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만 끊었다고? 위원장님 거짓말 좀 하지 마세요! 그날 제가 현장에 있었습니다!"
휠체어를 탄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현병철 인권위원장을 향해 소리쳤다.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1박 2일 국가인권위 점거농성을 벌인 2010년 12월 당시 "전기를 단전한 적도, 엘리베이터 운영을 중지한 적도 없다, 2시간 동안 엘리베이터 운영을 중지해서 사무총장이 사과한 적은 있다"고 현병철 위원장이 발언하는 도중이었다.
곧, 바로 옆에 있던 검은 양복을 입은 국회 직원들이 박 대표를 제지했다.
"그러지 말아요. 어디 힘으로 막아!" 김광이 마실연대 활동가가 절규했다. 회의장 밖으로 끌려나간 이들은 '소란을 피우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청문회를 참관할 수 있었다. 2년 전, 인권위 농성 도중 폐렴을 얻어 결국 목숨을 잃은 동지가 떠올라서였을까. 김광이 활동가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16일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후보 국회 인사청문회는 '위증' 논란으로 얼룩졌다. 새누리당 증인으로 채택된 손심길 인권위 사무총장은 "장애인단체 인권위 점거농성 당시 인권 침해 행위가 있었느냐"라는 이철우 새누리당 의원의 질문에 "없었다"라고 답했다.
전 상임위원의 눈물 "인권위에 있는 동안 인권은 없었다" 손 사무총장은 "전기는 들어갔고, 난방은 저희가 단독건물이 아니라 임차된 건물이기 때문에 난방이 함부로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답변서에서도 "위원회는 점거 농성기간 중 엘리베이터와 전기 공급을 중단한 사실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장하나 민주통합당 의원이 "제가 인권위가 입주해 있는 금세기 빌딩 관리 업체에 확인했다"면서 말을 받았다. 장 의원은 "관리업체에 따르면, 중앙 냉·난방이지만 층별, 사무실별 냉·난방 조절이 가능하고 그 전까지도 점거농성이 많았지만 건물 관리실에 요청을 해서 휴일에도 전기, 난방을 틀어준 것이 수차례"라면서 "이 자리에서 위증을 하면 안 된다"고 분노했다.
2009년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인권위 상임위원을 지낸 장향숙 전 상임위원도 증인으로 나섰다. 장 전 상임위원은 점거농성이 일어났던 2010년 12월 3일 밤을 떠올렸다.
"12월 3일은 유엔이 정한 장애인의 날, 통상 장애인들은 매년마다 인권행동을 한다. 그날 밤에 제가 퇴근하고 난 이후에 한밤중에 전화가 왔다. '너무 칠흑 같이 어둡다. 춥다. 화장실을 갈 수 없다'. 중증 장애인 분들이..."어느새 목이 멘 장 전 위원은 입술을 깨물었다.
"국가인권위는 장애인 차별 금지법을 시행하는 기관이다. 제가 책임자인데,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그게 과연 인권위가 인권을 존중하고 인간을 존중하는 행위였나. 제가 근무하는 동안 인권위 안에 인권이란 존재하지 않았다."용산참사 유가족 "최선 다했다고? 웃음밖에 안 나온다"
2009년 12월 '용산참사' 안건을 다룬 전원위원회 당시 현 위원장이 "독재라도 어쩔 수 없다"며 회의를 일방적으로 폐회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공방이 이어졌다. 현재 인권위 비상임위원을 맡고 있는 김태훈 인권위 북한인권특위 위원장은 "현 위원장이 일방적으로 막아서 의견을 내지 못한 것이 아니라, 12월 28일자로 의견을 내자는 위원의 수가 재적위원의 과반수가 되지 못했다"면서 "전원위는 파행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심상정 통합진보당 원내대표가 반박했다. 심 원내대표는 "당시 11명의 위원 가운데 6명이 찬성했다"면서 "과반이 안 됐다는 건가"라고 물었다. 김태훈 위원은 "그렇다면 과반이 된다"라고 바로 꼬리를 내렸다. 이에 심 원내대표는 "뭐하자는 겁니까"라며 언성을 높였다.
용산참사 유가족인 권영숙씨도 증인으로 나섰다. 착잡한 표정의 권씨는 "너무 서글프다"면서 "현병철씨가 여기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거짓증언, 위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씨는 "현 위원장이 용산참사 관련해서 '최선을 다했다'고 하는데 웃음밖에 안 나온다"면서 "용산참사 이후 3년이 훨씬 지났지만 우리는 현병철씨 이름도 모르고, 국가인권위원장인지도 몰랐다"고 씁쓸해했다.
지난 9일 권영숙씨를 비롯한 유가족들은 인권위를 방문해 현병철 위원장과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권씨는 "진상규명 해달라고 할 때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유가족을 무시하고,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왔다'면서 5분만 만나 달라고 4시간을 기다렸는데도 불구하고 묵인했다"면서 "유가족 앞에서 떳떳하게 사퇴하겠다고 말했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난데없는 '종북 공격'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장우 새누리당 의원이 김태훈 비상임위원에게 "김일성 3부자를 찬양하고 칭송하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나"라고 질문하자, 김 위원은 "당연히 현행법상 위반"이라고 답했다. 이어 이 의원은 "직원 중에 종북세력으로 판단될 만한 직원이 있나"라면서 "전 직원에 대한 과거 경력 사항을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이어 "북한 내에 김일성 3부자 외에 탈북자에 대한 인권유린 하는 사람 인적사항을 정리하고 있나"라고 질문한 이장우 의원은 "부적절한 언행으로 탈북자들 가슴에 상처를 주는 분들이 계시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며 임수경 민주통합당 의원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