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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거기'중. 선술집에서 벌어지는 네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를 통해 삶을 돌아본다.
 연극 '거기'중. 선술집에서 벌어지는 네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를 통해 삶을 돌아본다.
ⓒ 문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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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9월 7일부터 11월 25일까지 공연되고 있는 연극 <거기>는 평범하지만 제각각인 네 명의 중년남자와 가슴 아픈 사연을 지닌 한 여자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는 잔잔한 감동의 드라마였다.

무대에는 아담하지만 정감 있는 선술집이 보인다. 거기에 두 남자가 있다.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는 노총각 장우(김승욱 분, 9월 27일 공연)와 선술집 사장 병도(김훈만 분)다. 곧이어 집 수리공 진수(오용 분)가 등장한다. 진수는 아픈 어머니 병수발을 하며 산다. 이들은 자신들의 근황을 얘기하다 곧 한 사람, 부동산 중개업자 춘발에 대해 험담 반, 소식 반 이야기한다.

춘발은 별명이 '실바'이다. 실리콘과 바세린의 합성어이다. 이렇게 다소 음탕하고 시끄러운 남자들의 허세와 시시껄렁한 농담으로 시작하는 연극은 매일 저녁, 일터에서 하루 일과를 끝내고 기분 좋게 혹은 기분이 나빠서 마감하는 '술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으로 시작한다. 그것도 젊은 남자가 아닌 인생을 절반 정도 지낸 남자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욱 진솔하다.

드디어 '실바'가 한 묘령의 여인, 김정(오유진 분)을 데리고 등장한다. 예의바르고 얌전해 보이는 이 여인은 시종일관 네 남자들의 떠들썩한 대화 사이를 수동적으로 듣기만 한다. 이 좁고 작은 마을에 새로 이사를 왔는데 부동산 중개업자인 춘발이 특유의 능수능란함으로 오늘 한잔 대접하는 것이다.

이들은 이 작은 마을, 작아서 누구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속속들이 알 수 있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서부터 살거나 어린 시절부터 살아온 마을 토박이들이다. 술집에 앉아서 서로의 짧은 안부 후에 안주거리로 옛날 얘기, 특히 귀신 얘기를 하며 김정에게 잘 보이려고 호들갑들이다.

 연극 '거기'중. 서로 다른 삶이지만 편하게 웃고 떠드는 동안 우리네 삶의 의미가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연극 '거기'중. 서로 다른 삶이지만 편하게 웃고 떠드는 동안 우리네 삶의 의미가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 문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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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왜 하필 귀신 이야기일까? 보통 공포를 조성하는 제일 흔한 수단이 귀신 이야기, 혹은 사회 범죄 이야기 등이지만, 왜 공포스러운 옛날 이야기인 귀신 이야기가 이 연극의 주요 시간을 이끌고 있을까.

그것은 현재와 동떨어졌지만 현재를 있게 해준 기반, 우리의 뿌리이지만 부정하고 싶은 옛날 이야기를 통해 현재에서 잠시 탈피하여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함이겠다. 이 연극의 네 남자들 중 굳이 따지자면 '실바'를 제외하고는 누구 하나 번듯하게 잘나가는 사람은 없다. 물론 모두 자기 사업장을 가진 자영업자들이지만 여자 친구도 없고 이 작은 촌구석 마을에서 쳇바퀴 돌 듯 산다.

그러다가 드디어 김정이 입을 연다. 연극 끝까지 듣기만 할 것 같던 이 여인이 입을 열었다. 그림 작업을 한다던 이 여인은 알고 봤더니 유부녀이고, 아이도 있었는데 아이를 사고로 잃었다. 그런데 이 여인은 네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는 자신이 '미친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자신의 아이가 밤만 되면 잠자기를 무서워하면서 귀신이 보인다고 했던 것. 또 아이가 죽고 나서 어느 날 여전히 살아있는 것처럼 자신에게 전화가 와서 귀신이 보인다며 엄마가 데려가 달라고 울부짖었다는 것. 남편은 자신에게 병원에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지만 자신은 아이가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 이 모두가 이 남자들의 귀신이야기를 듣고 보니 미친 이야기만은 아니었다는 위로를 받은 것이다.

 연극 '거기'중. 김정(오유진 분)이 아이를 잃은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연극 '거기'중. 김정(오유진 분)이 아이를 잃은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문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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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어쩌면 그 잔잔한 치유가 사실 살아가면서 참 받기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서로 처한 환경이 달라서, 사는 방식이 달라서이지만 사실 서로 세세히 알려 들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들이다. 하지만 이 연극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그저 담담하고 작은, 세상의 한 작은 곳, '거기'에서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다 '옳다'는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이상우 연출. 극단 차이무·이다엔터테인먼트 제작, 강신일·김승욱·이대연·김중기·민복기·이성민·정석용·오용·송재룡·진선규·김소진·오유진·김훈만 주연의 연극 <거기>는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9월 7일부터 11월 25일까지 공연된다. 11월부터는 최근 종영한 드라마 <골든타임>의 주역 3인방 이성민·송선미·정석용이 출연할 예정이어서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플레이뉴스에도 함께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작성한 기사에 한하여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연극 거기#극단 차이무 이다 엔터테인먼트#이상우 연출#이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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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전공하고 작곡과 사운드아트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대학강의 및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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