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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 시원한 글쓰기> 표지
 <속 시원한 글쓰기> 표지
ⓒ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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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글을 이리저리 추리고 만지고 다듬는 일을 업으로 삼다 보니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느냐'는 질문을 심심찮게 듣게 된다. 그럴 때마다 참 난감하다. 그게 한마디로 딱 말해줘서 되는 거라면 얼마나 좋겠나. 옛날 중국의 어느 문장가는 '다독, 다작, 다상량'이라고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면' 된다고 했지만, 대체 무엇부터 읽고 쓰고 생각해야 하는지 듣는 사람은 참 답답하기만 하다.

그런데 이 사람은 참 화끈하게 정리한다. '쓸 때는 솔직하게, 쓰고 나선 뻔뻔하게' 하란다. 글을 많이 배우고 말을 고상하게 꾸미지 않아도 솔직하고 뻔뻔하게 자기가 제일 잘할 수 있는 말을 종이 위에 옮기면, 그게 내 삶을 바꾸고 세상도 바꾼단다. 제목부터 화끈한 <속 시원한 글쓰기>의 저자, 오도엽 작가의 말이다.

편의상 '작가'라는 호칭을 사용했지만, 저자의 정체는 참 다양하다. 공장 노동자로 살다 "똥발이 굵어야 한다"는 시 한 줄로 어느 날 덜컥 시인이 되었고, 나이 마흔에 공장으로 농촌으로 떠돌며 만난 이들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해서 작가가 되었다. 또 짬짬이 '오마이스쿨 시민기자학교' 등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다 보니 이제는 글쓰기 강사라는 정체가 더해졌다. <속 시원한 글쓰기>는 글쓰기라면 몸에 두드러기가 났다는 저자가 글을 만나고 쓰고 가르치면서 살아가게 된 이야기를 통해 글쓰기에 덤비는(?) 자세에 관해 말해주는 책이다.

표지에 그려진 큰 연필이나 제목에 들어간 '글쓰기'라는 말을 보고 흔해 빠진 '글쓰기 기술' 책이라 짐작한다면 실망하고 말 것이다. 육하원칙이 어떻다느니 주어와 술어의 호응을 저떻다느니 하는 설명은 이 책의 부록일 뿐이다. 어떤 마음으로 글쓰기를 시작해야 하는지, 무엇부터 어떻게 써야 하는지, 내 삶의 무엇이 글이 되고 그 글은 또 어떻게 남과 나누어야 하는지, 저자는 자신의 삶을 증거로 속 시원하게 이야기한다.

'문장기술'은 부록일 뿐... 글쓰기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내 삶을 바꾸는 글쓰기 교실'이라는 부제에 어울리게, 이 책은 5교시의 글쓰기 수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1교시 '먼저 너 자신을 써라'에서는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하는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삶을 쓰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가르쳐준다. 2교시 '나에서 이웃으로, 이웃에서 세상으로'에서는 노동이라는 가장 보편적인 삶의 주제를 가지고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 말하고, 3교시 '글과 함께 놀아보기'에서는 저자가 체험을 통해 입증한, 좋은 글을 만드는 여러 가지 습관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학창시절의 묘미는 '땡땡이'에 있지 않은가. 저자에겐 미안하지만, 기사나 인터뷰 글까지 쓰겠다는 사람이 아니라면 사실 3교시까지만 듣고 땡땡이를 쳐도 좋겠다. 4교시 '이것만 알면 나도 기자'에서는 '색다른' 기사나 칼럼을 쓰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5교시 '쫄지 마, 인터뷰'에서는 이웃의 이야기를 가장 진솔하게 담을 수 있는 형식인 인터뷰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보충수업'이 있는데, 글맛을 살리는 아홉 가지 세밀한 기술을 소개하는 것으로 속 시원한 글쓰기 수업은 마무리된다.

목차만 훑어봐도 이 책이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지 감이 올 것이다. 이 책은 글쓰기의 문턱에서 번번이 좌절했던 사람, 글 잘 쓰는 사람만 보면 부러워 기가 죽는 사람, '일단 뭐라도 좀 써보자!' 하고 글쓰기에 처음으로 덤벼드는 사람들을 위한 글쓰기 수업이다. 그래서 저자는 문장기술 따위를 앞세우지 않고, 글 속에 '진심'을 담아야 하는 이유부터 설명한다.

왜 글을 쓸까? 이름을 날리려고? 남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작가가 되려고? 돈을 벌고 싶어서? 아니다. 내 삶을 치유하고, 건강하게 살려고 글을 쓴다.(22쪽)

내 속이 시원하다. 가끔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뭐라 평가(?) 같은 걸 해줘야 할 자리가 있으면 나도 이런 얘기를 하고 싶어서 참 답답했다. 글 자체에 글쓴이의 간절함과 진솔함이 담겨 있지 않은데 아무리 멋진 단어를 골라 쓰고 맞춤법 딱딱 맞게 쓴들 뭣하겠나. 그럴 때마다 "맞춤법이나 비문 바로잡는 건 우리 같은 편집기자들 밥줄이니까 너무 잘하려 하지 말고, 진실한 삶을 담는 것만 고민해달라"는 말을 많이 한다.

저자 역시 "남의 눈을 의식해 자신의 삶을 꾸며서는 글쓰기가 행복이 아니라 고역"(29쪽)이라고 말하며, 처음 글을 쓸 때는 무조건 자신의 삶을, 문장이야 맞든 틀리든 무조건 솔직하게 쓰라고 거듭 강조한다. "어떤 명문도 거침없이 쓴 글을 따라오지 못한다"(41쪽)며 "솔직해야 독자의 가슴을 울릴 수 있다. 감동은 기교가 아닌 솔직함에서 비롯하다"(41쪽)고 단언한다. 나 역시 두고두고 인용하고 싶은 훌륭한 정의다.

"나는 '바담풍' 해도 너는 '바람풍' 해라"는 속담이 있다. 자기는 제대로 못 하면서 남에게는 바르게 하라고 가르치는 꼴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요즘 참 많이도 쏟아지는 글쓰기 책 가운데, 가끔 이 속담이 생각나는 책들이 있다. 구체적으로 쓰라는 소리를 하면서 그 책은 구체적으로 안 쓰인 그런 책! <속 시원한 글쓰기>는 '솔직함'을 강조하는 저자답게 설명도 참 솔직하게 했다. 오도엽 작가 자신이 글쓰기를 알아가며 겪은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면서, '이 사람도 나랑 똑같았네. 그럼 나도 할 수 있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도록 한다.

"일터와 주위 사람과 꽃과 풀과 돌멩이... 그곳에 재미가 있다"

저자의 솔직한 체험과 더불어 이 책을 술술 읽히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풍부하고 적절한 예문이다. 글쓰기 책에서 하는 얘기들은 대개 비슷하다. 하지만 어떻게 쓰는 게 좋다는 걸 써놓는다고 해서 바로 그게 이해가 되나. 적절한 예문들을 인용해서 눈앞에 짠 보여줘야 독자들은 '이렇게 쓰라는 거구나' 하고 이해하게 된다. 오도엽 작가는 어디서 이런 글들을 다 찾아냈는지 예문을 참 잘 골랐다.

저자는 자기 목소리로 미주알고주알 가르치지 않는다. 다음 예문에서 무엇을 살펴봐야 할지 딱 짚어주고 안성맞춤의 예문을 읽으면서 눈으로 확실하게 찾고 느끼도록 해준다. 다만 간혹 너무 긴 예문이 있어서, 읽다가 '뭘 따지면서 읽으라고 했지?' 하고 요점을 살짝 놓치기도 했다. 하지만 예문을 토막토막 보여주면 글맛을 못 느끼고 표현이나 기술만 보게 되는 맹점이 있으니, 그 역시 단점이라 꼬집기는 좀 뭣하다.

진짜 단점이라 할 만한 걸 하나 지적하자면, 앞서도 살짝 언급한 4교시와 5교시다. 색다른 시각의 기사 쓰기와 인터뷰 쓰기로 이야기를 확장시킨 것 자체는 참 좋았다. 하지만 처음 '생활글 쓰기'로 시작한 이야기가 왜 하고많은 글 종류 가운데 기사와 인터뷰로 뻗어 나가야 하는지는 잘 설명되지 않은 느낌이다. 그냥 '저자의 글쓰기 이력이 그래왔기 때문'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독자가 그리 너그러울까' 하는 걱정이 남았다.

저자는 "눈치챘겠지만, 결론은 '네 멋대로 써라'다"(165쪽)라고 이 책을 정리했다. 5교시와 마무리 보충수업까지 내내 집중해서 들어도 좋고, 아니면 3교시까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4교시부터는 저자의 뜻(?)이 그렇듯이 '내 멋대로' 슬렁슬렁 읽어봐도 나쁘지 않겠다. 다만 몇 교시까지 수업을 듣든 제일 중요한 것 하나는 기억해야 한다. 한 번의 수업으로, 안 되던 글쓰기가 뿅 하고 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 수업시간 사이사이에, 그리고 수업을 다 듣고 나서도 자발적으로 쓰고 또 써야 할 숙제들이 남아 있다.

솔직하게 써야 한다는 것을 알았으니 실제로 솔직하게 글을 쓰는 일만 남았다. 뭘 가지고 써야 할지, 문장은 어떻게 써야 할지, 쓰고 나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것은 이제 그만. 좋은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눈'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전한다. 글쓰기는 여기서 시작하고 여기서 끝난다.

글을 쓰는 사람은 눈이 중요하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소중하게 볼 줄 아는 눈. 그 눈을 가질 때,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다. 일터와 주위 사람과 꽃과 풀과 돌멩이를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자. 그곳에 재미가 있다.(108쪽)

덧붙이는 글 | <속 시원한 글쓰기> 오도엽 씀, 한겨레출판사, 2012년 8월, 296쪽, 1만2000원



속 시원한 글쓰기

오도엽 지음, 한겨레출판(2012)


#오도엽#글쓰기#생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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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사람. <사다 보면 끝이 있겠지요>(산지니, 2021) 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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