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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1일 오후 여의도 당사에서 정수장학회 관련 입장을 밝힌 뒤 질의응답을 위해 기자를 지목하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1일 오후 여의도 당사에서 정수장학회 관련 입장을 밝힌 뒤 질의응답을 위해 기자를 지목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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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과거사 인식에 공통된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른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군사독재 피해자와 유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기도 한다.

21일 정수장학회 관련 기자회견에서 박 후보는 기자회견문을 읽은 뒤 '법원에서 부일장학회 헌납에 강압이 작용했다고 판단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고 "결국 법원이 최종판결을 해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잖아요. 강압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는 결론을 말한 것"이라고 답했다.

다시 한번 '김지태씨 유족들이 말하는 당시 정황은 강탈당했다는 것'이라는 질문에 박 후보는 "유족들이 그렇게 제소했죠. 그렇지만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고 강압조건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질의응답이 다 끝나고, 참석한 기자들과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누던 박 후보는 당직자에게 쪽지를 건네받는다. 그러곤 다시 기자들 앞에 서서 직접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제가 '강압이 없었다'고 했나요? 그건 제가 잘못 말한 것 같구요. '강압이 있었는지 인정하기 어렵다'고 패소판결을 한 것으로 제가 알고 있고요. 연합뉴스에 보면, 우리 기자분들이 더 잘 알고 계시죠 이 내용은? '강압에 의해서 주식증여의 의사표시를 했음이 인정된다'고 재판부가 얘길 하고, 또 '강박의 정도가 김씨 스스로 의사결정할 여지를 완전히 박탈할 만큼 증여행위를 아예 무효로 할 정도로는 인정되지 않는다' 그런 기사가 나서…. 제가 아까 (강압행위가) 없다고 말한 건 잘못 말한 것 같습니다."

박 후보가 말한 재판은 김지태씨의 장남 등이 정수장학회를 상대로 낸 주식양도 소송인데, 지난 2월 서울중앙지법은 1962년 당시 중앙정보부 부산지부장이 권총을 차고 와서 김씨를 겁박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과거 군사정부에 의해 자행된 강압적인 위법행위로 주식이 증여됐으므로 국가는 김지태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강박에 따른 증여 의사표시에 대한 취소권은 주식을 증여한 1962년 6월 20일로부터 10년이 지나 소멸됐다"는 것과 "김지태가 증여행위를 아예 무효로 할 정도로 의사결정의 여지를 완전히 박탈당한 상태였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박 후보가 해당 소송 판결 내용에 대해 한 번만 알아봤어도 "강압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고 강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박 후보는 자신의 발언을 정정하면서 "연합뉴스에 보면, 우리 기자분들이 더 잘 알고 계시죠, 이 내용은?"이라며 해당 소송 관련 내용이 무슨 새로운 소식이나 되는 듯 말했다.

공부를 안 해서 그러는지, 알면서 그러는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1일 오후 여의도 당사에서 정수장학회 관련 입장을 발표하는 가운데, 프롬프터에 박 후보가 발표할 원고 내용이 표시되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1일 오후 여의도 당사에서 정수장학회 관련 입장을 발표하는 가운데, 프롬프터에 박 후보가 발표할 원고 내용이 표시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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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장학회 논란에 대한 기자회견에 나서면서 관련 내용을 몰랐다는 것도 문제지만, 학계의 정설인 '부일장학회 강탈'을 부정하려 한 건 '공부를 안 해서 그러는지, 알면서 그러는지'라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

굳이 재판부 판결 내용을 들여다 보지 않더라도 당시 상황에 대한 각종 증언과 정황, 군 검찰에 의해 구속기소됐던 김지태씨가 기부승낙서에 도장을 찍은 뒤에야 풀려나온 상황 등을 기반으로 김씨의 재산헌납에는 군사정권의 강압이 작용했다는 게 정설로 굳어진 지 오래다.

박 후보 자신이 당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없으니, 김지태씨를 부정축재자로 단정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당시 김지태씨는 부정부패로 많은 지탄을 받았던 분이었습니다. 4·19 때부터 이미 부정축재자 명단에 올랐고, 분노한 시민들이 집 앞에서 시위를 할 정도였습니다. 그 후 5.16 때 부패혐의로 징역 7년형을 구형받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처벌을 받지 않기 위해 먼저 재산헌납의 뜻을 밝혔고, 부산일보와 문화방송 주식 등을 헌납했던 것입니다."

5·16 군사쿠데타 직후의 군 검찰의 공소제기를 진실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박 후보는 지난달 24일 스스로 한 '과거사 사과'가 진심이 아니라고 밝힌 셈이 됐다. 그러나보니 도대체 박근혜의 본심은 뭥미? 몰라서 그러는지 알면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김지태씨에 대한 군 검찰의 기소 내용이 사실이고 김씨가 먼저 재산헌납을 제안했다고 가정한다면, '부정축재자에 대한 처벌을 포기하고 재산을 헌납 받아 장학회를 설립한 건 잘못'이라거나 '법원 판결 없는 재산 헌납은 잘못'이라고 하는 게 맞다. 그랬다면 박 후보는 '원칙과 신뢰의 박근혜'가 될 뻔했다.

유가족에 대못질... "유괴한 아이 돌려달라는 건 '도둑놈 심보'라고?"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1일 오후 여의도 당사에서 정수장학회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박 후보 앞에는 발표할 원고가 표시되는 프롬프터가 설치되어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1일 오후 여의도 당사에서 정수장학회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박 후보 앞에는 발표할 원고가 표시되는 프롬프터가 설치되어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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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현대사에 대해 공부가 안 돼 있고 반박할 논거가 부족하다 보니, 급기야는 군사정권 강압통치의 피해자들을 파렴치한 사람들로 몰아가는 논리도 폈다.

"당시 김지태씨가 헌납한 부산일보와 문화방송의 규모는 현재의 부산일보와 MBC 규모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부산일보는 당시 자본이 무려 980배나 잠식되어 자력으로 회생하기 힘들 정도의 부실기업이었습니다. 또 당시 MBC 역시 당시에는 라디오방송만 하던 작은 규모였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너무나 견실하게 성장을 해서 규모가 커지자 지금 같은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박 후보의 이 발언에 대해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트위터에서 "박 후보가 당시 문화방송, 부산일보는 형편없는 회사였다고 한다"며 "'갓난아이 유괴하고서 50년 후 3kg짜리 아이 이렇게 훌륭하게 키워놨는데 김지태 유족들이 돌려달라는 건 도둑놈 심보다'라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비판했다. 김지태씨 유족들은 박 후보를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두 개의 인혁당 판결' 발언 때도 피해자에 대못 박고 현대사 무지 드러내

(왼쪽) 21일 기자회견을 통해 '정수장학회' 문제를 정치적 공세로 규정하며 정면돌파를 택한 박근혜 후보. (오른쪽) 정수장학회 전신인 부일장학회를 세운 고 김지태씨 부인 송혜영씨가 19일 기자회견에서 박 후보의 결단을 촉구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왼쪽) 21일 기자회견을 통해 '정수장학회' 문제를 정치적 공세로 규정하며 정면돌파를 택한 박근혜 후보. (오른쪽) 정수장학회 전신인 부일장학회를 세운 고 김지태씨 부인 송혜영씨가 19일 기자회견에서 박 후보의 결단을 촉구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권우성/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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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일은 불과 한달 여 전인 9월에도 있었다. 바로 박 후보가 "인혁당사건은 2개의 재판 결과가 있다. 역사에 맡기자"고 했던 일이다.

'2개의 인혁당 판결' 발언은 1974년 2차 인혁당 (인혁당 재건위 및 민청학련) 사건에 대한 2007년 법원의 재심판결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어서 문제가 됐다. 사법살인 사건의 유가족들은 다시 고인의 영정을 들고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곧이어 박 후보가 "같은 대법원에서 상반된 판결이 나온 것도 있지만, 한편으론 그 조직에 몸담았던 분들이 최근 여러 증언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까지 감안해 역사 판단에 맡겨야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한 것"이라고 반론을 폈다.

박 후보가 반론의 근거로 삼은 것은 1964년의 1차 인혁당 사건에 대한 것이다. 2차 인혁당 사건은 인혁당이라는 이름만 1차와 같을 뿐, 조작으로 밝혀졌다는 점에서 박 후보가 말한 내용과는 관련이 없다. 10년이란 세월의 간격이 있는 1차와 2차 인혁당 사건을 구분하지 못한 박 후보의 '현대사 무지'만 드러내고 말았다. 

박 후보가 이미 사과한 일이지만, 이번 정수장학회 기자회견을 보면서 '두 개의 인혁당 판결' 발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건 유사성 때문이다. 두 건 모두 박 후보가 자신이 살아온 세월임에도 현대사의 진행과정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걸 드러냈다. 만약 알면서 그렇게 말했다면 박 후보는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의 과오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것 밖에 안 된다.

또, 자신의 발언으로 인해 상처받을 국가 권력 피해자들에 대한 고려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100% 국민 대통합을 이루겠다"는 대통령 선거 후보가 선거 국면의 전환을 위해 국가권력 피해자들을 또다시 울리고 있다.


태그:#박근혜, #정수장학회, #인혁당, #대못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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