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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파괴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이 발전소의 1-4호기 모두가 폭발했다.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파괴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이 발전소의 1-4호기 모두가 폭발했다. ⓒ 연합뉴스

"방사선의 공포를 피해 전국 각지로 피난 간 후쿠시마 현민이 6만 명을 넘습니다. 장애인 중에도 후쿠시마현을 떠나 피난을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들과는 달리 장애인이 살기에 적합한 주거 환경과 교통편, 활동보조인의 확보 등 여건이 충분히 마련돼 있지 않으면 피난도 어렵습니다. 재해가 일어났을 때 피하지 못하고 현장에 남아 있어야 했던 사람은 혼자 힘으로는 이동할 수 없는 고령자와 장애인이었습니다. 이런 현실을 깊이 생각해 재해 대책을 재점검해야 합니다."

지난 22일, '핵 없는 세상' 주최로 문화예술카페 별꼴에서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인 고리야마시의 피폭 장애인 시라이시 키요하루씨의 강연회가 열렸다. 소박한 규모의 카페 안에 앉을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를 듣고자 모여들었다. 시라이시씨는 이번에 처음으로 한국에 방문했다.

지난해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직후 '피재지 장애인 지원센터 후쿠시마'라는 장애인 자립생활지원단체를 만들어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매그니튜드 9.0의 거대지진이 발생했던 그날 복지센터 3층에 있었다. 극심한 흔들림이 3~5분 가량 이어졌는데 건물이 너무 흔들려서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평상시처럼 전동 휠체어에 타고 있던 그는 빨리 안전한 곳으로 피해야 함에도 지진으로 엘리베이터가 멈춰 활동보조인에게 안겨 계단을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고리야마시는 해안지역과는 멀리 떨어져 있어 해일로 인한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문제는 곧바로 연쇄적으로 발생한 후쿠시마 제1원전 1~4호기의 고장·노심융용 및 폭발(1·2·3호기 노심융용, 1·3·4호기 수소폭발)이었다. 이 사고로 인해 주변으로 엄청난 양의 방사성 물질이 유출됐다. 당시 언론은 '방사성 세슘137 방출량이 제2차 세계대전 말기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약 168배에 달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피난 갈 수 없는 이들을 위한 대책, 시급하다"

 22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영향과 장애인의 현실에 대해 강연한 시라이시 키요하루 대표.
22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영향과 장애인의 현실에 대해 강연한 시라이시 키요하루 대표. ⓒ 전은옥

"3월 15일, 저는 휠체어를 타고 시내를 지나갔습니다. 눈과 비가 섞여 내렸고 그 눈비 속에는 방사성 물질이 대단히 많이 포함돼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그때 피폭을 당했을 겁니다."

시라이시 대표는 지난 1년 반 동안 피해지역 장애인을 위한 폭넓은 지원 활동을 펼쳤다. 그는 재해를 당했을 때 장애인이 겪게 되는 숱한 어려움과 문제점에 대해 설명했다.

"사고 원전에서 30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미나미소마시에서는 사고로 인해 7만 명이던 인구가 1만 명까지 급감했습니다. 피난을 가지 못하고 남은 1만 명은 고령자와 장애인, 그리고 그들을 돌봐야 하는 가족들이었습니다. 현재는 4만 명이 넘는 주민이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대지진 재해와 같은 엄청난 재난이 발생했을 때 현장에 남는 것은 자력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장애인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그 위에서 재해 대책을 재점검해야 합니다."

그에 따르면, 당시 16만 명 가량의 후쿠시마 현민이 현내·외로 피난 갔지만 피난소를 전전하며 쇠약해진 환자와 고령자·장애인들이 많이 죽었다고 한다. 그의 한국 방문에 동행한 야마기와 노리히데씨는 "난구역에 살던 독거 장애인 중 혼자 힘으로 피난을 갈 수 없어 남겨져 있다가 굶어 죽은 사람도 있었다"며 "이런 사례는 꽤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언론에서는 이런 사실이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고 한다.

시라이시 대표는 "많은 장애인들이 일자리도 잃었다"고 증언했다. 지진 해일과 원전 사고의 영향으로 기업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고 빠져나가면서 후쿠시마 현내 각지의 장애인 관계 사업소에서도 일거리가 끊겨 버린 것. 기업이 철수하면서 장애인 사업소에 들어오던 기업의 하청 작업도 중단된 것이다.

"연안지역 미나미소마시에서는 기업의 하청이 끊기자 장애인관계사업소에서 대책 회의를 한 끝에 3개 사업소가 연대해 작업을 분담, 배지를 제작해 전국 네트워크를 통해 판매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배지만으로는 수지가 맞지 않아 티셔츠 제작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생활 보장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가야"

뿐만 아니다. 후쿠시마 현내 장애인관계 사업소 중에는 농장을 가지고 무농약 채소를 재배하던 곳도 있었다. 시라이시 대표는 "원전 사고 후 농토의 방사선량을 측정한 결과 1만 베크렐 이상의 수치가 나왔다"며 "이제 더 이상 야채를 재배할 수도, 수확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잡초가 제멋대로 무성해진 농지를 바라봐야만 하는 사업소의 이용자와 직원은 망연자실한 상태입니다. 유기농법으로 지역에 대단히 맛있는 채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왔는데, 이런 일을 당했으니까요.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자 사무실에서 일거리 없이 시간을 보내는 장애인들도 있습니다."
 
그는 평소 자신이 휠체어를 타고 달리는 도로의 방사선 수치를 직접 측정해 보기도 했다고 한다.

"측정 결과는 시간당 0.4마이크로시버트였는데, 이는 병원의 엑스선 촬영실 내부의 수치에 해당(방사선관리구역에 들어감)하는 것으로, 통상적인 수치의 10배 이상에 달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주민들은 날마다 일상생활을 해나가야 하는 것이죠."

그는 "현재 후쿠시마현 바깥으로 피난해 있는 현민이 6만 명을 넘는데, 주로 젊은 사람이나 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며 "장애인들도 건강한 사람들처럼 현 외로 피난을 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장애인의 경우는 주거환경·교통편을 비롯해 활동보조인의 확보 등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지역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지원센터는 후쿠시마현 밖으로 이주하고 싶어하는 분들을 위해 장애인도 이용하기 쉬운 주거를 관동지방 가나가와현에 확보했는데, 그곳을 거점으로 삼아 현재 장애인 2명이 이주했다"며 "그 밖에도 장애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국 각지의 자립생활센터의 지원을 받아 이주한 장애인도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숫자가 많지는 않은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일부 탈원전 운동 구호가 위화감 불러일으키는 이유

 시라이시 키요하루 'JDF 피재지 장애인 지원센터 후쿠시마' 대표.
시라이시 키요하루 'JDF 피재지 장애인 지원센터 후쿠시마' 대표. ⓒ 전은옥

이날 강연에서 청중이 가장 관심을 보인 대목은 '장애인이 바라본 탈원전 운동'과 '탈원전 여론 일부의 차별적이며 위험한 시각에 대한 비판'이었다.

"일각에서 반원전 시위를 할 때 체르노빌에서 태어난 장애아의 사진을 플래카드에 붙여 행진하기도 하죠. 저는 그것을 '반원전 운동=방사능 오염으로 장애아가 태어나선 안 된다는 운동'이라는 발상이라고 해석합니다. 저는 장애인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생학적 사상을 가지고 '장애인은 있어서는 안 될 존재'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방사능 오염 때문에 장애아가 태어나더라도 사회 속에서 모두가 함께 그 아이를 키우며 살아갈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가야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이죠. 장애를 가진 아이도 분명 '나도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날까봐, 장애아가 태어나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는 것을 탈원전 운동의 핵심 동기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느낀다"고 말한 시라이시 대표는 현재 후쿠시마현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소개했다.

"후쿠시마현의 젊은 여성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후쿠시마 현민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싶다. 다른 현의 남자와 결혼을 한다면 후쿠시마 현민이었다는 사실을 감추고 본적을 말소하고 싶다.' 이는 피폭지역의 여성이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 장애아가 태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기 때문에 나온 말이겠지요. 

또 최근 정보에 따르면 후쿠시마현의 조산사들이 지난해 여름 이후 중절 요법을 실시했음을 인정했다고 합니다. 방사능 오염이 발생했을 때 장애아를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며 장애아를 말살하는 것은 장애인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장애인 출생을 막기 위한 반원전 운동이 아니라, '인류의 생명에 관계되는 문제' '모두의 미래가 걸린 문제'라는 관점에서 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폭으로 인한 건강 피해는 앞으로 명백하게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고 장애 문제 역시 피해 갈 수는 없겠지만, 이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피폭 지역의 장애인과 주민에 대한 차별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시라이시 대표는 "방사선의 영향은 어린이들에게서 가장 심하게 나타나며, 그다음으로는 면역력이 약한 고령자나 장애인·환자일 것"이라며 "후쿠시마 대부분에 방사성 물질이 확산돼 있다"고 말했다.

"피난 가야 마땅한 지역에 많은 주민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방사선의 영향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수년 후부터라고 하니 앞으로가 문제입니다. 정부나 행정 관료들의 주도로 최소한 어린아이들만이라도 안전한 곳으로 피난시켜야 합니다."

그는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마치 원전 사고가 이미 수습된 것처럼 말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현재 제1원전의 4호기가 단층 바로 위에 있으면서 지반침하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진도6 수준의 여진이 덮친다면 인간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이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동일본은 물론이고 일본 전역이 방사성 물질로 뒤덮이고, 세계 각지로 방사능 오염이 확산될 것"이라며 "전 세계의 원전 가동을 중지시키고 핵연료 발전시스템에서 벗어나 깨끗한 에너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후쿠시마현, 젊은 활동보조 인력 줄어 어려움 겪어"

강연이 끝나자 청중들은 끝없는 질문을 쏟아냈다. 먼저 나온 질문은 '재해 전과 후를 비교할 때 장애인 간호복지서비스 실태가 어떻게 달라졌는가'라는 것.

시라이시 대표는 "개인적으로는 아내의 도움을 받고 있고, 지원센터에 나가면 직원들이 많이 도와준다"며 "현 바깥이나 외국에 나갈 때는 활동보조인과 동행한다"고 답했다. 이어 "내가 속해 있는 자립생활지원센터에는 100명 가량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는데, 이분들에게 활동보조인을 파견하고 있다"며 "근래에는 젊은 활동보조 인력이 많이 줄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또 '한국에서는 도시지역과 농어촌지역에 사는 장애인이 처한 상황의 격차도 심한데 일본의 경우는 어떠한가'라는 질문도 있었다. 이에 대해 시라이시 대표는 "대도시에는 장애인이 자립생활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어느 정도 잘 갖춰져 있지만, 동북지방의 경우는 낙후돼 있다"며 "장애인이 장애인을 지원하는 단체의 경우에는 시스템이 비교적 잘 돼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후쿠시마에는 이런 단체가 적다"고 설명했다. 이어 "장애가 있는 분들이 단체를 결성해 자신들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가장 큰 피해에 노출됐던 장애인과 고령자·환자들의 실태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상황 속에서 그의 강연은 '피해지역 장애인의 현실'과 '차별의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


#후쿠시마 피폭장애인#시라이시 키요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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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주부이자, 엄마입니다.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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