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졸업할 때까지 같은 반이었다. 한 학년이 한 반씩 있었으니 6년간 한 반일 수밖에 없었다. 남녀 혼성으로 43명이 한 반에서 졸업했다. 비록 하루였지만 기차를 타고 전남 보성에 있는 예당바닷가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졸업여행도 갔었다. 바다를 처음 본 애들은 신기하다며 짠 바닷물을 몇 번이고 맛을 봤었다. 점심을 먹고 빈 도시락에 처음 본 고동을 욕심껏 채워 온 기억도 있다. 시쳇말로 촌놈들이 출세한 것이다. 그때가 1976년도다.
세월은 우리 곁을 너무나 많이 지나갔다. 36년 만인, 지난달 27일 제주도에서 만났다. 한 반 동무였던 우리는 반백이던 시절도 훌쩍 뛰어 넘어버리고, 염색을 하거나 백발이 다 돼서야 조우다. 그것도 가슴 애린 사연을 하나 담고서.
이날 여행은 지난 초여름에 몇몇 친구와 마을 앞에서 천렵(川獵 냇물에서 고기를 잡음)하던 자리에서 간암으로 투병 중인 친구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제안했던 여행이다.
"친구가 건강해지면 올 가을에 제주도로 2박3일 여행간다."가장 큰 목소리로 두 손을 흔들며 좋아했던 친구가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우리하고 약속한 지 1개월이 채 안되어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두고 낙엽처럼 훌쩍 떠나버렸다.
친구하고 약속한 그 다음 날 나는 곧바로 여행사에 예약을 했기 때문에 일정대로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 제주도에서 첫날 밤. 식당에서 친구의 명복을 비는 순서도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흐를 즈음 한 친구가 일어서더니 이렇게 말을 하며 건배를 제의했다.
"이 친구는 아마도 우릴 따라와 우리 위에서 다 보고 좋아할 거니까. 즐겁게 보내자. 우리 모두를 위하여~" 한순간에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맘대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이 살아있는 사람의 특권인가보다.
처음에 졸업생 가운데 제주도 여행을 함께 가겠다는 동창은 17명이었지만, 중간에 5명이 사정이 생겨서 동행하지 못했다. 제주도 공항에서 만난 동창들은 공교롭게도 남자 여섯, 여자 여섯 12명이다. 공항에 나온 여행사 직원이 부부모임에서 온 줄 알았다며 웃었다. 에코랜드, 아트랜드, 유리의 성, 산방산 유람선, 감귤농원, 카멜리아 힐, 서커스월드, 일출랜드, 승마, 성읍민속마을, 선녀와 나무꾼 관광지를 2박3일로 여행했다. 여행하는 동안 내내 재밌는 일이 많아서 참 많이 웃었다.
유리의 성을 둘러 본 한 친구가 얼굴이 빨갛게 되어서는 긴 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야기인즉 유리의 성에서 전신이 보이는 거울 미로에 갔다가 자신이 너무 많이 나이들어 보여 깜짝 놀라서 후다닥 나왔단다. 늘 시간에 쫓기어 사는 세대가 우리 세대여서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귤농원에서 여자동창들은 제주도 비바리가 되어 한껏 멋진 폼으로 카메라 앞에 섰고, 아직 싱글인 총각 동창은 신혼부부의 관광 필수 코스인 승마장에서 폼 잡고, 사진을 찍고는 액자에 담아왔다.
이른 아침 바다를 콧노래 부르며 걸어가는 여자 친구의 모습은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서정주의 '국화옆에서'의 누님 같이 참 넉넉해보였다. 서로 선물을 사서 나눠주며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친구들은 서울, 울산, 광주, 화순으로 돌아갔고, 투병 중인 친구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서 계획된 제주도 여행은 그렇게 끝났다.
만날 때마다 추억의 보따리에서 추억을 꺼내어 얘기하곤 했던 우리는 그 보따리에 큰 추억 하나를 담았다. 어쩌면 함께 갈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면서도 제주도로 여행을 가자고 할 때 가장 좋아했던 친구가 더 생각난다.
친구야! 언젠가는 지금 단풍처럼 황홀한 잔치를 끝내고 친구가 있는 그곳으로 가겠지만, 아직은 멋진 추억을 더 만들어야겠지? 즐거웠던 제주여행을 친구에게 바치면서 친구의 명복을 빈다.
덧붙이는 글 | 월간잡지 '첨단정보라인12월호'에도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