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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날 딸이 새벽부터 일어나 만든 케잌과 아내가 만들어준 미역국
▲ 케잌과 미역국 생일날 딸이 새벽부터 일어나 만든 케잌과 아내가 만들어준 미역국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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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정월 초하루. 그날이 바로 저의 '귀 빠지 날'입니다. 남들이 '생일' '태어난 날'이라 부르는 그날입니다. 강원도 평창군 평창면 대상리가 제 본적입니다. 10여 년 전 큰집 형님들 따라 벌초하러 그곳에 가보니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냥 산속이었습니다. 형님들은 집터가 생각나는지 산속 여러 곳을 가리키며 우리가 살던 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집의 흔적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아무 흔적도 없었습니다. 그 산속에서도 좀 더 산속으로 올라가니 무덤인지 아닌지 모를 정도로 밋밋한 곳에 무덤이 하나 있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무덤에 벌초를 하고 온 기억이 납니다. 길조차 사라진 그 산속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나 결혼식을 하고 살다가 1년 후 제가 태어났다고 합니다.

"니는 그래도 생일마다 먹을 건 많았다."

어머니가 늘 그렇게 말해서 제 생일날이 좋은 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커가면서 저는 제 생일날 별로 기억나는 게 없습니다. 다른 지역에 살다가 큰 집이 울산으로 이사 온 후부터 명절이면 우리 가족은 큰집으로 갔습니다. 제사를 큰 집에서 지냈기 때문이었습니다. 1년에 한 번 있는 제 생일상은 늘 그 제사상으로 대신했습니다. 엄마가 차려준 미역국과 팥밥을 먹고 싶었지만 그렇게 한 기억이 별로 없었습니다.

생일상 한 번 제대로 차려 먹지 못하고 다 보낸 어린 시절. 나이 들고 결혼해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결혼 초기에는 아직 우리 부모님이 계셔서 큰 집으로 제사를 지내러 갔습니다. 제가 맏아들이기 때문에 제사 지내는 법을 잘 알아야 한다면서 큰 집 형님들은 차례상 차리는 방식과 제사 지내는 방법을 알려줬습니다. 같이 제사를 지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 큰집과 발길이 끊기고 말았습니다. 다들 먹고 사는 문제로 다른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저는 다른 분과 재혼한 어머니가 절에다 아버님을 모신 후 제사를 지내지 않고 있습니다.

"아빠, 일어나 아빠! 생일날이잖아."

2013년 2월 10일 다시 설날 아침이 됐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올라가는 딸이 자고 있던 저를 깨웁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작은 거실로 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내가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한 거야. 이제 촛불 꺼야지."

딸은 몇 주 전부터 저의 생일 준비를 했나 봅니다. 딸은 자기가 만든 케이크라며 두 가지를 만들어 내놨습니다. 하나는 생 바나나를 갈아 넣은 밀가루 빵이었고, 하나는 초콜릿 가루를 넣은 빵이었습니다. 맛을 보니 그냥 밀가루에 달걀 두 개 정도 넣고 만든 밀가루 빵이었습니다. 제가 50살 생일이라고 딸은 작은 초 5개를 준비해 켜뒀습니다. 저는 촛불을 입바람으로 껐습니다.

매년 허전했던 생일, 올해는 아니었습니다

용돈을 모아 아빠 생일이라고 사 준 선물.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 딸이 준 생일선물 용돈을 모아 아빠 생일이라고 사 준 선물.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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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아빠에게 주는 생일 선물."

딸은 케이크를 만들어놨고, 아내는 미역국과 밥을 만들어 퍼놨습니다. 그리고 딸은 제게 선물을 줬답니다. 딸이 준 선물은 자동 면도기와 양말이었습니다. 저는 일회용 면도기로 면도를 합니다. 자주 하는 건 아니고요, 가끔 합니다. 딸에게 자주 "아빠 면도 좀 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여름 어느 날, 일회용 면도기로 면도를 하다 잘못해 피가 났습니다. 저는 일회용 면도기를 아껴 쓰려고 날이 무뎌질 때까지 씁니다. 날이 무뎌지니 면도하는 날이면 자주 면도 부위에 상처를 입기도 했습니다. 그것을 딸이 본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 딸이 그때부터 '아빠 면도기를 사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나 봅니다.

딸이 사준 자동면도기로 면도를 해봤습니다. 잘 되더군요. 저는 딸에게 고맙다고 했습니다. 딸은 웃음으로 대신했습니다. 저는 그냥 무덤덤하게 보낼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생일잔치에 가슴 뭉클함이 마음속에 일었습니다. 가족이 고마웠습니다. 케이크와 선물을 준비한 딸, 생일날 생일밥을 먹어야 한다며 미역국과 찰밥을 차려준 아내. 모두 고마웠습니다. 저와 아내는 가끔 딸에게 용돈을 줍니다. 딸은 저의 생일 선물을 사려고 용돈을 모은 것 같습니다. 그 용돈을 모아 케이크 만들 재료도 사고 제 생일 선물도 산 것이었습니다.

태어난 지 50여 년 만에 처음 생일잔치다운 생일잔치를 경험한 것 같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초라하고 소박하지만, 저는 아마도 생이 끝날 때까지 잊혀지지 않을 그런 생일잔치가 될 것입니다. 정월 초하루만 되면 늘 마음 한구석에 허전함이 남았던 저의 '귀 빠진 날'. 이번만큼은 행복했습니다. 가족이란 게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살다보니 이런 기분 좋은 날도 있으니 말입니다.


태그:#생일상, #기빠진날, #생일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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