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선진국 경제공동체라는 OECD국가 중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해외입양이 후진국형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원인이 무엇일까? 그것은 혼혈아를 배타시 하는 우리의 후진적 문화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이유로는 지난 60여 년 동안 효율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사설 해외입양 촉진시설이 아동을 버리도록 조장한다고 보면 무리일까?

우리나라는 지난 몇십 년간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어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 사회적 약자에게 도움이 되는 복지와 사회안전망은 제대로 발전할 수 없었다.

우리는 과거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자유시장'을 강조하는 레드콤플렉스를 바탕으로 권위주의 정권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권위주의 정권은 경제성장보다 나눔과 분배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좌익, 즉 빨갱이로 모는 탄압정책을 취해왔다. 그 결과 우리는 '한강의 기적'이나 '놀라운 경제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우리 경제규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사회복지는 극도로 열악하고 불안정한 기형적 국가가 되었다.

미국 학자 크리스티 브라이언은 그녀의 저서 <한국입양인, 백인부모, 친척의 정치>에서 "한국에서 미국이나 다른 나라로 해외입양을 보내면 입양인 장래가 폭력으로부터, 입양인 모국보다, 더욱 자유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런 보장은 하나도 없다, 입양인은 매일매일 입양 보내진 나라에서 인종차별, 외로움, 성폭력, 구조적 불평등으로 갖은 어려움을 겪는다"고 지적한다.

국민이 낳은 아이를 돌보는 나라가 '선진국'

 최명호씨
최명호씨 ⓒ 최명호

그렇다. 우리가 해외에 보낸 입양인들 다수는 지금도 입양 보내진 국가에서 끊임없이 인종차별, 외로움, 성폭력, 구조적 불평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는 해외입양 세계4위 송출국의 부끄러운 위치를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저 세계의 기형적 후진국가일 뿐이다. 올림픽 5등이 결코 선진국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사회의 열등감을 어설프게 감추려고 시도하는 어울리지 않는 몸부림일 뿐이다.

자기가 낳은 아이를 돌보는 나라가 선진국이고 돌보지 않는 우리나라는 그저 미개한 후진국에 불과하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28일 '뿌리의집'에서 덴마크 입양인 최명호씨를 만났다.

최명호씨는 1984년 3월 30일 오전 10시 19분 경기도 광명시 광명3동 158-187호 윤의원에서 태어났다. 그의 친모 이름은 최혜은씨며 1962년 생으로 울산에서 살던 분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까지는 2007년 최명호씨가 한국홀트를 방문해서 얻은 그의 친부모에 대해 아는 정보의 전부다. 당시 최씨는 홀트를 방문해서 친부모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요청했지만 홀트에서 "그 이상은 전혀 모른다"는 답변을 들었다.

태어난 지 5시간 만인 1984년 3월 30일 오후 3시 반 최명호씨는 홀트로 보내졌다. 그리고 그로부터 5개월 후인 1984년 8월 17일 그는 덴마크로 해외입양 보내졌다. 덴마크의 입양부는 1945년생으로 시계수리공이었고 입양모는 1955년생이며 유치원교사였다. 입양부는 전처와의 사이에 1남1녀가 있었는데 이혼한 전처가 그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고 입양모는 따로 자녀가 없어서 최씨를 한국에서 해외입양한 것이다.

알콜중독자 아버지와 약물중독자 어머니 사이에서

최씨 입양부는 알콜중독자로 항상 술에 절어 살았고, 입양모는 항상 신경안정제를 먹으며 약에 절어 살았다. 입양부는 다혈질 성격에 거의 매일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왔고 입양모는 아주 내성적인 성격으로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늘 걱정근심이 많았다. 두 사람 사이는 원만하지 않았고 최씨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은 하루도 입양부모가 부부싸움을 안 하고 지내는 날이 없을 정도였다.

심한 날은 입양모의 비명이 최명호씨의 고막을 찢을 듯했다. 그럴 때 그는 베개로 귀를 꽉 틀어막고 방에 문을 잠그고 쭈그리고 앉아서 이런 생각을 했다. "저렇게 죽도록 서로 싫어하시는데 부모님은 왜 결혼하셨고, 왜 나를 입양하셨을까?" 때로는 술에 취한 입양부가 입양모에게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고 그럴 때 입양모의 날카로운 비명소리는 더욱 커졌다. 한번은 어린 최명호씨가 폭력을 말리다가 입양부에게 목이 졸려 거의 정신을 잃은 적도 있었다.

한마디로 어린 시절 최명호씨는 극도의 외로움 가운데 살았다. 학교에 들어가서도 학교생활이 하나도 즐겁지 않았지만, 집에서 항상 다투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것도 전혀 즐겁지 않았다.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나는 부모님의 시끄러운 고함과 비명에 두 손으로 귀를 꼭 막고 명호씨는 점점 더 침묵과 조용함 속으로 탈출하는 소년이 되어갔다. 그는 점점 말이 없는 더 내성적인 성격이 되어갔고 침묵과 조용함이 최명호씨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였다.

학교생활도 자신을 놀리고 괴롭히는 백인아이들과 끝없는 싸움의 연속이었다. 명호씨는 조용한 성격의 아이였지만 자기를 왕따 시키는 급우들에게 대항해 때로는 말로, 때로는 주먹과 발로 싸웠다. 그래서 그런지 반에서 유일하게 유색인종 아이였던 최명호씨와 점심시간에 같이 앉아 식사를 하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그는 항상 혼자였고 외로움과 고독감 외에는 그의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한번은 무슨 일로 급우와 심하게 싸웠던 것 같다. 거인 같이 큰 남자선생님이 명호씨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 왔다. 그 남자선생님은 명호씨의 몸을 가볍게 번쩍 들어 올려서 커다란 쓰레기통에 쑤셔 넣었다. 그 깊고 악취가 나는 쓰레기통을 어떻게 기어나왔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나지만 그 독한 냄새는 지금도 생생하게 명호씨 코끝에 머물러 있다.

"월드컵 유치엔 돈 쓰면서 국민이 낳은 아이엔 인색"
"나는 왜 다르게 생겼을까?"

'미운오리새끼'처럼 명호씨는 어려서부터 "나는 왜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생겼을까?" 그리고 "다르게 생긴 나를 아이들은 왜 자꾸 괴롭힐까? 다르게 생긴 것이 죄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했다.

집에서는 입양부모의 싸움이 싫었고 학교에서는 급우들의 괴롭힘이 싫었다. 그러나 갈 곳이 없었던 최명호씨는 그런 어려움을 피해서는 해결할 길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를 괴롭히는 학생들을 회피하지 않고 대항해서 싸웠다. 그러니 학교에서 명호씨는 항상 '싸움꾼'으로 선생님들에게 찍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최명호씨는 대학 보석디자인과에 진학하면서 양부모로부터 독립했다. 그리고 혼자 살면서 대학에 다니던 어느 날 처음으로 덴마크 여학생과 데이트를 했다. 그 여학생을 몇 번 만난 어느 날 이었다. 다른 여학생들이 여자 친구와 자기에 대해 나누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얘, 명호와 데이트 하다 아기가 생기면 어떡하니? 찢어진 눈에, 피부가 어둡고… 그런 애가 나오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니?" 그 일이 있고나서 얼마 후 명호씨는 그 여자 친구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헤어지게 되었다.

 최명호씨, 덴마크 이름은 크리스찬 최
최명호씨, 덴마크 이름은 크리스찬 최 ⓒ 최명호
대학을 졸업하고 명호씨는 2007년 친모를 찾기 위해 두 달간 한국을 방문했다. 그러나 홀트를 방문해도 친모이름과 자기 출생장소만 알 수 있었고 다른 아무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그 후 2009년 다시 방한하여 2년간 머무르며, 친부모님 만날 때를 대비해 이화여대와 서강대에서 한국말을 8개월간 배우면서 친부모를 수소문 했지만 이 때도 역시 아무 소용이 없었다.

금년 6월 최명호씨는 3년 만에 3번째로 다시 친모를 찾기 위해 방한했다. 최명호씨는 이번에는 얼마나 한국에 머무를지 아직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1962년 생으로 울산에 산 적이 있고 1984년 3월 30일 오전 10시 19분 경기도 광명시 광명3동 158-187호 윤의원에서 자기를 이 세상에 낳아준 친모 최혜은씨를 애타게 찾고 있다.

최명호씨는 한국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해 달라고 기자에게 부탁했다.

"한국인은 G20국가로 올림픽과 월드컵을 유치하는 데는 막대한 돈을 갖다 부으면서, 자기 국민이 낳은 아이를 돌보는 일에는 지극히 인색합니다. 이것은 아주 부끄럽고 당황스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이런 비인도적인 모순이 너무도 오랫동안 한국에서 관행적으로 지속되어 왔습니다. 아이 입양은 결코 해결책이 아닙니다! 우리 입양인들의 비극은 입양 보내진 나라에서 차별받고 또 모국에 돌아와서조차 같은 인종 한국인들로부터 백인이 아니라고 또 차별 받는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들으니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최명호씨를 알아보시는 분은 '뿌리의 집'(02-3210-2452)로 연락 바란다.


#최명호#김성수#입양#최혜은 #울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