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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여 년간, 대북지원사업과 남북교류협력사업을 하면서 수없이 방문해서 만났던 북한과 북한 사람들. 같으면서도 다른 것 같고, 다르면서도 같은 것 같은 남과 북의 만남에서 발생했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함께 살아가기 위해 고민해 볼 지점들을 하나씩 기사로 전합니다. - 기자말

2008년 1월, 몹시도 추웠던 겨울에 우리는 남쪽에서 제작해서 보낸 콩우유가 북한 어린이들의 입맛에 맞는지 살펴보기 위해 '김정숙' 탁아소를 찾았다. 북한의 탁아소나 유치원에 가면 마지막에 아이들의 공연을 보여주는데, 평양의 각 참관지마다 해설사의 설명에 부담감을 느끼던 분들마저 아이들의 앙증맞은 재롱에 동심으로 돌아가 행복한 기분을 느끼곤 한다. 

공연 거부하고 우리를 노려본 아이

우리 방문단이 탁아소 공연장에 빽빽이 둘러앉자, 공연이 시작되었다. 네다섯 살쯤 될까? 남자아이들 다섯 명이 토끼, 돼지, 강아지, 고양이, 염소 등 집짐승 얼굴이 그려진 관을 머리에 쓰고 한 명씩 돌아가며 해당 동물의 흉내를 내며 동요를 부른다. 그런데 갑자기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한 아이가 자기 차례가 되어도 노래를 부르지 않고, 두 주먹을 꼭 쥔 채 굳건히 서서 우리를 노려보기 시작하였다. 그 눈빛이 원망과 분노에 가득 차 있어서 탁아소 선생님도, 같이 공연하고 있는 아이들도, 우리도 모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남측 대표단에 화가 난 김정숙 탁아소의 아이
 남측 대표단에 화가 난 김정숙 탁아소의 아이
ⓒ 서영준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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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해서 노래 가사를 까먹었나?'

무대 뒤에 있던 선생님께서 그 아이를 응원하고, 반주를 되풀이해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선생님은 그 아이의 손을 잡고 무대 뒤로 퇴장하였고, 우리는 어린아이라 긴장했었나보다며 박수를 쳐주었다. 대여섯 차례 다른 아이들의 순서가 지나간 후, 아까 그 아이가 다시 무대로 나왔는데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고 독창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까와는 딴판으로 노래를 아주 잘하네? 아까는 왜 그랬지? 

1시간 남짓의 공연을 본 후, 아이들의 눈물겨운 전송을 받으며 탁아소 방문을 마치게 되었다. 대표단 전원이 버스에 올라타고 출발하려는 찰라, 어머니들이 탁아소로 우르르 뛰어들어가는 장면이 보였다. 의아해하는 우리에게 안내원이 들려준 사연은 이런 것이었다. 

그날은 1주일 동안 탁아소에 머무르는 '주탁제도'를 이용하고 있는 유아들이 주말을 맞아,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고 한다. 남쪽 대표단의 방문 일정이 예정보다 한참 늦어지니, 탁아소에서는 손님들이 오지 않는 줄 알고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낼 준비를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갈 시간이 다 되어 남쪽 대표단이 탁아소로 들이닥치니, 아이들은 집에 가려고 입었던 겉옷까지 벗고 공연 준비를 다시 시작했던 것이다.

그날 오전에 민족화해협의회(이하 민화협) 안내원이 탁아소 방문 시간이 늦어질 것 같은데 꼭 거기에 가야 하겠느냐고 여러 번 물어 보기에, 나는 콩우유 후원자들 때문에 꼭 가야 한다고 우겼다. 안내원은 오전 일정이 너무 빠듯하여, 우리가 탁아소를 방문하는 시간이 늦어지면 아이들 귀가시간에 맞추지 못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우리는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집에 돌아갈 귀가시간을 넘겨 탁아소를 방문하였고 아이를 데리러 온 어머니들은 남쪽 대표단이 돌아갈 때까지 밖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던 모양이다. 그날은 정말 추웠는데 말이다.

북한 어린이를 돕자는 것이 불청객이 되고 말았네...

"아! 미안해라. 철없는 남쪽 불청객(?) 때문에, 아이들과 어머니들이 고생했겠구나, 평양에 오면 시간 개념이 없어지는데, 오늘이 토요일인 줄도 몰랐네. 이럴 줄 알았으면 탁아소 방문을 취소하자는 안내원의 말에 따를 걸..."

 어린이는 일주일에 한번 집에 가는 날인데 우리때문에 늦어져서 화가 난 것이었다.
 어린이는 일주일에 한번 집에 가는 날인데 우리때문에 늦어져서 화가 난 것이었다.
ⓒ 서영준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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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 와서 많은 분에게 지나친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때 불현듯 아까 우리를 노려보던 아이의 표정이 떠올랐다. 혹시 이 때문이었을까? 안내원에게 물으니 그제야 애를 먹은 사연을 털어놓았다.

그 아이 얼마나 고집이 센지 선생님들도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왜, 갑자기 집에도 못 가고 노래를 불러야 하느냐며 항의가 대단했단다. 너희가 보고 싶어 평양까지 오신 남쪽 어른들이라고 해도 좀처럼 수긍을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선생님들이 아이를 달래고 얼렀다. 결국, 노래를 불러야만 그나마 집에 갈 수 있다는 말에 겨우 무대에 올라갔다고 한다. 겨우 네다섯 살밖에 안 돼 보이는 아이가 참 대단하다. 그 아이의 정당한 항변에 화도 내지 못하고, 아이를 설득하느라 땀 흘린 선생님들도 대단하고...

일주일에 한번 집에 가는 날인데 아이들이 얼마나 들떠 있었을까? 나는 북의 탁아소를 갈 때마다 주말에만 집에 가는 아이들이 안쓰러웠다. 탁아소가 아무리 좋아도 제 부모 슬하와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주일 만에 엄마 손을 잡고 집에 돌아가는 행복한 시간에 남쪽에서 온 알지 못할 불청객들 때문에 방해를 받은 아이의 분노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아저씨 아줌마들이 도대체 뭔데 집에도 못 가고 노래를 불러야 하냐고!!"

아이의 항변은 전적으로 옳다. 틀린 것은 우리 남측 대표단이고, 남한 대표단의 억지를 마지못해 들어줄 수밖에 없었던 북한의 어른들이다. 공연장에서 그렇게 많은 어른이 자기를 쳐다보고 있고 선생님께서 그렇게 애원하는데, 한 치도 굴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저렇게 표현하다니... 정말 당찬 아이다.

자기 집 부모에게 대드는 철없는 응석과는 다르다. 아직 표현도 서투른 유아에 불과하지만, 무대 아래서 울며 떼를 쓴 것도 아니고 당당하게 무대에 올라와 우리를 노려보던 눈빛! 우리 아이도 4살 때 놀이방 재롱잔치 무대에서 얼이 빠졌던 적이 있어 그와 비슷한 상황일 줄 알았는데, 기가 질린 것이 아니라 기가 너무 살아서 정면으로 퍼부어대는 항의였다.
 
남한 사람들이 북의 탁아소에 가서 느끼는 여러 가지 소감 중 대표적인 것이 아이들에게 너무 획일화된 체제 찬양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느낌이다. 남측 대표단이 갔을 때, 늘 첫 번째로 보는 수업장면이 '김주석의 만경대 고향집'에 대한 것인데, 대부분 남측 사람들로서는 그 장면에 공감하기가 어렵다.

북한이 그렇게 교육하는 것은 가장 우선된 교육이 지도자에 대한 것이라는 자체의 교육관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선된 교육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과 획일화된 주입식 교육은 다른 문제다. 만일 획일화된 교육풍토라면, 아까 그 아이 같이 겨우 너댓살 짜리 아이가 모두 지켜보는 앞에서 자기주장을 강하게 펼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날의 남측 대표단의 적절치 않은 시간의 탁아소 방문으로 빚어진 작은 파문 하나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겨레하나) 블로그(http://blog.krhana.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이경 기자는 겨레하나의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겨레하나#김정숙탁아소#북한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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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교류협력 전문단체, 평화와 통일을 위한 시민단체 겨레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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