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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두개의 문>을 관람하기 위해 극장을 찾은 현병철 인권위원장 (출처: @55nina55)
 다큐멘터리 <두개의 문>을 관람하기 위해 극장을 찾은 현병철 인권위원장 (출처: @55nina55)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인권위 직원 A씨는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간부 몇 명과 함께 올라탔다. 엘리베이터 뒷면에 붙은 사진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이날(2일) 오후 인권위 노조 주최로 열릴 '영화 <두 개의문> 감독 간담회' 홍보 포스터였다. 한 간부가 포스터를 가리키며 현 위원장에게 말했다.

"위원장님, 저 영화 한 번 보시죠. 분명 인사청문회에서 질문 나올 텐데."

현 위원장이 뒤를 돌아 포스터를 바라봤다. 뭔가 새로운 걸 발견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면 비서실장한테 잡아 보라고 해봐."

청문회 대비해 영화 보러 간 현 위원장... 관객들 "우리 그냥 나가요"

2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안 엘리베이터에서 인권위 직원 A가 겪은 일이다. 그는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올라가는 현 위원장 일행과 같은 공간에 있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됐다. 이를 전해들은 한 인권위 관계자는 4일 오후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이같이 밝혔다.

4일 오전 직원 A씨가 들었던 말은 현실이 됐다. 현 위원장은 인권위 관계자 6명과 함께 이날 오전 11시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을 보러 서대문에 있는 한 독립영화 전용극장을 찾았다. 그들은 상영관 맨 뒷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현 위원장이 영화를 보러왔다는 소식이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의 귀에 들어갔다. 상영관으로 달려가 그의 영화 관람을 저지했다. 명숙이 극구 말렸던 데는 이유가 있다. 영화 <두 개의 문>이 다루고 있는 사건인 용산참사는 현 위원장과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현 위원장은 2009년 12월 인권위가 '경찰의 강제진압에 문제가 있었다'는 내용의 용산참사 관련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려 할 때 강력하게 반대한 바 있다. 당시 안건이 가결될 것으로 보이자 그는 급히 폐회를 선언했다. 인권위원들이 항의하자 황급히 회의장을 떠나며 "독재라도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명숙은 '현병철, 인권위원장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상영관 앞으로 나가 외쳤다.

"이 자리에 현병철 위원장이 함께 있습니다. 그는 아직 용산 철거민들에게 사과도 안했습니다. 그가 영화를 같이 보려면 사과부터 해야 합니다. 위원장 연임을 안 하겠다는 다짐도 해야 합니다. 이런 그와 영화를 보실 건가요?"

관객들은 "어디에 있느냐"며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명숙이 "맨 뒤에 있다"고 알려주자 관객들이 일제히 현 위원장을 쳐다봤다. 상영관 가운데에 앉아 있던 한 관객이 일어났다.

"저 사람이랑 영화 같이 볼 거예요?"

관객들은 "우리 그냥 나가요"라고 말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당황한 인권위 관계자들이 귀엣말을 주고받았다. 현 위원장과 그의 일행은 상영관을 빠져나갔다. 조용히 왔다 조용히 사라진 것이다.

 대큐멘터리 <두개의 문>을 관람하려다 관객들의 항의를 받고 상영관에서 나가고 있는 현병철 인권위원장 (출처: @55nina55)
 대큐멘터리 <두개의 문>을 관람하려다 관객들의 항의를 받고 상영관에서 나가고 있는 현병철 인권위원장 (출처: @55nina55)

"현 위원장님, 인권위 직원들과 대관관람하시죠"

인권위 직원들은 현 위원장의 영화관람 계획을 알고 있었을까. 인권위 관계자는 "주변에 이 사실을 알았던 사람이 아무도 없다"며 "나도 트위터 보고 쫓겨났다는 등의 소식을 접했다"고 말했다.

인권위 홍보협력과 관계자는 "인권위가 용사참사와 관련해 조사한 적도 있어서 (현 위원장이) 영화를 보러 갔으나 관객들에게 피해가 갈 것 같아 극장을 나왔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현 위원장이 순수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고 싶었다면 얼마든지 기회는 있었다. 인권위 직원들은 지난주 주말 단체관람을 했다. 2일 오후에는 영화감독과 대화하는 시간도 마련했다. 그는 정말 함께할 생각이 없던 걸까. 인권위 관계자는 "직원들과 보겠다는 언질조차 없었다"며 "가뜩이나 노조에서 하는 행사인데 가겠나, 노조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인데"라고 한 숨 쉬며 말했다.

내부 직원들은 그가 상영관에서 쫓겨난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인권위 관계자는 허탈하게 웃으며 딱 한 마디만 했다.

"온갖 망신 다 시킨다."

한편 이날 오후 인권위 사내게시판에는 이런 글 하나가 올라왔다. 현 위원장이 봤을지는 미지수다.

"위원장님 자비로 통 크게 대관관람 한번 하시죠. 오늘 가셨던 인디스페이스는 110석밖에 안 되니까. 단체면 할인되니까. 대관관람하시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어떠신지? 진지하게 제안 드립니다. 근무시간에 근무의 일환으로 직원 모두 같이, 한번 가심이."


태그:#현병철, #두 개의 문, #인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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