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성회는 제6회 서울여성문화축제를 통해 가족의 문제, 가족관계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거나 어려움을 통해 새로운 가족관계를 만들어나가려 노력 중인 여성들의 목소리를 전파하고자 한다. 그 중 '女심전심' 수기공모는 여성들이 직접 자신이 맺고 있는 다양한 가족관계와 그에 의해 파생된 자기 경험과 대안을 이야기하자는 기획의도를 갖는다. 이러한 시도들이 '여성과 가족'에 대해 다양한 사고를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수기응모 글 중 선정된 5편을 공개하고자 한다. - 기자 말
"아빠는 되게 훌륭한 사람이잖아.""그럼, 엄마는?""음... 엄마는 쪼금 덜 훌륭한 사람?"큰아이가 다섯 살 때 바쁜 아빠를 기다리며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한 말이었다. 아이의 그 한마디가 그 시절 나에게는 아프고 아픈 이야기였다. 결혼하고 임신과 유산, 다시 임신으로 이어지는 나의 삶은 그로부터 장장 5년이나 정체 혹은 퇴보였다.
아이를 낳고 나서 얼마 동안은 다른 생각을 할 여지도 없었지만 조금씩 지나면서 모든 사회적 관계에서 멀어진 나를 발견하는 일은 무서운 것이었다. 잠든 두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사그러지는 촛불처럼 무력해진 생을 체감하는 그 수많은 밤들, 참으로 외로웠으며 스스로가 가여웠다. 남편은 남의 편이었으나 아이들이라도 내 삶을 인정해주었으면 했나 보다. 큰아이의 "엄마는 덜 훌륭한 사람"이란 말은 지금 생각해보니 세상 밖으로 나가라는 커다란 가르침이었다.
"엄마, 엄마는 왜 집에 없어? 왜 다른 엄마들처럼 학교에 안 와?""다른 엄마들이 학교에 와서 친구들에게 햄버거 사주고 청소해주고 그런 게 좋아보여? 그러면 엄마도 그렇게 할까? 네가 정말 원하면 갈 수도 있지. 그런데… 그럼 엄마가 더 바쁘거나 안 계신 친구들 마음은 어떨까?""그래도 나도 학교 갔다오면 엄마가 집에 있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엄마가 비오면 우산도 갖다주고 토요일에는 학교 앞에서 기다렸으면 좋겠어. 다른 엄마들처럼!""엄마는 그런 엄마들이랑 생각이 달라. 나쁘다고 할 순 없지만 그렇게 하면 다른 친구들 마음이 어떨까도 싶고, 그렇게 하다보면 엄마도 너한테 욕심도 부리고 그럴 것 같아. 그게 좋은 걸까?""… 몰라… 알았어."세상 밖으로 나온 엄마는 미친 듯이 살았다. 두 아이를 '내버리고도'(그 시절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썼던 표현) 일을 했고, 밥을 제대로 못 챙겨 먹이고도 사람들을 만났으며, 주말에도 숱한 약속들과 행사들 때문에 아이들은 날 많이 기다리며 살아왔다. 학교에 오지 않는 엄마, 소풍이나 운동회를 같이 하지 못하는 엄마, 급식비를 때맞춰 못 넣어주는 엄마, 저에게 필요한 일은 스스로 하라고 가르치는 엄마… 그런 엄마로, 그런 엄마의 아들로 우리 두 아이는 자랐다. 마음에 상처도 받았으며 그 상처로 인해 나도 아이들도 고통의 시간을 지나왔다. 때로는 싸웠고 때로는 서로를 끌어안고 울었고 가끔은 서로 따로 울었으며 그렇게 그렇게 시간들은 지났다. 나로 말하자면 어느 날은 죄책감에, 또 어느 날은 정의감에, 감정이입에, 대리만족에, 자기합리화에 널뛰며 살아왔다.
어느날 훌쩍 자라버린 아이들... 세상 밖으로 나오길 잘했다"엄마, 이거 먹어!""응? 이거 초콜릿이잖아? 왜?""엄마 초콜릿 좋아하잖아, 아프니깐 이거 먹고 힘내."어느 날 아파서 출근도 못하고 침대에 시체처럼 쓰러져 있는 나에게 아이가 초콜릿을 내밀었다. 아프고 힘든 상태가 되어서야 집에 누워있는 엄마를 위해 아이는 초콜릿을 사왔다. 그날은 아마 사람들과도 힘들어 아무도 만나기 싫어졌던 날이었을 것이다. 기어이 아이는 날 울렸다.
"선거라구? 엄마는 왜 맨날 지는 선거운동만 해? 이기는 선거운동 하면 좋잖아.""이기면 좋지! 근데 산이삼춘 넌 어떻게 생각해? 정말 당선되면 정직하게 열심히 일 잘할 수 있을 거 같아?"그러긴 하지. 삼촌은 뭐… 그래도 이기기는 힘들잖아?""그래도 내가 믿는 사람을 사람들한테 지지해 달라고 해야지, 잘 알지도 못하고 믿을 수도 없는 사람을 이긴다고 무조건 찍어달라고 할 순 없잖아?""그런가? 그래도 지면 속상하잖아.""그래도 엄마나 삼촌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으면 그게 진짜 이기는 거일지도 몰라.""그런가? 하여간 엄마는 선거할 때마다 하고 나면 되게 아프잖아. 좀 살살해.""응… 근데 아직도 엄마가 일 안하고 집에 있었으면 좋겠어?""음… 아니. 그냥 좀 덜 바빴으면 좋겠어. 엄마가 아프잖아."동네에서 믿을 수 있는 정치인 한 번 만들어보겠다고 매번 선거 때마다 열성을 다하는 나에게 아이가 한 말이었다. 아… 아이들은 자라고 있었다. 자신들을 위해 뭘 해달라고 날 기다리는 게 아니었다. 자신들을 위해 '엄마 노릇'을 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인 내 건강을 위해 좀 덜 바빴으면 하는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난 그 아이들에게 '엄마'로서만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도 존중받고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엄마의 생각을 들으려 하고 자신의 생각도 말할 수 있는 관계는 '가족'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너무도 당연히 '엄마', '자식'이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것에서 멀어지려고 노력했고 서로에게,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싸우면서 만들어온 관계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엄마 이번주에 서울여성문화축제 준비하느라 바빠. 시간 같이 못 보내서 어쩌니?""나도 시험 얼마 안 남아서 바빠. 괜찮아.""그래도 축제하는 날, 행사하는 거 보러 올거지?""아니야, 나도 바쁘고 엄마도 바쁜데 뭘.""그래, 엄마도 열심히 행사 준비할게. 너도 열심히 해!"며칠 전 통화하면서 나눈 이야기이다. 굳이 '엄마'가 하는 행사인데 꼭 보러오라고 하진 않았다. 그저 그 아이들도 나도 매일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음을 서로 알고 있고, 서로를 자랑스러워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음만으로 난 가슴에 기쁨이 차올랐다.
생각해본다. 만약 내가 그 때 세상밖으로 나오지 못했다면, 그 때 그 때마다 아이가 힘들어하고 나도 힘들다고 다시 주저앉았다면 아이들은 더 행복하게 자랄 수 있었을까? 세상이 이야기하는 '엄마' 노릇에 충실했다면 아이들과 난 지금보다 더 행복했을까? 역사에는 가정은 필요없으니 뭐라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내 아이들과 나는 서로에 대해 아쉬움은 있을지언정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고 있으며, 만나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그래서 서로가 자랑스럽다. 적어도 난 그렇다. 아이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기에 내가 하는 이 일을 더 열심히, 제대로, 옳게! 하고 싶은 거다.
아이들이 기억하고 추억하는 역사는 또 다를 것이다. 실제로 내가 다 알지 못하는 상처도 있을 것이고 아쉬움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난하고 개인적 시간조차 없고 때마다 호기롭게 여행도 못 가 추억도 얼마 못 남겨준 부모와 함께 살면서 꿋꿋하고 밝게 자라난 두 아이들이 난 자랑스럽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내 아이들인 것이 자랑스럽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서울 영등포구 나무님이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