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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사상 초유의 언론사 공동파업 사태가 사실상 막을 내렸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이하 MBC 노조)는 17일 조합원 총회를 열고 '파업 잠정 중단'을 결의했다. 파업 170일 만이었다.

시작은 <국민일보>였다. <국민일보> 노조는 지난해 12월 23일 조용기 목사 일가의 국민일보 사유화 반대와 편집권 독립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이후 MBC 노조(1월 30일), KBS 노조(3월 6일), <연합뉴스>(3월 15일)도 파업에 들어갔다. YTN 노조는 지난 3월 8일부터 단계별 파업을 이어갔다. '공정보도 사수'를 파업 목표로 내건 이들은 한 목소리로 사장 퇴진을 외쳤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어느 언론에서도 사장 퇴진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173일간의 파업 끝에 업무에 복귀한 <국민일보> 노조는 노사합의 일주일 만에 조합원 6명이 대기발령을 받았고, KBS 역시 '보복인사', '제작 자율성 침해' 논란이 나오고 있다. '공정보도'의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MBC 파업' 1등 공신, <무한도전>과 김재철 사장

MBC노조 파업 첫날인 1월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사옥 로비에서 열린 노조파업출정식에서 노조간부들이 국민 앞에 석고대죄한다며 허리숙여 대국민사과인사를 하고 있다.
 MBC노조 파업 첫날인 1월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사옥 로비에서 열린 노조파업출정식에서 노조간부들이 국민 앞에 석고대죄한다며 허리숙여 대국민사과인사를 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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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지난 6월 말 국회 개원 합의 이후 MBC 노조가 파업을 접는다는 소식이 들리자, "MBC마저?"라는 반응이 나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MBC 노조의 파업은 타 언론사 파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여론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다. 23일 만에 75만 명이 넘는 시민이 김재철 사장의 구속을 촉구하는 서명에 참여했고, '으랏차차 MBC', '방송 낙하산 퇴임 축하쇼', '전 그런 사람 아닙니다' 세 차례의 파업 콘서트 때 모인 '후불 관람료'로 약 1억 원이 모였다. 유명 인사들의 지지도 끊이지 않았다.

MBC 노조가 이처럼 '여론전'에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무한도전>과 김재철 사장이 있다. MBC 파업은 곧 <무한도전>의 결방을 의미했고, 연예매체들은 주말마다 "<무한도전> 결방 ○○주째" 기사를 쏟아냈다.

김재철 사장은 '화수분' 같은 존재였다. 파업 중인 타 언론사에서 "우리의 가장 큰 적은 김재철 사장"이라는 농담 섞인 푸념이 나올 정도였다. 법인카드 사용내역, 무용가 J씨 특혜 지원 의혹, 최근 문제가 된 차명폰 사용까지. 김재철 사장의 행적 하나하나가 논란이 되었다.

징계 강도도 상상을 초월했다. 이번 파업 기간 중 해고자 수는 6명. 해고자를 포함해 총 44명이 징계를 받았다. 지역 MBC 조합원까지 포함하면 80명 가까이 된다. 또한 서울 MBC 69명, 지역 MBC 51명이 대기발령을 받았다. MBC 노조에 따르면, 김재철 사장 부임 이후 2년여 동안 징계를 당한 조합원은 총 232명. 조합원 4명 가운데 1명꼴로 징계를 받은 셈이다. 사측이 징계의 칼을 휘두를수록, '김재철 퇴진' 목소리는 높아졌다.

지난 6월 29일 발표된 여야 개원 합의문은 이러한 '민의'가 반영된 결과였다.

여야는 8월초 구성될 새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가 방송의 공정 책임과 노사 관계에 대한 신속한 정상화를 위해 노사 양측 요구를 합리적 경영 판단 및 법 상식과 순리에 따라 조정, 처리하도록 협조한다.

MBC 노조는 이 문구를 근거로 여야가 사실상 김재철 사장 퇴진을 합의한 것으로 보았다. 이후 노조 업무 복귀 논의는 급물살을 탔고, 17일 '파업 잠정 중단' 결의로 이어졌다. 

'업무복귀' 둘러싼 반발, 당연하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지부가 170일 만에 파업을 잠정중단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 사옥 '민주의 터'에 170일에서 멈춘 파업 현황판이 보이고 있다. 해고자들의 이름 옆에는 해고 이후 누적된 날짜가 적혀 있다.
▲ '170'에서 멈춘 파업, 하지만 해고날짜는...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지부가 170일 만에 파업을 잠정중단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 사옥 '민주의 터'에 170일에서 멈춘 파업 현황판이 보이고 있다. 해고자들의 이름 옆에는 해고 이후 누적된 날짜가 적혀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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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반발도 있었다. 파업 정리 집회인 'MBC 정상화를 위한 업무복귀투쟁 선포식'에서 정영하 노조위원장은 "투쟁의 방법이 바뀌어서 국민 여러분들은 헷갈릴 것이다"라면서 "우리 동지들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 있다, 그래서 2주간 의견 모으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정치권의 '김재철 사장 퇴진 합의'라는 '어음'만 받고 들어갈 수 없다"라는 의견도 상당수 있었다고 한다. 노조가 지난 9일부터 '업무 복귀'를 놓고 조합원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이 10일 알려지자, 트위터 등 온라인상에서도 '실망'의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지난 170일간 "김재철 사장이 퇴진해야 파업을 접는다"고 공언해 온 MBC 노조였기에 이러한 반응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해 보인다. 이를 의식한 듯 정 위원장은 17일 기자간담회에서 "가장 빠른 시일 내에 (MBC 사태의) 완결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이 방법"이라면서 "오해가 있는 국민이 계시더라도 8월에 김재철 사장이 퇴진하는 걸 보시면 '저런 사정이 있었구나' 말씀하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MBC 노조가 결코 '쉬운 길'을 택한 것은 아니다. "아직 바뀐 것 없다. 되레 더 어려운 환경에, 더 어려운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는 정영하 위원장의 말처럼, 노조의 업무복귀는 또 다른 싸움의 시작이다. 대규모 징계로 인해 당장 복귀할 수 없는 인력이 100여명에 이르고, 이 자리는 파업 기간 동안 채용된 '시용 인력'이 채우고 있다. '3차 대기발령설'도 나오고 있다. 오는 8월 새롭게 구성되는 방문진 이사의 여야 추천 비율은 각각 6대3. '제2의 김재철'이 사장으로 선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먼 길 지난하게 왔지만 아직 갈 길이 더 먼 것 같다. 170일 동안 저항하면서 몸으로 보여줄 수 있는 건 다 보여준 것 같지만 김재철이 망친 MBC를 다시 되돌려놓으려면 훨씬 더 힘들 것이다."

정영하 위원장의 '복귀투쟁선언'이 비장하게 느껴진 이유다.

"만약 김재철 물러나지 않는다면? 성과가 없는 것일까"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지부가 170일 만에 파업을 잠정중단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 사옥 D스튜디오에서 열린 'MBC 정상화를 위한 복귀투쟁 선포식'에서 정영하 MBC 노조위원장이 "8월부터 새 방문진 이사들이 임기를 시작하는데 김재철 사장의 버티기 작전을 쓰며 해임하지 않을 겨우 또 다시 파업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하며 "공정방송 사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지부가 170일 만에 파업을 잠정중단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 사옥 D스튜디오에서 열린 'MBC 정상화를 위한 복귀투쟁 선포식'에서 정영하 MBC 노조위원장이 "8월부터 새 방문진 이사들이 임기를 시작하는데 김재철 사장의 버티기 작전을 쓰며 해임하지 않을 겨우 또 다시 파업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하며 "공정방송 사수"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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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언론노동조합 MBC 지부가 170일 만에 파업을 잠정중단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 사옥 D스튜디오에서 열린 'MBC 정상화를 위한 복귀투쟁 선포식'에서 집행부 조합원을 비롯한 김소영 조합원이 대국민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지부가 170일 만에 파업을 잠정중단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 사옥 D스튜디오에서 열린 'MBC 정상화를 위한 복귀투쟁 선포식'에서 집행부 조합원을 비롯한 김소영 조합원이 대국민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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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MBC 노조 조합원들의 복잡한 마음을 읽어서였을까. '업무복귀투쟁 선포식'에는 전국언론노동조합 2, 3대 위원장을 지낸 바 있는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가 특별히 참석했다. "나이 70 넘어서 철없이 애들 쫓아다니는 한심한 녀석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문을 연 권 전 대표는 "어제 정영하 위원장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여러분들이 전체적으로 모이는 자리에 꼭 가고 싶다고"라며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여러분들은 파업 투쟁의 승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여러분들은 내내 김재철 사장 물러나라고 했다. 오늘도 국민들이 서명한 서명용지를 여러분들 앞에 두고 있다. 만약 김재철 사장이 물러나지 않는다면? 성과가 없는 것일까."

순간, 장내가 숙연해졌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여러분들은 무엇을 위해서 파업했나. 공정방송 하기 위해 투쟁했다. 공정방송의 길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거다. 이명박 정부 다음에 민주정부라고 내세우고 인정받을 수 있는 정권이 들어섰을 때 그때도 공정방송의 길은 계속되지 않을까. 제대로 된 노조라면 그 어떤 정권과도 항상 경쟁적, 대립적 관계에 들어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승리란 무엇인가. '170일 싸웠는데 또 싸워야 하나', '170일 싸워도 안 됐는데'라는 생각을 지워버리는 거다. 김재철 사장이 나가고 나면 여러분들 할 일은 없어지는 건가. 김재철 사장이 나가면 하면 공정방송이 이루어지는 건가. 아니다. 김재철 사장이 있든 없든 가열차게 나아가야 한다."

조합원들의 박수 소리가 행사장을 가득 메웠다. 18일 오전 9시, MBC 조합원 780여 명은 '업무복귀투쟁'을 시작한다.


태그:#MBC 노조, #MBC, #김재철, #권영길, #무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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