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현재까지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5일 오후 안철수 전 대선 예비후보 쪽 유민영 대변인은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대선을 2주일 앞두고서도 안 전 후보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에 대한 지원 방식을 결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안 전 후보 스스로 사퇴 기자회견과 캠프 해단식에서 문 후보를 야권 단일후보로 지목, 지지자들에게 성원을 당부한 바 있다.

안 전 후보의 지원이 늦어지면서 애가 타는 것은 문 후보와 민주당이다. 이날 오전 문 후보는 안 전 후보를 만나기 위해 용산구 자택까지 찾아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안 전 후보는 자택에 없었고, 문 후보는 헛걸음을 해야 했다. 오히려 안철수 캠프 인사들은 민주당의 이런 조바심이 안 전 후보의 결단을 늦추게 하는 요인이라고 보고 있다.

이날 오전 일부 언론이 '안 전 후보가 문 후보의 선거운동을 전폭 지원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안 전 후보 쪽은 이를 민주당의 언론플레이로 해석했다. 아직 지원 방식을 결정하지 않았는데 '선거운동 전폭 지원' 등의 말을 언론에 흘려 자신들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 전 후보는 민주당에 의해 억지로 끌려나오는 식의 지원이 아니라 새정치와 정권교체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스스로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원하고 있다. 또한 자신을 지지하다가 부동층으로 돌아선 10~20% 지지자들의 표심을 문 후보에게 향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적극적인 역할과 극적 타이밍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안 전 후보가 문 후보 지원 방식과 시기를 놓고 계속 뜸을 들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문재인-안철수 단독 비공개 회동?"... 멘붕 빠진 기자들

 5일 오후 서울 공평동 안철수캠프에 많은 취재진들이 안철수 전 대선후보 측의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지원방안 발표 기자회견을 기다리고 있다.
5일 오후 서울 공평동 안철수캠프에 많은 취재진들이 안철수 전 대선후보 측의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지원방안 발표 기자회견을 기다리고 있다. ⓒ 조재현

서울 종로구 공평동 공평빌딩 5층 사무실은 당초 안철수 캠프 민원실로 쓰이던 곳이다. 그러나 지난 3일 캠프 해단식 이후 지금은 기자실로 쓰고 있다. 후보직 사퇴 이후에도 여전히 안 전 후보의 행보가 이번 대선의 최대 변수가 되고 있기 때문에 매일 40여 명의 기자들이 상주하고 있다. 안 전 후보가 해단식 이후 본격적인 문 후보 지원 활동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캠프에 대한 언론의 주목도는 더욱 높아졌다.

특히 대선후보 첫 TV토론 다음날인 5일, 기자실에는 하루 종일 긴장감이 흘렀고 기자들의 손과 발은 분주했다. 이날 오전 <연합뉴스>에서 '안, 문 선거운동 전폭 지원키로... 이르면 오늘부터'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안 전 후보는 이르면 이날 오후 문 후보의 서울 소재 대학 유세현장에 전격 방문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안 전 후보는 오전 시내 모처에서 일부 측근인사들과 만나 문 후보 선거운동 지원 방식을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기자들은 기자실에 나와 있는 대변인실 관계자들을 붙잡고 기사 내용을 확인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동시에 유민영 대변인 등이 이날 안 전 후보의 지원 활동 내용을 브리핑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다.

그런 가운데 이날 오전 11시 20분께 허영 비서팀장이 기자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안 전 후보가 참모들과 회의 중이라면 허 팀장이 기자실에 있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허 팀장에게 기자들이 우르르 몰렸다. 허 팀장은 "기사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며 "(핵심 참모라고 할 수 있는) 선대본부장들은 전부 흩어져 있다"고 말했다. 안 전 후보와 회의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오전 11시 40분께 허 팀장과 기자들이 얘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한 방송사 화면에 '문재인-안철수 단독 비공개 회동'이라는 자막이 떴다. 기자들은 "이게 뭐야!" "정말이야!"라는 탄식과 함께 '멘붕' 상태가 됐다. 보도가 사실이면 수십 명의 기자들이 낙종을 한 셈이다. 그러나 안 전 후보와 항상 함께 다니는 허 팀장은 기자실에 있었다. 허 팀장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기자들에게 "(두 사람이 회동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절대 아니다"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기자들은 자신의 소속 언론사에 관련 내용을 보고했지만, 만일의 상황 때문에 한동안 술렁였다. 5분 쯤 지난 뒤, 문 후보가 국회 의원회관에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두 사람의 단독 회동 보도는 오보로 결론났다.

그러나 두 사람의 회동설이 터무니없는 얘기는 아니었다. 문 후보가 이날 오전 안 전 후보를 만나기 위해 자택까지 찾아갔지만 불발로 끝난 것이다. 문 후보는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본부장단 회의에 참석했다가 오전 9시 30분 쯤 당사를 떠나 용산에 위치한 안 전 후보의 자택을 찾아갔다.

안 전 후보의 자택에 도착한 문 후보는 안 전 후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당시 안 전 후보는 자택에 있지 않았고, 문 후보는 아무런 성과 없이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문 후보의 전화를 받은 안 전 후보가 다시 회동 약속을 잡았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문 후보가 안 전 후보 자택 방문에 앞서 사전 조율이 없었다는 점에서 이후 회동 약속도 잡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문 후보가 사전 약속도 없이 일방적으로 안 전 후보의 자택까지 찾아온 것은 안 전 후보가 문 후보의 회동 요청을 계속 거부해왔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문 후보가 안 전 후보를 만나려고 찾아갔다가 헛걸음을 했다는 내용은 곧바로 이날 낮 일부 언론에 보도가 됐고 다시 기자실은 술렁였다. 이 사건이 향후 안 전 후보의 문 후보 지원 행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놓고 촉각을 곤두세운 것이다. 간혹 캠프 관계자가 기자실에 나타날 때마다 수십 명의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질문을 쏟아냈다. 하지만 캠프에 남아 있는 관계자들도 정확한 내용을 알지 못했다. 결국 기자들의 등살을 견디지 못해 도망치듯 기자실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안철수의 지원 방식은 다양하게 열려 있다"지만...

 5일 오후 서울 공평동 안철수 캠프사무실에서 한형민 공보실장이 금일 브리핑이 취소되었음을 기자들에게 알리고 있다.
5일 오후 서울 공평동 안철수 캠프사무실에서 한형민 공보실장이 금일 브리핑이 취소되었음을 기자들에게 알리고 있다. ⓒ 조재현

기자실의 긴장감이 절정에 이른 것은 점심식사를 하고 돌아온 뒤였다. 오후 1시 13분께 대변인실 관계자가 오후 2시에 유민영 대변인이 브리핑을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기자들의 손은 다시 바빠지기 시작했다. 특히 기자들은 신속하게 핸드폰을 꺼내들고 소속 언론사의 사진·방송 기자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눈이 많이 내리고 있는 상황이어서 자칫 늦게 도착할 경우 유 대변인의 브리핑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기자들은 유 대변인의 브리핑 내용이 안 전 후보의 문 후보 지원 활동에 대한 내용일 것으로 추측했다. 당장 이날부터 안 전 후보가 문 후보 지원 활동에 나서게 될 경우, 지원 방식에 따라 14일 남은 대선 판도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기자들은 안 전 후보의 지원 방식 수위가 어떻게 될지를 두고 사전 취재를 벌이기 시작했다. 한 캠프 관계자는 "안 전 후보가 문 후보를 적극 돕기 위해 결심을 했다"며 "지원 방식은 다양하게 열려 있다"고 말했다.

20분 쯤 뒤 카메라를 든 사진·방송 기자들이 어깨에 쌓인 눈발을 털어내며 속속 기자실로 밀려들었다. 그러나 오후 1시 35분께 유 대변인의 브리핑은 돌연 연기됐다. 한형민 공보실장은 "연기된 이유는 알 수 없다"며 "그러나 브리핑은 오늘 중에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들은 "에이~"라며 잠시 허탈했지만, "오늘 중 하게 될 것"이라는 말에 대해 다시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그 기대감은 곧 허망함으로 점철됐다. 오후 3시께 한형민 실장이 "유 대변인의 브리핑이 완전히 취소가 됐다"고 밝혔다.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한 실장은 "모른다"는 말만 반복했다. 기자들이 "그럼, 오늘 지원 유세 일정도 없느냐"고 다급하게 묻자, 한 실장은 처음에 "없다"고 분명히 답했다가 나중에는 "아직 모르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한 실장에게 몰렸다가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온 기자들은 두 번째 멘붕에 빠졌다. 오전부터 팽팽했던 긴장감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문재인-안철수 회동 불발, 양측 합의한 것 아니다"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후보가 지난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공평빌딩 진심캠프에서 해단식을 마친 뒤 승용차를 타고 떠나며 손을 흔들고 있다.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후보가 지난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공평빌딩 진심캠프에서 해단식을 마친 뒤 승용차를 타고 떠나며 손을 흔들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반전이 남아 있었다. 오후 4시 30분께 유민영 대변인이 갑자기 기자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순식간에 수십명의 기자들이 유 대변인을 둘러쌌다. 유 대변인은 어쩔 수 없이 기자실 앞으로 나가서 브리핑을 시작했다. 그러나 유 대변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기자들의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유 대변인은 "문 후보에 대한 지원 방식과 시기는 현재까지 결정된 것이 없다"고 밝혔다. 안 전 후보가 적극적인 문 후보 지원에 나설 것이란 기자들의 기대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특히 유 대변인은 "오늘 보도 내용은 저희가 최종 확인한 게 아니"라며 "양측이 합의한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 후보와 안 전 후보의 만남 불발 기사와 전폭 지원 약속 기사 중 어느 보도를 말하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둘 다"라고 강조했다.

애초 이날 오후 2시에 하려고 했던 브리핑 내용도 문 후보에 대한 지원 활동 내용이 아니라 언론 보도에 대한 해명을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안 전 후보 쪽 인사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날 안 전 후보가 문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란 언론의 예측성 기사와 한 방송사가 보도한 문 후보의 안 전 후보 방문 불발 기사가 안 전 후보의 지지 결정 보류의 원인이었다고 한다. 안 전 후보가 이를 문 후보 쪽의 언론플레이로 판단하고 지원 결정을 보류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안 전 후보가 문 후보에 대한 지원 약속을 완전히 거둬들인 것은 아니다. 유 대변인은 '수일 내에 지원 방식에 대한 입장을 밝히겠다는 것은 변함이 없느냐'는 질문에 "변함이 없다"고 답했다. 안 전 후보의 한 핵심 측근도 이날 기자와 만나 "안 전 후보가 (지원 방식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고, 이제 결정할 시점"이라며 "오늘, 내일쯤에는 결정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결국 안 전 후보의 문 후보에 대한 지원 내용은 6일 쯤 그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하루 종일 긴장감과 반전이 반복됐던 기자실은 오후 8시께 기자들이 한두 명씩 빠져나가면서 잠잠해졌다.


#안철수#문재인#후보단일화#2012 대선#지원 유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