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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세계의 희망은 모든 활동이 자발적인 협력으로 이뤄지는 작고 평화롭고 협력적인 마을에 있다.' '인도 독립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의 책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2012년 '콘크리트 디스토피아' 서울 곳곳에서는 '마을공동체 만들기'가 한창입니다. 함께 '집밥'을 먹고 책을 읽고 텃밭을 가꾸는 것부터, 아이를 같이 키우고 일자리를 나누고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것까지. 반세기 전 간디의 정신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오마이뉴스>는 다양한 마을만들기 사례를 통해 마을이 왜 희망인지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13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골 마을학교에서 황서준이 알까기 놀이에 져서 친구 형을 업고 뛰는 벌칙을 수행하고 있다.
13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골 마을학교에서 황서준이 알까기 놀이에 져서 친구 형을 업고 뛰는 벌칙을 수행하고 있다. ⓒ 유성호

 13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골 마을학교에서 황서준과 박원명이 알까기 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13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골 마을학교에서 황서준과 박원명이 알까기 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유성호

"비켜!"

"기술이야! 기술!"

서준(8)이가 원명(9)이의 하나 남은 나무 블록을 향해 '알까기 공격'에 들어가자, 원명이는 마치 골키퍼라도 된 것처럼 몸을 탁자에 밀착시키고 두 손으로 '방패'를 만든다. 블록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서준이가 비키라고 하자, "(블록이) 여기 손에 닿으면 지는 걸로 할게"라며 씩 웃는다. 

하지만 이미 다른 누나들을 상대로 2승을 거두고 온 서준이. 원명이의 '수비망'을 피해, 하나 남은 '알'을 저 멀리 날려버린다. "이겼다, 이겼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양팔을 높이 들며 함박웃음을 짓는 서준이. 오빠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서영(6)이도 덩달아 신났다. 원명이는 탁상 위에 엎드린 채 얼굴을 두 팔에 파묻는다. 2 대 1. 한 살 많은 형으로서 체면이 안 선다. 그러고는 말한다.

"다시 해! 챔피언십 2차전 하자!" 

'폭염'이 한 풀 꺾인 지난 13일 오후, 동작구 상도동 주택가 2층에 위치한 '성대골 마을학교'는 시끌시끌했다. 6살부터 초등학교 4학년까지. 10여 명의 '동네 아이들'은 옹기종기 모여 '알까기'를 하는가 하면, 바닥에 커다란 흰 종이를 깔아놓고 '땅따먹기'를 했다. 승패가 갈릴 때면 환호와 탄식이 교차했지만, 그것도 잠깐.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얼굴로 또 다른 '놀이'를 이어갔다. 살구, 할리갈리, 사방치기. 놀이는 무궁무진하다.

주민들 모금으로 만든 '마을 도서관' 2년 만에 회원수 250여 명

 13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골 어린이 도서관에서 김애숙씨가 딸 손시원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다. 큰딸 손지혜는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찾아와 엄마 앞에서 자연스럽게 혼자 책을 읽고 있다.
13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골 어린이 도서관에서 김애숙씨가 딸 손시원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다. 큰딸 손지혜는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찾아와 엄마 앞에서 자연스럽게 혼자 책을 읽고 있다. ⓒ 유성호

'성대골 마을학교'가 문을 연 것은 지난 4월. 창고로 쓰던 40평 남짓한 공간이 방과 후 학교로 변신했다. 학생 수는 30명. 선생님은 아이들의 엄마들이다. 15명의 엄마들은 4개조로 나뉘어 한 달에 5번씩 '쌤'으로 나선다. 이날은 강수연(42), 김애숙(36), 최경희(47)씨가 당번. 아이들과 놀아주느라, 어지른 것 치우느라, 먹거리 챙겨주느라 세 엄마들은 분주했다.

15명의 엄마들이 모이게 된 것은 마을학교 1분 거리에 있는 '성대골 어린이 도서관(관장 김소영)'을 통해서다. 2010년 10월 개관한 성대골 어린이 도서관은 상도 3,4동을 비롯해 인근 주민 250여 명이 월 5000원에서 2만 원을 내는 회원으로 등록되어 있다.

학원 가기 전에 시간이 비어서 도서관을 찾았다는 혜연(11)이와 지우(11)는 막대사탕을 입에 물고 책을 집어 들었다. 혜연이는 친구에게 추천 받았다는 <잠옷파티>를, 지우는 <책 먹는 여우>를 읽었다. 집에서 가깝고 책도 많아서 일주일에 2~3번씩은 도서관을 찾는단다. 혜연이는 "학교 도서관은 딱딱한 분위기인데 여기 오면 친구들과도 놀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25평 규모의 도서관에는 5800여 권의 책이 빽빽하게 꽂혀있다.

성대골 어린이 도서관이 생기기 전, 상도 3,4동에는 주민센터 마을문고 이외에는 책을 빌려볼 곳이 없었다. 김소영 관장(43)을 비롯해 마을문고를 자주 찾던 주민 4명이 책 읽는 모임을 만들었다.

"그냥 책 읽고 토론하자고 모였는데, 음식물 쓰레기를 줄였으면 좋겠다 싶어서 지렁이 분양하고, 골목길 버려진 화단에 국화 심고, 그러다가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이 동네에서는 제일 가까운 도서관이 마을버스 두 번 타고 나가야 하거든요. 주민센터에 있는 마을문고는 너무 협소하고요."

칠순잔치에서 받은 100만 원 쾌척한 동네 할머니

2010년 7월, 마을도서관 만들기 추진위원회가 만들어졌다. 가장 필요한 것은 역시 돈. 평범한 '동네아줌마'였던 김소영 관장은 두 달간 동네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현황조사부터 했어요. 이 동네 교회가 몇 개인지, 어린이집이 몇 개인지, 부동산 다니면서 상가 주인이 누군지. 하루는 태권도 관장님이 오라고 해서 갔더니 차 한 잔 주면서 '왜 그러고 다니냐. 쓸데없이 욕먹지 말고 접어라'고 설득하더라고요. 어떤 사람들은 '그럴 에너지 있으면 다른 걸 하라'고 충고도 하고. 그러다가 어느 날 전화가 왔어요. 마트 점장님인데, 사장님이 제가 놓고 간 리플렛 보고 10만 원 카운터에 맡겼다고. 그게 첫 모금이었어요.

그 뒤에는 어떤 할머니한테 전화가 와서, '자네가 도서관 만든다고 다니는 사람인가' 하면서 몇 시까지 3동 주민센터로 나오래요. 그러더니 근처에 있는 은행에서 100만 원을 현금으로 찾아서 주더라고요. 칠순잔치에 아들이 한복 해 입으라고 준 돈인데 아이들 책 사라고. 하루는 제가 약을 샀는데 흰 봉투가 있어서 보니까, 약사가 환자들한테 만 원, 5000원씩 돈을 모았더라고요."

11년째 상도동에 살고 있다는 김소영 관장은 "지금까지는 밤이면 잠만 자러 왔던 동네였는데, 두 달간 마을을 쭉 돌면서 '이 사람들은 내가 한 말 속에서 무엇을 느끼고 무슨 희망을 걸었기에 지갑을 열었을까'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관장은 그 때 이 일을 반드시 할 수밖에 없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이 생겼다고 한다.

그렇게 모금과 일일호프, 단체 지원 등을 통해 도서관 '건립' 자금 2000만 원 정도가 모였다. 10만 원에서 100만 원까지 기금을 낸 발기인은 50여 명. 모두 주민들이다. 책은 출판사와 작가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기증받았다.

도서관 운영에도 주민들이 직접 나섰다. 2011년 1월부터 자원활동가 8명이 돌아가면서 '도서관 지킴이'로 활동했다. 도서관 운영 전반에 대해서는 역시 주민들로 구성된 운영위원 10명이 회의를 통해 결정한다.

뮤지컬, 숲 체험, 국악...'재능기부'로 크는 아이들

 13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골 마을학교에서 아이들이 서로 키를 재고 있다. 벽면에 그려진 그림은 마을 어머니들이 손수 디자인하고 페인트로 색칠해 꾸며놓았다.
13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골 마을학교에서 아이들이 서로 키를 재고 있다. 벽면에 그려진 그림은 마을 어머니들이 손수 디자인하고 페인트로 색칠해 꾸며놓았다. ⓒ 유성호

현재 마을학교 교사로 활동하는 15명의 엄마들은 대부분 성대골 어린이 도서관에서 운영위원이나 자원봉사를 했던 이들이다. 마을학교는 매일 다른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는데, 모두 '재능기부'다. 월요일에는 마을학교 근처에 살고 있는 극단 연출가가 뮤지컬 교실을 열고, 화요일에는 사회적 기업인 '결혼이주여성평등찾기'와 연계해 이주여성들로부터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음식도 만들어 먹는다.

수요일에는 마을 뒤편에 있는 국사봉 숲에 올라가 숲 체험을 한다. 동작구청 동작숲 아카데미 숲 해설가 대표가 이곳 상도 3동 주민자치위원이라 도움을 받는단다. 목요일에는 발도로프 미술을 배운 엄마가 수업을 하고, 금요일에는 국악 수업이 열린다. 김 관장은 "도서관 열 때 100만 원을 쾌척한 할머니가 알고 보니 성대 예술단 단장님이었다"면서 "가야금, 장구 등 국악 난타반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 관장의 쌍둥이 딸인 민정·민선(10)이도 마을학교에 다닌다.

마을학교 장소를 얻을 때도 이웃 주민의 도움이 컸다.

"원래 여기가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 10만 원이었어요. 엄마들 한 사람 당 300만 원 정도 출자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첫 출자가 부담스러우면 쉽지 않겠다 싶어서 주인하고 협상을 했어요. 결국 보증금 100에 월세 30만 원까지 낮췄어요. 마을에서 처음에는 도서관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뒤에 조직이 있니 뭐니 했지만 결국 마을 엄마 몇 명이 죽기 살기로 (도서관을) 끌어가면서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저도 그런 자신감이 있으니까 협상을 한 거고요."

김 관장은 마을학교 수업이 없는 오전이나 주말에는 학교 공간을 마을의 다른 공동체 모임을 위해 공유할 계획이다.

엄마들이 마을학교를 만든 이유는 뭘까. 고등학교 1학년, 초등학교 1학년 두 딸을 둔 최경희씨(47)는 기존 교육 시스템 속에서 힘들어 하는 첫째 딸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아이를 행복하게 키울 수 있을지 고민이 컸다고 한다. 마을학교에서 또래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딸 지은(8)이를 보면서 최씨는 말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엄마들도 모여서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요. 학교 가면 엄마들 반모임이 있는데 다들 학원 어디가 좋은지, 선생님은 뭘 좋아하더라, 누구는 어떻게 하더라, 어떻게 하면 내 아이 교육 잘 시킬까 이야기밖에 안 해요. 그런데 여기는 시나 구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다보니까 주민들이 스스로 의견을 낼 수 있고, '어떻게 하면 성적을 올릴까'가 아니라 '아이를 어떻게 잘 키울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어서 좋아요. 엄마들이 직접 아이들을 돌볼 수 있고."

물론, 전문교사가 아닌 전업주부들이다 보니 버거운 점도 많다. 아이들끼리의 싸움이 엄마들 사이의 감정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강수연(42)씨는 "처음에는 막무가내로 시작했는데 난해한 게 많다"면서 "시행착오를 겪어가는 단계"라고 말했다. 그럴 수록 엄마들은 대화를 많이 한다. 런던올림픽 한일 축구경기가 열리던 지난주에는 마을도서관에 다 같이 모여서 밤새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매주 월요일 오후 5시 30분에는 정기적으로 회의가 있다. 

'절전소','적정기술로 겨울나기'...성대골의 실험은 계속된다

 13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골 어린이 도서관에서 어린이들이 페달을 돌려 전기를 만드는 자전거 발전기를 타고 놀고 있다.
13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골 어린이 도서관에서 어린이들이 페달을 돌려 전기를 만드는 자전거 발전기를 타고 놀고 있다. ⓒ 유성호

 13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골 어린이 도서관에서 손지혜가 전년도 대비 월별 전기사용량을 그래프로 표시한 에너지 절약 실천 현황판을 보여주고 있다.
13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골 어린이 도서관에서 손지혜가 전년도 대비 월별 전기사용량을 그래프로 표시한 에너지 절약 실천 현황판을 보여주고 있다. ⓒ 유성호

마을도서관, 마을학교에 이어 '성대골 엄마들'은 '에너지 자립마을'로 가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지난해 후쿠시마 원전사태를 보고 충격을 받은 엄마들은 환경단체에 의뢰해 원전 관련 특강을 듣는가 하면, 여성민우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특강, 워크숍, 견학을 진행했다.

'배움'은 '실천'으로 이어졌다. '성대골 절전소'가 바로 그것이다. 마을도서관 벽면 한편에는 50여 가구의 월별 전기 사용량이 그래프로 붙어있다. 빨간색은 지난해, 초록색은 올해 사용량이다. 절전 운동에 참여하는 가구에는 멀티탭을 나눠준다. 대기전력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김소영 관장은 '금환이네' 그래프를 가리키며 "1월부터 5월까지 다섯 달 동안 전기사용량이 250kwh 정도가 줄었다"면서 "4인 가족이 이렇게 떨어뜨렸다는 건 각오를 단단히 한 거다"라고 설명했다. 앞으로는 마을에 있는 음식점, 커피숍, 약국 등도 '착한 가게'로 등록하고, 절전 운동에 동참하도록 설득할 예정이다. 이미 7곳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서울시는 지난 5월 성대골 어린이 도서관을 '서울 환경상 대상'에 선정했다. '원전 하나 줄이기'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추진하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은 틈날 때마다 성대골 마을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김 관장은 "동작구 원전 하나 줄이기 캠페인도 우리가 먼저 시작했고, 서울시에서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 마을 주민들 재능기부를 통한 공동 돌봄 공동체도 성대골 마을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면서 "박원순 시장이 우리 도서관에 도청장치를 놓고 간 것 아닌가 모르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성대골의 '실험'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성대골 엄마들은 마을학교의 겨울을 '적정기술'로 나보기로 했다. 적정기술은 저개발국이나 농촌 등 현지의 지역적 조건에 맞는 기술로, 태양열 온수기, 온풍기, 빗물 탱크 등이 그 예다.

김소영 관장은 "산청에 있는 적정기술 전문가들이 서울에 와서 워크숍을 할 예정"이라면서 "엄마들도 기술을 배워서 우리가 어떻게 적정기술로 겨울을 나는지 SNS로 공유할 것"이라고 말했다.  24일에는 제1회 성대골 마을 에너지 축제도 열린다. 가을에는 마을 텃밭을 가꾸고, 텃밭에서 난 배추로 김장도 할 예정이다. 물론, 아이들도 함께한다.

'한 명의 아이를 온전히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2년 전, 성대골 어린이 도서관 발기인·회원을 모집 할 때 김소영 관장이 돌렸던 리플릿에 적힌 '인디언 속담'이다. '성대골 아이들'이 어떻게 커나갈지 궁금하다.

 3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골 마을학교에 인근 유치원으로부터 기증된 책들이 도착하자, 뛰어 놀던 어린이들이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놀이를 중단하고 책을 정리한 뒤 선물 받은 책을 읽고 있다.
3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골 마을학교에 인근 유치원으로부터 기증된 책들이 도착하자, 뛰어 놀던 어린이들이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놀이를 중단하고 책을 정리한 뒤 선물 받은 책을 읽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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