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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2012년 11월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2012 후보 단일화 토론회'에 참석해 인사나누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2012년 11월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2012 후보 단일화 토론회'에 참석해 인사나누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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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안철수 단일화 협상이 벼랑끝 대치를 이어가던 지난해 11월 22일, 두 사람은 마지막 단독회동을 했다. 결과는 알려진 대로다. 서로 입장 차만 확인했을 뿐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회동이 끝난 후 양측 대변인들은 동시에 '한걸음도 좁히지 못했다'는 브리핑을 각 캠프 기자실에서 했다.

이날 회동이 소득이 없었던 것은 두 사람이 단일화 방식에 대한 이견 조율보다는 상대의 양보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주 앉은 두 사람은 단일화 방식에 대한 합의가 불가능해 보이자, 막판 상대의 양보 가능성을 탐색했다.

이날 '후보 간 협상·안철수 사퇴·문재인 양보'라는 세 가지 시나리오에 대해 보고를 받고 회동 장소에 나간 안 후보는 자신의 본선 경쟁력을 언급하면서 상대의 양보 의사를 타진했다. 하지만 문 후보는 '나도 단일화 되면 박근혜 후보를 이길 수 있다'며 거부했다. 그것으로 회동은 끝났다. 결국 다음날 안 후보가 후보직을 사퇴하면서 단일화는 미완으로 남았다.

문-안 양측 깊었던 불신의 골, 아름다운 결말은 없었다

되돌아보면 두 후보 간 단일화가 '아름다운 결말'을 맺기에는 양측 불신의 골이 너무나 깊었다. 문재인 후보 측은 단일후보만 되면 민주당이 정권교체를 할 수 있다는 '단일화 만능주의'에 빠져 있었고 안철수 후보 측은 민주당이 자신을 대선의 불쏘시개로만 쓰려고 한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문재인 캠프에 참여했던 핵심 인사는 "민주당은 문 후보가 단일후보만 되면 본선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낙관론을 가지고 있었고, 만약 서울시장도 후보를 못낸 민주당이 대선 후보조차 내지 못하면 당이 뭐가 되겠느냐는 우려가 컸다"며 "민주당으로서는 쉽게 후보를 양보하거나 (안 후보측이 요구한) 가상대결 방식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정권교체 보다는 민주당의 안위에 대한 걱정이 더 우선순위였던 셈이다. 안 후보 측 인사는 이를 두고 "민주당 주류의 패권주의"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문 후보가 언급했던 민주당 맏형론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평상시 대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 후보 스타일상 진심이 담겨 있는 말이었다"며 "마지막 회동에서 어쩌면 문 후보가 안 후보 측 요구를 받는 결단을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안하더라, 물론 가상대결 방식에 문제가 있긴 했지만, 그걸 절대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당 주류의) 요구를 뿌리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안철수 전 후보도 이같은 민주당의 태도에 깊은 실망감을 가졌던 것 같다. 안 전 후보의 한 측근은 "단일화 토론회에 나갈 때 참모들은 민주당 친노의 패권적 행태를 지적하는 자료 등 문 후보를 공격할 자료들을 많이 준비해줬지만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 후보로부터는 대북정책에 있어서는 '이명박 같다'는 공격을 받았다"며 "다음날 문 후보와 회동에서도 민주당의 강고한 기득권과 구태만 확인하고 실망했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단일화'는 형용모순... 단일화의 딜레마

안철수 전 대선후보가 2012년 11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선거캠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정권교체를 위해서 백의종군을 선언한다"고 대선후보직 사퇴의사를 밝히고 있다.
 안철수 전 대선후보가 2012년 11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선거캠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정권교체를 위해서 백의종군을 선언한다"고 대선후보직 사퇴의사를 밝히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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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가 약속했던 아름다운 단일화는 지킬 수 없는 약속에 더 가까웠다. 2010년 지방선거 때부터 본격화된 수차례의 단일화 협상 경험에서 야권이 배운 게 하나 있다면 '아름다운'이라는 말은 '단일화' 앞에 어울리는 수식어가 아니라는 점이다. 아름다운 단일화는 '뜨거운 얼음' 만큼이나 형용모순이라는 게 그동안 얻은 교훈이었다.

2010년 지방선거부터 야권의 승리 공식으로 자리잡은 후보 단일화는 그 과정에서 방식을 둘러싸고 정치 주체 간 거친 파열음을 냈다. 우여곡절 끝에 단일화를 이루긴 했어도 각자 유리한 규칙을 관철시키기 위한 벼랑 끝 전술이 난무했다. 이번 대선의 단일화 과정처럼 단일화에 대한  피로감도 쌓여갔다.

새누리당이라는 보수 정당과 기울어진 경기장에서 경쟁해야 할 야권으로서는 단일화가 선거 승리를 위한 최소 요건이긴 했지만 정체성이 다른 정당 간 정책 연대를 위한 협상도 순탄치 않았다. 잡음이 없었던 단일화는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50%의 지지를 받던 안철수 전 후보가 5% 지지율을 기록 중이던 박원순 후보에게 양보한 사례가 유일하다. 물론 협상 없이 개인의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지난 7일 대선평가토론회에서 "아름다운 단일화를 강조한다 하더라도 정치 본래의 속성, 자기 세력의 가치 및 이익 구현을 고려할 때 '1+1=2'가 되기 어렵다, 또 누가 연합을 주도하느냐에 따라 좌편향 내지 우편향 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단일화 방법에 집중함으로써 비전·정책이라는 내용을 결과적으로 소홀하게 되는 딜레마에도 직면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의 지적대로 이번 대선에서 단일화의 역설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했다. 안철수 전 후보가 내세운 '새 정치' 이슈에 다른 사회경제적 정책 이슈에 대한 주도권을 상실했다. 야권으로서는 새 정치가 결국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 등 민생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를 제대로 복원하는 길이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한 탓이다.

문재인 캠프에 참여했던 한 외부인사는 "안철수의 새 정치 화두는 결과적으로 새누리당 보다는 민주당을 겨냥한 셈이 됐다"며 "단일화 성사를 위해 새 정치 이슈를 처리하는 데 급급하다가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이슈를 전면화하는 데 힘을 기울일 수 없는 역설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야권이 결선 투표 등 제도적 해결책 모색해야"

단일화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선거제도 개편 등 제도적 변화가 없는 매 선거마다 후보 단일화는 야권이 본선 승리를 위해 통과해야 할 일차 관문이 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소모적인 단일화 경쟁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야권이 결선 투표 등 제도적 개선책 마련에 힘을 모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선 투표제도가 있었더라면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 측이 주도하는 인위적인 단일화에 힘을 빼는 게 아니라, 2위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을 통해 국민의 선택에 의한 단일화가 가능했다.

김호기 교수는 "미국식 빅텐트 정당을 구축하거나 프랑스식 결선투표제를 제도화하지 않는 한 야권이 후보단일화를 다시 시도할 경우 단일화의 딜레마는 그대로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문재인 캠프에 참여했던 한 핵심인사는 "당장 4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에서 또 지금과 같은 방식의 단일화를 한들 무슨 감동이 있겠느냐"며 "당장 성과는 나오기 힘들겠지만 야권이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결선 투표 등 제도적 개선책 마련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그:#대선평가, #단일화, #문재인, #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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