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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관에서 퇴임한 박시환(59) 인하대학교 법과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대한민국 사법부에 뼈를 깎는 반성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사진제공ㆍ새얼문화재단>
대법관에서 퇴임한 박시환(59) 인하대학교 법과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대한민국 사법부에 뼈를 깎는 반성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사진제공ㆍ새얼문화재단> ⓒ 한만송

"다시 독재정권이 들어서면 (사법살인이) 다시 발생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나? 법원은, 과거사 정리를 자기 노력으로 한 것이 아니라 민주화에 무임승차했다. 친정(=법원)에 있는 분들에게 미안하지만, 밖에 있는 분들이 더 비판하고 법원에 애정을 가져야 한다. 법원(=사법부)이 무너지면 여러분의 인권과 재산이 무너진다."

 

신임 대법관 후보자들의 위장 전입과 부동산 투기, 종교편향 논란이 제기되는 가운데, 지난해 11월 대법관에서 퇴임한 박시환(59) 인하대학교 법과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새얼문화재단(이사장 지용택)이 11일 개최한 제316회 새얼아침대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 교수는 '진보당(죽산 조봉암 1898~1959) 사건의 재심 판결과 사법부의 과거사 정리'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사법부에 대한 애정과 함께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주문했다. 그는 "죽산 조봉암의 간첩 혐의로 인한 사형이 이승만 정권의 영향력이 미쳐서 이뤄졌다"고 한 뒤 "사법부의 존재 이유는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사법부의 독립 의지와 국민을 보호하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대법관 시절인 2011년 1월 20일 죽산 조봉암 사건의 재심을 맡아 무죄를 선고했다. 박 교수는 당시 주심 대법관을 맡았다. 죽산 조봉암은 대한민국 헌정 사상 '사법살인'의 첫 희생자로 꼽힌다. 조봉암 사형 사건은 진보당 추진 과정에서 조봉암이 1956년 5월 6일 북한 조국통일구국투쟁위원회 김약수에게 밀사를 파견하고, 같은 해 6월 간첩 박정호와 밀회하고, 진보당 결성 후 1958년 8월 12일 조총련계 간첩 정우갑과 밀회해 물품 등을 수수한 혐의의 사건이다.

 

당시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과 자웅을 겨뤘던 조봉암은 국군 특무대의 불법수사 등으로 인해 간첩죄가 적용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박 교수는 조봉암에게 적용된 국가보안법과 간첩죄 적용을 떠나 불법수사와 고문 등으로 얻은 증거는 인정하지 않아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또한 1959년 재심 사건에서 불법 감금 등이 재심 사유에서 기각돼 2차 재심에서는 '수사권 없는 권한 남용'이 적용돼 아슬아슬하게 재심이 결정날 수 있었다며, "유족이 1차 재심에서 그 주장을 했다면 재심이 될 수 없었다"고 재판의 일화를 털어놓았다.

 

조봉암은 당시 고문 등에 의한 불법수사에도 불구, 간첩죄 등이 적용돼 1심에서 징역5년을 선고 받았지만, 2심과 3심에서 사형이 내려졌다. 1959년 7월 30일 재심이 기각돼 다음날 사형이 집행됐다.

 

 박시환 전 대법관.
박시환 전 대법관. ⓒ 한만송

박 교수는 강연 마지막에 "목을 내 놓고 사법부 독립을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는 의지가 있었어야 한다. 사법부는 지금 어떠한가? 아직도 아쉽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다. 많은 재심 사건이 진행되고 있지만, 법원이 자발적으로 한 게 아니다. 인혁당, 조봉암 무죄 확정 후 법원이 뒤집어져야 하지만 언론에 몇 줄 나오고 말았다"고 한 뒤 "법원이 국민에게 사과해야할 입장이다. 한 두 명도 아니고, 몇 십 명을 사형시키고 몇 십 년 후 무죄를 주는 미개한 국가다. 그러면서 피눈물 흘리며 고통을 느끼는 사람도 없다"고 사법부의 뼈를 깎는 반성을 주문했다.

 

박 교수는 '우리법연구회'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한다. 1980년 5공화국 법관 인사 파동과 1993년 3차 사법부 파동을 주동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2003년 8월 당시 대법관 인사를 비판하며 사직서를 냈다가 노무현 정부 때 대법관으로 임명됐다. 대법관 재직 시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의 인권 보장을 위한 다수의 판결을 내려 잘 알려져 있다. 한편 고 노무현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리는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의 지사직 상실을 대법관 합의로 이끌어내기도 했다.

 

박 교수는 올해 1월 1일자로 인하대 로스쿨 전임교수로 부임했다. 대법관 출신으로 대학에서 강의와 연구를 수행하는 전임교수로 발령받은 첫 사례의 주인공이 됐다. 급여와 책임시간에 약간의 예우가 있지만, 본인의 희망에 따라 다른 교수와 동등한 복무 조건에서 근무해, 대형 로펌을 좇아가는 법조인과 대조를 보여 화제를 낳기도 했다.

 

한편, 지용택(75) 새얼문화재단 이사장은 이날 인사말을 통해 "이달 말이 죽산 조봉암 선생이 법정 사형을 받아 사라진 지 53주년이 되는 날이다. 법원으로부터 무죄가 돼 누명을 벗었으나, 우리의 마음은 쓰리고 아프다"며 "죽산 조봉암 선생의 생환(=무죄 판결)을 통해 인천의 정체성과 역사를 다시 바라보고 그것을 후손에게 넘겨주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평신문(http://bpnews.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죽산 조봉암#사법살인#박시환 대법관#대법관#새얼아침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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