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범죄가 그렇겠지만, 납치 또는 유괴 역시 조작의 가능성이 있는 범죄다. 그러니까 실제로는 납치나 유괴를 하지 않았으면서 한것처럼 위장해서 돈을 뜯어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려면 유괴 당하는 사람, 유괴하는 사람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야하고, 성공했을 경우 수익금을 어떻게 분배할지도 사전에 합의를 봐야 한다.
그렇더라도 이런 자작극을 진행하는 데에는 많은 변수가 따른다. 적절한 연기로 피해자의 보호자를 속여야하고 절대로 경찰에 연락하지 못하게 해야한다.
게다가 사람들의 눈을 속여서 돈을 건네받을 방법도 고려해야하고, 그 이전에 요구할 돈의 액수도 적절한 수준에서 정해두어야 한다. 물론 돈을 받은 이후에는 유괴당한 사람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렇게 치밀한 계획 끝에 자작극이 성공한다면 그 일을 꾸민 사람들은 무척이나 만족할 것이다. 돈도 챙겼고 사람도 다치지 않았다. 이후에도 경찰에 적발될 가능성은 별로 없으니 이 정도면 괜찮은 것 아닐까. 물론 그 돈을 지불한 사람의 심정은 그렇지 못하겠지만.
떠돌이 해결사 잭 리처리 차일드의 '잭 리처 시리즈' 10번째 편인 <잭 리처의 하드웨이>에서는 기묘한 납치 사건이 발생한다. 주인공 잭 리처는 제대한 군수사관으로 군 생활을 그만둔 뒤에 미국 전역을 혼자서 여행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그가 가는 곳마다 대형 사건이 터지고 리처는 특유의 직감과 논리로 사건을 해결한다.
<하드웨이>의 무대는 뉴욕이다. 1997년에 발표한 첫번째 편 <추적자>(
관련기사)의 무대가 조지아 주의 작은 마을이었으니 리처는 여행과 사건해결을 겸하면서 어느새 뉴욕까지 올라온 것이다. 여기서도 리처는 사건에 휘말린다. 아니 어쩌면 리처가 적극적으로 사건에 개입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퇴역군인이자 용병인 그레고리 레인의 아내와 딸이 납치되었다. 범인은 몸값으로 현금 100만 달러를 요구했고 레인은 그 돈을 범인이 지정한 방법으로 전달했다. 범인은 돈이 실린 승용차에 올라타고 사라졌는데, 리처가 그 장면을 우연히 목격한 것이다. 그가 납치범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한채.
어쨋든 레인 측의 입장에서 리처는 소중한 목격자이다. 레인은 리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납치범의 소행에 분노를 느낀 리처도 도와주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사건의 세부적인 사항을 검토해볼 수록 이상한 점이 많다. 그러던 도중 리처는 레인의 전 부인 역시 비슷한 방법으로 납치되었고 결국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잭 리처가 만나는 어지러운 세상범죄소설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형사 또는 탐정들 중에서 잭 리처 만큼 독특한 인물도 드물 것이다. 그는 일정한 거주지가 없고 직업도 없다. 정기적인 수입도 없고 사건을 해결한다고 해서 보수를 많이 받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계속 미국을 여행하는 것을 보면 군복무 시절 꽤많은 돈을 모아둔 모양이다.
리처는 짐이나 가방도 없이 항상 빈손으로 돌아다닌다. 휴대폰도 없다. 작품 속에서 리처는 수사를 위해 영국으로 날아가지만, 공항에서 세관직원으로 가장한 보안요원에게 붙잡혀서 이것저것 질문을 받는다. 단지 짐이 하나도 없다는 이유만으로.
어쩌면 리처는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잃을 것도 별로 없어서 적극적으로 사건에 개입하는지도 모른다. 납치나 유괴는 성공하기가 어려운 범죄다. 그렇다면 납치를 자작극으로 꾸미는 것도 그만큼 어려울 것이다.
혹시라도 꼬리가 밟혀 경찰에게 검거된다면 자작극이었다고 고백하더라도 형사처벌을 면하기는 쉽지 않다. 범죄소설을 장식하는 많은 범죄들이 마찬가지겠지만, 사람을 인질로 돈을 요구하는 범죄를 성공시키는 것도 현실에서는 보기 힘들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잭 리처의 하드웨이> 리 차일드 지음 / 전미영 옮김. 오픈하우스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