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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한영씨
 윤한영씨
ⓒ 윤한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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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단체 소속으로 사진을 전담해서 찍는 직원은 어느 자치단체나 다 있다. 1명이 있는 곳도 있고, 2명이 있는 곳도 있다. 이들은 대부분 자치단체장이 참석한 행사 위주로 사진을 찍는데, 그 외에도 다양한 기록사진을 찍기도 한다. 이들이 찍은 사진들은 대부분 자치단체의 홍보용이나 보도자료용으로 활용된다. 이들은 대부분 상당한 수준의 사진 실력을 갖고 있으나, 일부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

윤한영씨 역시 광명시청 사진실 소속으로 사진을 찍는 일을 전담한다. 그에 대한 관심은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됐다. 광명시 가학광산 취재를 갔을 때였다. 양기대 광명시장과 가학광산 입구에서 짧은 인터뷰를 했다. 그때 윤한영씨가 사진을 찍었다.

윤씨는 기사에 넣을 자료사진을 보내줬는데 그 가운데 유독 한 장이 눈길을 끌었다. 보통 이런 경우 시장의 얼굴만 크게 잡은 사진을 보내는데 윤씨는 달랐던 것. 보내온 사진에 멀리서 분위기(?) 있게 찍은 사진을 한 장 포함시켰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느낌이 남달랐다. 그 사진은 기사에 활용하지 않았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아니나 다를까, 광명시청 홍보실 관계자는 "윤한영씨가 상을 여러 번 받은 사진작가"라고 자랑했다. 자치단체에 소속되어 날마다 사진을 찍는 직업을 가진 이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어떤 생각으로 어떤 사진을 찍는지, 직업에 대한 만족도는 높은지 등등 궁금해졌다. 그를 만나 그의 '사진인생'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또 한 가지, 그에 대해 덧붙일 것은 그의 성실한 태도다. 경기도 대다수의 자치단체는 자료사진을 부탁하면 메일로 보내면 그만이다. 하지만 윤씨는 사진을 보낸 뒤, 문자 메시지를 통해 꼭 확인하고, 더 필요할 것 같다는 판단을 하면 따로 요청하지 않아도 더 보낸다. 매번 그랬기 때문에 최선을 다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지난 19일, 광명시청 사진실에서 윤한영씨를 만났다. 기자와 마주앉은 그는 무척이나 쑥스러워했다. 그는 말 주변이 없다면서 여러 차례 말을 중단했지만, 가슴 속에는 하고 싶은 말이 무척이나 많이 담겨 있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그가 사진을 처음 찍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3년 5월. 경력 19년차였다. 19년 동안 광명시청 사진실 소속으로 오로지 사진만을 찍으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윤한영씨는 광명시청에 근무하면서 처음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영상관련 자격증이 있어서 그걸로 시청에 입사했는데, 사진을 찍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진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초짜였던 그는 당시, 사진을 찍을 때마다 두려웠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처음 사진을 찍을 때는 많이 두려웠다. 당시는 필름카메라여서 찍으면서 볼 수가 없었다. 디지털카메라는 찍은 사진을 그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필름카메라는 그렇지 않았다. 찍으면서도 항상 불안했다. 현상을 해서 사진으로 뽑을 때까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19년간 찍은 그의 사진... 광명시의 역사를 말없이 증언

 윤한영씨
 윤한영씨
ⓒ 윤한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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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기는 하는데, 사진을 어떻게 나올지 전혀 예상할 수 없으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을 배우면서 찍다 보니 잘 안 오거나 시커멓게 나올 때도 많았다. 그뿐인가, 필름을 넣지 않고 사진을 찍어서 낭패를 본 경우도 있었다. 디지털카메라는 메모리 카드를 넣지 않으면 촬영할 수 없게 세팅이 가능하지만 필름 카메라는 다르다.

당연히 필름이 들어 있을 줄 알고 촬영을 했다가 나중에 필름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낭패감을 말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사실대로 고백하고 야단을 맞을 수밖에 없었지만, 참으로 힘든 순간이었다.

그렇게 경력이 쌓이다 보니 19년이란 세월이 순식간에 흘렀다는 것이 윤씨의 회고다. 궁금했다. 언제부터 사진에 자신이 붙었는지. 5년 혹은 10년?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도 사진을 찍으면서 불안하다. 내가 잘 찍는 건지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내가 사진을 잘 찍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사진을 찍기 전에는 준비를 많이 한다. 인터넷도 찾아보고, 이런 행사는 어떻게 찍어야 하나 늘 생각한다."

보도자료용으로 제공하는 사진을 많이 찍기 때문인지 윤씨는 '보도용' 사진이 가장 적성에 맞는다고 말했다. 인물이나 풍경 사진보다는 보도용 즉 기록용 사진이 자신 있다는 것이 윤씨의 설명이다.

하긴 그의 역할이 신문사 소속 사진기자와 다를 건 별로 없다. 자치단체에서 기자들에게 배부하는 보도자료에 그가 찍은 사진이 첨부되어 나가기 때문이다. 요즘은 보도자료만 나가는 경우는 드물다. '비주얼'을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답게 사진이 그림자처럼 따라간다.

그 사진들은 길게 보면 광명시청의 역사로 남는다. 지난 19년간 그가 찍어온 사진은 광명시의 역사를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지난 2005년 12월 31일, 광명시장에 불이 났을 때였다. 그때 현장을 기록하기 위해 소방대원들과 함께 화재현장으로 들어가서 사진을 찍었다. 매캐한 연기를 다 마시면서... 또 기억에 남는 건, 광명시가 납골당 건립을 추진할 때 찍은 이효선 전 시장의 사진이다."


지난 2007년, 이효선 전 광명시장은 납골당 건립을 추진했다. 하지만 인근 지역인 안양 석수동에서 강하게 반발하면서 두 시가 갈등을 빚었다. 당시 이 전 시장은 반대집회에 나선 석수동 주민들에게 바지가 찢기면서 속옷 차림이 되는 수모를 겪었다. 그때 사진을 윤씨가 찍었던 것. 이 사진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기자는 그 사진이 지난 4·11 총선에 출마한 이효선 전 시장의 선거사무실에 크게 확대된 채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어린이날 집에 아이들 놔두고 다른 어린이들 사진기에 담으러 나서

 윤한영씨가 찍은 광명시장 화재 당시 현장 사진. 윤씨는 이 때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회고했다.
 윤한영씨가 찍은 광명시장 화재 당시 현장 사진. 윤씨는 이 때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회고했다.
ⓒ 윤한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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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사진은 많은 것을 보여주고 들려준다. 그것을 윤씨는 당시 이 전 시장의 사진을 통해서 깨달았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19년 동안 사진을 찍으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혼자 일하는 것이었다는 것이 윤씨의 고백이다. 윤씨 혼자 광명시청의 사진을 전담해서 찍었다. 사진을 찍는 이가 그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시장이 참석하는 행사는 모두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어야 했다. 때문에 휴일에도 사진기를 메고 행사장을 돌아다니는 일이 다반사였다. 어린이날은 '집에 어린이 둘'을 놔두고 어린이 행사장에서 다른 어린이들을 사진기에 담으러 나서야 했다. 사진을 직업으로 삼았으면서도 자신의 아이들 사진을 제대로 찍어줄 수 없어 가장 안타깝고 아쉬웠다고 했다.

가장 기억에 남은 해프닝은?
"흑백사진을 인화할 때였다. 인화하고 남은 약품을 페트병에 넣어서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보리차인 줄 알고 꿀꺽꿀꺽 마셨다. 색깔이 보리차 색깔과 비슷했다. 덕분에 병원에서 위세척을 깨끗하게 해야 했다."

양기대 시장을 행사장에서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면서 사진을 찍는 윤씨에게 양 시장이 어떤 때 사진이 가장 잘 나오는 지 물었다.

"시장님은 늘 웃으셔서 사진이 잘 나오는 편인데, 너무 활짝 웃으면 보조개가 많이 들어가서 흉하게 나온다. 적당히 웃는 듯 마는 듯 웃으실 때 가장 잘 나온다."

그러면서 그는 찍은 사진을 '보정'한다고 귀띔했다. 지난 2003년 공무원 미술대전에 사진을 출품해 동상을 받았다. 그 이후 이런저런 공모전에 꾸준히 출품했고, 여러 차례 상을 받았다. 상복이 많은 편인지, 출품할 때마다 상을 탔다면서 그는 수줍게 웃었다.

한 컷을 찍더라도 혼을 담아 많이 생각해서 찍는 게 중요

 2003년 공무원미술대전에서 동상을 받은 윤한영씨의 작품. 셔터를 누르는 순간, 느낌이 왔다고 윤씨는 말했다.
 2003년 공무원미술대전에서 동상을 받은 윤한영씨의 작품. 셔터를 누르는 순간, 느낌이 왔다고 윤씨는 말했다.
ⓒ 윤한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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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때 가장 어려울까?

"20년 동안 사진실에서 혼자 일을 해왔다. 남들이 보기에는 카메라를 들고 왔다 갔다 하면서 사진만 찍으면 되는 줄 아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할 일이 아주 많다. 사진을 찍으면 그냥 곧바로 나오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찍은 사진을 보정하고, 정리하고, 기록하는 일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누가 대신해줄 수도 없고."

홀로 하는 일이니 애환을 나눌 동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속사정을 알아줄 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그는 "광명시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데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덧붙였다.

윤씨는 "지난 19년 동안 8명의 시장님을 모셨다"면서 "지금까지 찍었던 시장님들의 사진을 주제로 전시회를 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그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시장님들의 사진'은 "잘 나온 게 아닌 재미있는 모습들이 담긴 것"이란다.

그는 사진을 잘 찍는 노하우를 알려달라는 기자의 말에 "사진을 잘 찍기 위해서 많이 찍으라고 하는데 별로 권장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한 컷을 찍더라도 혼을 담아서, 많이 생각해서 찍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보도자료용 사진이 남들이 보기에는 막 찍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이 윤씨의 주장이다. 윤씨는 사진 한 장, 한 장을 정성을 다해 찍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언론사의 사진은 한 컷만 쓰면 되지만, 자치단체에서는 백 컷을 찍으면 그것을 다 써야 한다. 그래서 그 사진들이 전부 오케이가 나와야 한다. 그게 정말 힘들다."

뷰파인더를 통해 남들이 안 보는 것들을 본다는 윤씨는 뷰파인더 안은 무척이나 작은 것 같지만 온 세상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19년 동안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으니, 그 혼자만 볼 수 있는 세상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그는 말한다, 자신이 찍은 사진은 그의 이름 대신 '광명시청 제공'으로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 사진 한 장 한 장이 광명시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사진을 찍을 때는 한 컷 한 컷 최선을 다한다고. 앞으로도 죽 그럴 것이라고.


#윤한영#광명시청#사진실#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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