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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총·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주위상(走爲上)'

'도망가는 것을 상책으로 삼는다'는 <손자병법>의 마지막 병법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36계 줄행랑'은 여기에서 비롯된 말이다. 그러나 <손자병법>이 전하고자 하는 본래의 뜻은 '병력이 열세이면 물러나고, 승산이 없으면 싸우지 않는다'는 전략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승리도 패배도 없는 법, 따라서 불리할 때 일단 퇴각하면 전력을 보완하여 다시 싸울 수 있기 때문에, 용기 있게 후퇴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참다운 용기를 지닌 지도자'란 것을 역설적으로 강조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사회 권력층들 사이에서 '36계 줄행랑'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마치 유행병처럼 도지고 있지만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겁하고 졸렬하기 짝이 없다. 살아있는 권력의 실세들은 검찰 조사만 시작되면 출국을 하거나 병이 나기 일쑤다. MB정부에서 유독 심하다. 정권 출범 초기부터 번져온 권력층들의 '36계 줄행랑' 전략은 정권 말기에 이르러서도 수그러들지 않는다.

고위층의 줄행랑과 다름없는 출국 사례들을 보면 하나 같이 '수사의 칼끝은 우선 피하고 보자'는 식이다. 품격 없는 도피성 출국이 우리사회에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는 것은 국회나 검찰로부터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한 부름을 받으면 슬며시 출국하는 형태가 권력층 사이에서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MB정부의 대표적 유행병이 돼버린 낯부끄러운 '오비이락' 출국 사례를 들여다보면 공통분모는 한가지. 그건 바로 '나부터 살기 위한 36계 줄행랑'이다.

[#36계 줄행랑 ①] 내곡동 특검시작 전날 출국, 왜 하필 이 시점?

이명박 대통령의 맏형 이상은 다스 회장이 내곡동 사저 부지 의혹사건 특별검사팀의 출국금지가 내려지기 하루 전인 지난 15일 출국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지난 2007년 8월 서초동 법무법인 홍윤에서 도곡동 땅 관련 입장을 밝히던 중 물을 마시는 이상은 회장.(2012.10.1)
 이명박 대통령의 맏형 이상은 다스 회장이 내곡동 사저 부지 의혹사건 특별검사팀의 출국금지가 내려지기 하루 전인 지난 15일 출국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지난 2007년 8월 서초동 법무법인 홍윤에서 도곡동 땅 관련 입장을 밝히던 중 물을 마시는 이상은 회장.(2012.10.1)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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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곡동 사저부지 매입 의혹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이광범 특별검사팀(특검팀)'이 어렵게 가동됐지만 초반부터 김이 새고 말았다. 특검팀이 이명박 대통령의 아들 시형씨와 친형 이상은씨 등 관련자 10여 명을 출국 금지한 것은 지난 16일. 그런데 대통령 친형인 다스 회장 이씨가 특검팀의 수사 개시를 하루 앞둔 15일 해외로 출국해 버렸다. 왜 하필 이 시점을 택한 것일까.

24일 귀국 예정이라고 하지만 이씨의 해외출장 기간은 8박 9일이어서 특검의 수사 기간 30일을 감안하면 무려 3분의 1가량에 해당되는 긴 시간이다. 아무리 참고인 신분이긴 하지만 누가 봐도 의심할 만한 출국이다. 특검을 피하기 위한 '온당치 못한 처신'이라는 비판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모른 척하고 있으니 더 얄밉다. 대통령의 친인척 관리를 하고 있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대통령 친형의 출국을 사전에 몰랐을 리 없다. 왜 출국했는지 몰랐다면 이는 청와대 정무업무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미리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를 만류하지 않았다면 방조한 책임 또한 크다.

이씨는 조카 시형씨가 내곡동 사저 부지를 11억 2000만 원에 매입할 당시 6억 원을 빌려준 인물이다. 의혹을 받고 있는 내곡동 부지 매입자금의 절반을 넘는 거액을 빌려준 그가 내곡동 사저 특검의 중요한 참고인으로 꼽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수사 개시 직전 출국이라니 '사전 김빼기' 또는 '줄행랑'으로 밖에 해석되질 않는다.

더구나 2007년 12월 당시 검찰의 BBK 의혹수사 발표를 앞두고 일본으로 출국해 논란을 일으킨 전력도 갖고 있는 이씨는 MB정부 출범 전부터 지금까지 MB 주변을 서성이고 있는 'BBK 의혹'과도 관련이 짙은 인물이다. 실소유주 논란을 부른 다스의 최대주주이자 회장이다.

이번 특검이 상당한 폭발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기도 하다. 양파껍질처럼 촘촘히 에워싸인 다스의 지분구조 등 'BBK 의혹'의 실체가 이번 특검을 통해 벗겨질 수 있을지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이다.

BBK와 관련된 주가 조작 혐의로 수감 중인 김경준씨는 최근 펴낸 자서전에서 '다스의 실소유주는 이명박 대통령'이라고 주장했다. 과연 특검팀 수사가 어디까지 진행될지 자못 궁금하다. 

[#36계 줄행랑 ②] MB측근 천신일,  검찰 '아량'속 해외도피 100일 기록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 'MB 절친' 천신일 회장 구속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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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들어'36계 줄행랑'성 출국하면 쉽게 떠오른 인물이 있다. 대통령의 최측근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그 주인공. 2010년 8월 19일, 검찰이 '대우조선해양의 협력업체로부터 40억여 원의 금품을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수사를 본격화하자 그는 일본으로 출국했다. 출국금지 하지 않은 검찰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지만 검찰은 서두르지 않았다.

국내의 드센 비판 여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천 회장은 미국과 일본 등을 오가며 '치료를 받는다'는 핑계로 시간을 끌었다. 그는 대통령과 대학교 동기이면서, 6·3 동지회 회원으로 명절 때 가족들과 같이 식사를 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런 그가 대우조선 협력업체로부터 금융권 대출 청탁 등과 함께 수십억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검찰 수사망이 자신에게 점점 좁혀져오자 슬며시 출국했다. 그는 과거 재벌 회장 등이 궁지에 몰리면 줄곧 출국과 함께 사용했던 '건강악화' 카드까지 들고 나섰다.  

검찰이 귀국을 종용하자 그때서야 측근을 통해 "재수술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미국 뉴욕에 있는 병원에 갔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같은 해 11월 일본에서 허리디스크 치료 일정을 잡는 등 버티기로 일관하다 회사와 계열사가 압수수색을 당하자 그때서야 귀국했다. 그는 귀국 후에도 검찰 출석에 앞서 먼저 병원부터 들렀다.

그가 검찰에 출두한 것은 출국한지 무려 100여일 만이다. 기다림의 관용을 베풀어 온 검찰은 대통령 측근인 그에게 병원행까지 허락하고 조사일정도 늦춰주는 아량을 베풀었다. 도피를 목적으로 해외에 체류하다 귀국한 피의자에 대해선 현장에서 체포영장을 집행해 온 검찰 관행과는 거리가 멀다.

[#36계 줄행랑 ③] 연락 끊긴 권력실세 '양아들'... 지금도 해외 체류중?

최근 정용욱 전 방통위 정책보좌관 등 측근 비리가 불거지면서 사퇴 압력을 받아온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최근 정용욱 전 방통위 정책보좌관 등 측근 비리가 불거지면서 사퇴 압력을 받아온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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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권 출범 이후 실세중의 실세로 꼽혀온 'MB의 멘토'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방통위원장)이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혐의로 구속 수감됐지만 그와 비슷한 비리혐의를 지닌 '양아들'은 검찰 수사를 피해 1년여 동안 해외에 머물며 도피 중이다.

최 전 방통위원장의 '양아들'로 불리는 정용욱 전 방통위 정책보좌관은 파이시티측으로부터 1억 5000만 원 을 받았다는 주장이 나왔는가 하면, 구속 기소된 김학인 전 한국방송예술진흥원 이사장으로부터 2억 원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다.

또한 그는 최 전 방통위원장의 지시를 받고 2009년 미디어법 처리 직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의원들에게 500만 원이 담긴 돈 봉투를 전달한 의혹도 받고 있다. 아울러 차세대 이동통신 주파수할당과정에서 SK텔레콤 등 통신업체로부터 수억원대 뇌물수수, CJ 등 케이블TV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로비 의혹 등도 받고 있다.

대부분 최 전 방통위원장이 가장 큰 결정권을 가진 방통위 업무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것들이다. 그런 그가 검찰 수사망이 목전까지 좁혀오던 지난해 9월 동남아로 출국해 지금까지 오리무중이다. 그는 지난 2009년 한국교육방송공사(EBS) 이사 선임 대가로 당시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으로부터 수억 원을 건네받았다는 의심을 받으면서 양아버지겪인 최 전 위원장을 위기에 몰아넣었지만, 그만은 지금도 검찰을 조롱하듯 해외에서 머물며 긴 시간을 끌고 있다.    

검찰도 어물어물 시간을 허비하기는 마찬가지. 의혹의 열쇠를 쥔 그가 해외로 도피한 뒤 그와 관련된 사건들의 수사는 사실상 개점 휴업상태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그의 줄행랑성 해외도피는 이미 예고됐었다. 그는 검찰이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의 정관계 로비의혹 수사에 착수하자마자 방통위에서 사직했다. 낌새를 눈치 챈 그는 이후 수사망이 자신에게로 점점 좁혀오자 어수선한 틈을 타 가족과 함께 태국으로 출국해버렸다.

그는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되지 않은 말레이시아에서 머물다 최근에는 미국에 체류 중이라는 소문까지 나돌 정도로 치밀한 줄행랑 작전 속에 도피행각을 펼치고 있다. 검찰은 그를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관용을 베풀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지난 9월 4일 방통위 재직 시절 국회의원들에게 금품로비를 한 의혹을 받고 있는 그에 대해 참고인 중지 처분을 내릴 정도다. 그에 대한 수사가 잠정 중단됐음을 의미한 것이어서 '36계 줄행랑'이 일단은 먹힌 꼴이다.

[#36계 줄행랑 ④] 국감·문방위 출석 앞둔 김재철 "나도 출국?"

김재철 MBC사장이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방송문화진흥원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김재철 MBC사장이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방송문화진흥원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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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실세들이 부당한 행위를 하고도 사법당국의 수사 칼끝을 피해 해외로 줄행랑치는 유행병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김재철 MBC 사장이 오는 2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국정감사 증인 출석을 사흘 앞두고 또 다시 전격 출국해 비난이 고조되고 있다. 19일 일본과 미국으로 출장을 떠난 김 사장은 지난 8일 환노위 국감을 앞두고 베트남으로 출국해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았다. 환노위는 재차 출석을 요구하며 동행명령을 발부한 상태다.

김 사장 비서실 관계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귀국 일정은 알지 못한다"고 밝혀 언제 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김 사장은 19일 낮 12시 5분 비행기를 예약했지만 노조의 출국 저지 등을 피해 오전 9시로 앞당겨 김포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출국했다고 하니 더욱 기가 막힌다. 이번에도 환노위 국감을 회피할 목적으로 출국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게다가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에서 김 사장 해임안 상정 가능성이 높은 25일에도 돌아오지 않을 경우 처리여부에 귀추가 주목된다.

정수장학회가 MBC 지분을 팔아 장학사업을 벌이기로 MBC와 협의한 사실이 밝혀진 뒤 정수장학회의 이사진 사퇴와 사회환원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MBC 사장 해임요구가 방송사 노조와 야권에서 거세게 일고 있지만 문제의 당사자가 해외출국으로 몸을 피해 의혹과 비난만 키우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다.

당초 1박 2일로 잡혀 있던 일본 출장을 22일까지 연장한 김 사장은 일본에서 곧바로 미국으로 넘어가 28일쯤 귀국할 것으로 전해져, 오는 22일 국정감사에 참석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또한 MBC 대주주인 방문진도 오는 25일 임시이사회에서 김 사장 해임안 처리를 논의할 계획이었지만 당사자가 없는 가운데 처리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이에 대해 MBC노조는 '비상대책위 특보'를 통해 "김재철이 출국할 때는 공영방송 MBC의 사장 자격으로 나갔지만, 귀국할 때는 자연인 김재철 신분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방문진 업무보고 및 청문회, 국회의 국정감사 등과 같이 자신에게 위기가 닥치면 회삿돈을 들여 해외출장이란 명목으로 느닷없이 줄행랑을 치듯 도피하는 사람이 과연 공영방송 수장자리에 앉아있을 자격이 있을까.

내부 구성원들로부터 오래전 신뢰를 잃은 그가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까지 무시하는 오만함을 보면 살아 있는 권력층의 그것과 쏙 빼닮았다.   


태그:#36계 줄행랑, #도피성 출국, #이상은, #김재철, #정용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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