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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속에나 등장할 것 같은 아름다운 정원이 눈앞에 펼쳐진다. 연두빛 가득 연꽃정원을 가로질러 인간이 최초로 만들었다는 미로정원으로 이어진다. 그 위에는 마치 백설공주가 당장이라도 나올 것 같은 버섯 모양의 빨강 지붕이 정원의 운치를 더한다. 이뿐인가. 가는 곳곳마다 앙증맞은 열매와 꽃을 핀 식물들이 발길을 붙잡는다.

좀 더 들어가니 '옹기마을'이라는 명패가 보인다. 이곳은 다양한 형태의 옹기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흡사 대갓집 뒷마당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옛날 그 모습, 그 정취를 제대로 구현해내고 있다. 또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리니 분재정원이라는 곳도 있다. 이곳엔 다양한 기능과 형태의 옹기부터 매혹적인 자태를 뽐내는 분재, 그리고 민속체험장이 있는데 풍부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로 오랜 시간 머물게 한다.

서천식물예술원 연꽃정원 전경
▲ 서천식물예술원 연꽃정원 전경
ⓒ 박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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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충남 서천군 기산면 화산리에 위치한 서천식물예술원. 식물원이라 하기엔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서로 다른 식물이 옹기종기 모여 이색적인 조합을 연출한다. 여기에 전통생활용품까지 합세해 고풍스러움이 더한다.

서천식물예술원 연꽃정원2
▲ 서천식물예술원 연꽃정원2
ⓒ 박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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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의 규모면 기관이나 단체에서 운영할 듯하지만 아니다. 놀랍게도 한 개인의 지극한 정성으로 탄생됐다. 바로 김재완(73세) 원장을 통해서다.

2003년 2월 기산초등학교에서 퇴임한 김 원장은 청소년과 일반인에게 전통문화와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기 위해 평생토록 수집한 각종 식물과 분재, 옹기, 전통생활용품 등을 사비를 들여 전시하고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그래서 이곳 입구에는 "서천식물예술원은 모든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는 공간"이라고 크게 명시돼 있다.

서천식물예술원 연꽃정원3
▲ 서천식물예술원 연꽃정원3
ⓒ 박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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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예술원이 생긴 이 자리는 제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땅입니다. 아버지에게 값 없이 받은 거니 공짜나 다름없죠. 이렇게 귀한 땅을 쉽게 취한 만큼 귀하게 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모두에게 쓰임이 되는 땅, 편히 쉬었다 갈 수 있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식물예술원을 만들게 됐습니다."

서천식물예술원 미로정원
▲ 서천식물예술원 미로정원
ⓒ 박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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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예술원이 만들어지기까지는 그가 평생 동안 모아온 수집품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젊은 시절부터 소중한 문화유산이 새로운 문물에 의해 사라지는 것을 크게 안타까워 한 김 원장은 수집으로 그 갈증을 해소했다. 처음엔 화폐부터 시작했다. 화폐를 우리나라의 문화재라 생각한 그는 20살 때부터 전국 방방곡곡 돌아다니며 단순한 수집이 아닌 문화재를 보존한다는 마음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서천식물예술원 옹기전시장
▲ 서천식물예술원 옹기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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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론 '가장 한국적인 것은 무엇이냐'라는 의문점부터 시작해 옹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40여 년 전, 옹기를 찾는 일이란 쉽지 않았다. 귀하게 보관해둔 청자와 백자는 돈만 있으면 샀지만, 서민들이 사용했던 옹기는 쉽게 사용 되고 쉽게 버려졌기 때문에 자취를 감춘 것이다. 옹기가 가지고 있는 기능, 효능을 연구하며 그 가치에 놀란 그는 전국 방방곡곡을 수소문해 옹기 수집에 열을 올렸다.

제주도에서 북한산에 이르기까지 전국을 돌아다니며 모아놓은 옹기들은 눈, 코, 입을 그려 넣은 소줏고리에서부터 칸딘스키 뺨칠 정도의 기하하적 문양이 돋보이는 커다란 항아리, 양반가에서 쌀독의 역할을 했던 엄청나게 큰 항아리, 낙지잡이 통, 닭 물통, 대형시루 등 우리 민족의 생활상을 한눈에 읽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현재 옹기의 가치가 재조명 받으면서 옹기를 연구하려는 학자들 사이에선 김 원장은 살아 있는 교과서가 되고 있다.

서천식물예술원 분재전시장 내 옹기들
▲ 서천식물예술원 분재전시장 내 옹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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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식물과 분재를 사랑하는 그는 이 또한 오랜 시간 정성과 공을 들여 수집했고, 식물예술원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완성하는 결정체가 됐다.

"사실 초등학교 교사가 돼서 그렇지, 어렸을 때 꿈은 화가였어요. 하지만 그때 그 시절이 그랬듯 먹고살기 바빠 화가는 엄두도 못 냈죠. 그래서 그림공부 못한 게 한이 됐나 봐요. 성인이 돼 미술은 아니지만 또 다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조경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독학으로 배운 기술로 이곳 식물예술원을 만들게 됐죠."

서천식물예술원 민속체험장
▲ 서천식물예술원 민속체험장
ⓒ 박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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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여 평에 넘는 곳을 혼자 관리하다 보니 그의 하루는 분주하다. 보통 새벽 4시에 일어나 나무와 식물 물 주는 데만 한 시간이 훌쩍 넘어간다. 그리고 가지치기에 보수작업, 하다못해 청소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검게 그을린 그의 얼굴에서 그간의 노고와 부지런함을 엿볼 수 있다.

이런 남편을 따라 아내 역시 일손을 거드느라 바쁘다. 동시작가인 최정심씨는 1984년 <새싹문학>에 동화·동시를 발표하며 등단, <그림 그리는 할머니> 등 총 9편의 동시집을 발간했다. 아름다운 자연 속, 동화 같은 곳에서 동시작가가 산다는 것만으로 아름다운 조화가 아닐 수 없다.

김재완 원장 수집하는 데 50여년, 식물예술원 조성하는데 10여년. 한 평생을 후손들이 기억해야 할 전통문화와 자연의 소중함을 보존하는데 공을 드린 위대한 분.
▲ 김재완 원장 수집하는 데 50여년, 식물예술원 조성하는데 10여년. 한 평생을 후손들이 기억해야 할 전통문화와 자연의 소중함을 보존하는데 공을 드린 위대한 분.
ⓒ 박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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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의 상상력과 꿈을 키워나갈 수 있게 동시를 만드는 최정심 작가, 실제 동화 속에 온 것 마냥 꿈의 공간을 현실의 공간으로 만들어내는 김재완 원장. 이들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공간 속에 우리 사는 세상이 조금 더 행복해짐을 느낀다.


#서천식물예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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