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마다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요즘, 교육 현장은 반대로 이명박 정권이 만든 교육과정에 따라 내년부터 쓸 'MB 교과서'를 만드느라 바쁘다.(관련기사 : <
MB는 왜 자꾸 교육과정을 바꾸는 걸까?>)
2009년에 초등 1·2학년, 중·고등학교 1학년(수학과 영어 교과)부터 새로운 교과서(2007개정 교과서)로 바뀌기 시작했는데 3년 만에 또 초중고 교과서가 바뀌는 것이다. 그런데 새 교과서들이 비공개로 만들어지는 까닭에 정작 교육 현장에서는 전혀 볼 수가 없어 현장 교사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내년부터 쓰일 교과서들은 현재 실험본(일부 학교에서 실험후 다음해 전국 사용) 형태로 전국의 실험학교에서 사용하여 수정 중이다. 이 과정에 실험 학교나 연구 단체, 연구자들이나 관심 있는 교사들이 미리 교과서를 보고 수정 내용이나 교과서 구성 방식에 문제제기를 많이 할수록 좋은 교과서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교과부는 실험본 교과서를 전혀 공개하지 않고, 심지어는 실험본 교과서를 만드는 단체나 검토하는 학교조차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초등 교과서 질의 응답 결과 |
질의 : 내년도부터 적용되는 새교과서에 대한 질문입니다. 작년 8월 9일에 고시되어 교과서 개발단체는 9월 재공모까지 거쳐 선정된 것으로 압니다. 현재 1, 2학년 실험본 교과서가 개발되어 검토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1. 현재 교과별로 실험본교과서를 개발한 단체는 어디인가요? 2. 현재 검토하는 학교는 어디인가요? 3. 연구를 위해 실험본 교과서나 PDF파일을 보고 싶은데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요? (신은희)
교과부 답변 : 안녕하십니까? 초등학교 실험본 교과서를 미리 받아서 검토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견 잘 받았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우리부에서는 2009 개정 교육과정에 의한 교과 교육과정을 2013년부터 적용하기 위하여 교과서를 개발중에 있습니다. 문의하신 실험본 교과서에 관한 정보는 정본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제공할 수 없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교육과학기술부 교과서기획팀>
* 교과부에 2번이나 질의하고 정보공개 요청을 했지만 끝내 어떤 정보도 얻지 못했습니다.
|
전에는 새로운 교과서들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교과부가 책임지고 만드는 국정 교과서의 경우 연구자나 관심있는 교사들이 시도마다 있는 실험본 연구학교에서 살펴볼 기회가 많았다. MB정부 들어 실험본교과서를 공개하지 않는 현상은 있었지만(관련기사 : <
실험본 초등 교과서는 국가 기밀?>) 그래도 연구학교는 달마다 검토내용을 학교 누리집에 올려 관심있는 교사들이 자료를 찾아볼 수 있고, 미리 요청해서 방문하면 교과서를 보고 궁금한 점을 미리 살펴보고 워크샵을 요청할 수도 있었다.
교과부 사이트에는 교과서 실험학교 운영 자료가 있어 연구자들은 새로운 교과서의 특징이나 흐름을 파악할 수가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도 막상 교과서가 나오면 내용이 어렵고 양이 많아 현장에서는 '(사교육을 많이 받는) 강남 아이들만 가르치라는 것이냐'는 비판이 나왔다.
2011년에 고시된 교육과정은 원래 2-3년간 만들 것을 5개월 만에 만들어 그 자체가 문제라는 비판이 많다. 거기다 교과서 체제가 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예를 들어 내년 1·2학년 교과서를 보면 전에는 1학기에는 1-1, 2-1를 먼저 만들어 검토하고 적용하면서 2학기 것을 만들었다. 이것도 현장교사들이 집필진으로 있어 시간이 부족하고 문제가 많았다.
여기에 이번에는 1, 2학기 전체를 한꺼번에 만드느라 집필진이나 연구진들에게 큰 부담을 주었다. 이는 교육과정을 학년군(1-2학년, 3-4학년 같은 방식)으로 만들었다며 교과부가 교과서도 두 학년치를 한꺼번에 만들어내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러다보니 교과서 체제도 달라져 1학기, 2학기가 아니고 국어는 1-가, 1-나, 수학은 1-①, 1-② 같은 식으로 달라져 교사도 이름 부를 때 혼란스럽게 생겼다.
2013년 초등 1-2학년군 국정 교과서 안내 |
❏ 통합교과(바른 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 o주제별, 월별 교과서 발행 - 학기당 4권(1학기-4권, 2학기-4권)/ 지도서는 학기당 1권 체제로 o바른 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 교과서가 하나의 주제형 교과서 속에 합쳐짐 * 가령 1학년 <학교1> 교과서는 '학교'라는 주제 속에 바생, 슬생, 즐생의 학교 주제 관련 내용이 수록됨
❏ 국어교과 o기존의 <듣기·말하기·쓰기> <읽기> 교과서가 <국어>로 합쳐지고, 보조교과서인 <국어활동> 추가 o <국어> <국어활동>은 학기당 2권(1학기-2권, 2학기-2권) * 국어1-가, 1-나 / 국어1-다, 1-라 * 국어활동 1-가, 1-나 / 국어활동1-다, 1-라 ❏ 수학교과 (기존과 같음) 수학 1-①,수학익힉책1-①,수학1-②,수학익힘책1-②
* 교과부에서 교과서 주문할 때 제대로 하라고 유일하게 안내한 자료입니다.
|
중고등학교는 전에는 한 학년씩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3년치를 한꺼번에 만들었다. 이 때문에 집필진 중에서 '졸속 교과서를 못 만들겠다'며 '그만둬야 하지 않냐'는 자조까지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이것도 비밀, 저것도 비밀, 누구를 위한 비밀일까?이런 와중에도 교과부의 실험본 교과서 숨기기는 철저하게 진행되고 있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교과부 관료들이 국방부보다 나라를 잘 지키겠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이다.
이런 추세라면 현장 교사들은 아마 내년에 1, 2학년을 맡는 교사들은 2월 말이나 3월 초가 되어야 새 교과서를 보고 허겁지겁 수업에 들어가야 하고, 수업 준비를 제대로 하기가 어렵다. 학기 초 바쁜 업무 때문에 교과서를 재구성하기는커녕 아이들 얼굴 보기도 어려운 현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교육과정이나 교과서를 꾸준히 연구한 사람들도 새로운 교과서 체제나 내용에 익숙해지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대부분의 교사들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이런 경험 때문에 교사들은 여러 경로로 교과서를 구해서 미리 준비를 하려고 알아보지만, 교과부의 대답은 한결같다. 교과서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전혀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장 교사들은 새 교육과정이나 교과서에 대한 적응은 포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교과부의 이런 지나친 비밀주의가 장관의 지시 때문인지, 현재 자리를 차지한 관료들의 보신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결국 학생들의 수업의 질을 낮추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교사들을 힘빠지게 하는 이유는 또 있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간 교사들은 개학하기 전에 새 교과서 내용을 학교가 아니라 서점에서 보고 절망한 이들이 많다. 바로 새 학기 전과나 문제집에 교과서 내용이나 사진 자료까지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교과서를 구하려다 포기한 이들은 서점에서 새 교과서 내용을 보고 역시 예상이 맞았다고 좋아해야 할 것인가? 결국 교과부의 비밀주의로 교사들이나 국민들의 교육정책 불신감만 점점 커져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