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만개 창업. 58만개 휴폐업. 자영업자들이 참 살아가기 힘든, 아니 살아남기 힘든 한 해였다. 그래서 그런지 내 사업장이 있는, 형형색색 화려한 색의 의류와 젊음과 힘이 넘치는
아웃도어 거리가 된서리를 맞은 것처럼 풀이 죽어 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앞두고 매장 앞에 크리스마스 트리 하나가 없는 어두운 거리다. 어쩌면 이것이 대한민국의 힘겨운 현 주소일 게다.
지난 12월 1일. 나에게도 올해는 참 가파른 시간의 연속이었지만 매장 앞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었다. 봄부터 매일 물을 주며 정성껏 키워 온 율마(꽃말: 성실함 침착함) 열네 그루와 매장 앞 화단에 심어져 있는 나무에 LED조명을 설치했다. 조명비용은 20만 원, 설치 시간은 5시간 정도 걸렸다.
겨울 찬바람이 쌩쌩 불었지만 트리를 만든 동안 내내 내 마음은 참 편하고 행복했다. 트리를 만들면서 올 한 해를 되돌아보기도 하고 트리에 마지막 한 달 남은 12월과 새해에 소망도 매달았다. 숨이 턱까지 차는 일도 있었지만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내일부터 다가올 일들에 대해 나의 바람을 얘기한 것이다.
내 소망은 새해도 우리 가족을 비롯하여 매장을 찾아주신 고객 분들이 늘 건강하시고, 올해 졸업반인 딸 취업과 내년에 공무원 시험을 치르는 아들의 합격이다. 그런데 크리스마스트리에 불을 밝힌 지 12일 만에 내 소망 하나가 이루어졌다.
"아빠, 감사합니다. 저 합격했어요. 회사에서 방금 전화 왔어요.""딸, 축하 축하한다. 정말 고생했다." 딸 목소리에 물기가 촉촉이 젖어있다. 나도 눈물이 찔끔 난다. 딸이 지난해에 실습 나갔던 외국해운회사에 합격한 것이다. 가슴 먹먹한 소식이다.
딸은 엄마의 사랑과 관심이 가장 필요한 고3을 엄마 없이 잘 견뎌냈다. 그리고 해양대학교 등록 마지막 날 합격통지를 받았다. 시쳇말로 문 닫고 들어간 꼴찌 합격생이다. 그런데 세 학기 장학금을 타고 취업까지 했으니 팔불출이지만 내 딸이 자랑스럽고 대견스러워 눈물 나게 감사하다. 바로 옆에 있었으면 "딸, 고생했다"며 꼭 껴안아 주고 싶었다.
난 가끔씩 세상은 불공평한 것처럼 느끼다가도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고통이 쓰나미처럼 밀려오지만 조금 지나면 상처는 남아있어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바다는 잔잔해지니까 말이다. 내 마음에 소망을 담아서 따뜻한 불을 밝혔는데 그 소망에 딸이 제일 먼저 답을 해줬다. 오늘따라 매장 앞 크리스마스트리의 아름다운 불빛이 거리를 더욱 환하게 밝히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월간잡지 첨단정보라인 1월호에도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