 저는 총도 못 차고 있어요. 중징계 먹은 사람은 사고 위험이 높다고 해서 총을 지급하지 않아요."

박 경사는 "경찰도 조직 내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허용해야 한다"며 "이번 파면사건을 계기로 소통이 잘되는 조직문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부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게 공무원의 신분을 박탈할 만한 범죄는 아니잖아요?" 

[장재룡] "정책제언이 정부비판이라니....한때 죽으려고 했다"

 장재룡 경위.
 장재룡 경위.
ⓒ 무궁화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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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룡(현 강원지방경찰청) 경위는 지난 2011년 3월 복직한 뒤 새로운 근무지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현기증이 나고 호흡이 가팠다. 병원에서는 "맥박이 뛰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좌측 심방이 완전히 차단됐단다.

"결국 대수술을 받고 인공심장 박동기를 달았어요. 기계인간인 셈이죠. 병가를 냈고, 2011년 10월 말에 복직했죠."

장 경위는 억울한 파면이 심장병 발병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파면된 것은 지난 2009년 10월. 경찰청 내부게시판에 경찰내부의 불합리한 관행 개선을 촉구한 글들을 쓴 것이 발단이었다. 특히 현장 경찰관의 정책제언이 정부비판으로 비화된 것이다.

"경찰관이라도 표현의 자유가 있지 않겠어요? 게다가 조직의 발전을 위해 쓴 것인데 그것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정부 비판, 색깔론으로 몰아갔어요. 오죽했으면 지역시민단체가 충북지방경찰청에 항의방문하러 갔겠어요?"

특히 장 경위는 자신을 파면시키기 위해 CCTV까지 활용한 것에 크게 분개했다. 사무실 방호용으로 설치한 CCTV를 경찰관 파면용도로 위법하게 사용했다는 주장이다.

"CCTV를 깐 것은 순찰시간에 글을 올리고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어요. 글을 써서 올리게 되면 내부게시판에 날짜와 시각이 분초까지 기록됩니다. 그런데 제가 그때 몸이 아파 지구대 치안센터에서 잠시 쉬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것을 성실의무 위반으로 판단했어요. 하지만 국가인권위에서는 저를 인권침해 사례로 비중있게 다루어 주었어요."

그런데 소청심사위를 거치면서 징계수위는 파면에서 해임으로 낮아졌다. 이어 해임무효 소송에서도 연달아 승소했다. 결국 경찰은 대법원 상고를 포기했고, 장 경위는 경찰서로 돌아올 수 있었다. 

"경찰은 멀쩡한 사람을 정부 비판자로 몰아 저를 파면시켰어요. 국가와 국민, 조직을 위해 글쓴 사람을 파면하다니 정말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정말 피눈물 납니다. 가족들이 참 힘들어 했어요. 울기도 참 많이 울었죠. 심지어 저는 죽으려고까지 했어요."

장 경위도 박윤근 경사의 사례처럼 복귀한 뒤 재징계 절차를 밟았다. 그에게는 정직 2개월 처분이 내려졌다. 게다가 충북지방경찰청에서 강원지방경찰청으로 강제발령났다. 그는 재소청과 재소송을 준비했다.

"정직 2개월 처분을 결코 인정할 수 없었어요. 법원에서 징계 혐의를 다 기각했으면 거기에 맞춰 징계했어야지요." 

준비하던 소송을 중단하고 새로운 근무지인 강원지방경찰청으로 가던 중에 심장병이 발병한 것이다. 몇개월 병가를 내고 지난 2011년 10월 말에서야 온전하게 복귀했다. 그런데 장 경위를 더욱 분노하게 한 상황이 생겼다.

"저를 감찰하고 파면시킨 충주경찰서 사람들이 특진을 상신했어요. 이것은 저를 부관참시하는 겁니다. 그동안 내부게시판에 글쓰는 걸 자제해 왔어요. 하지만 이걸 보고 참을 수 없어 '정의와 진실, 사실은 이렇다'라는 글을 썼죠."

25년차 경찰관인 장 경위에게 정년까지는 8년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정년까지 채우고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도 "남은 기간 조용히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다가 퇴직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파면됐다가 가까스로 살아남은 한 경찰관의 최후 진술과도 같았다.


#파면경찰관#박윤근#장재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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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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