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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5일 오후 4시 30분]

 1966년생 동갑내기 부부 안찬기, 황명숙씨 부부가 '가화만사성'이라 쓰인 작품을 들어 보이며 웃고 있다.
 1966년생 동갑내기 부부 안찬기, 황명숙씨 부부가 '가화만사성'이라 쓰인 작품을 들어 보이며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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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생 동갑내기 부부 안찬기·황명숙씨 부부가 사는 충북 음성군 감곡면. 인구는 1만1000여 명에 불과하지만, 복숭아 재배로 한 해 400억 원의 고수익을 올리는 지역이다.

이 부부가 귀농한 건 지금부터 15년 전인 1998년. 귀농을 결심하게 된 동기는 팍팍한 도시생활과 불투명한 미래·생활고 때문이기도 했지만, 결정적 원인은 남편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고.

서울에서 회사에 다니던 안찬기씨는 20대 초반, 목공예 작품전시회를 처음 접하고 나무 조각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머릿속은 온통 작품 생각에 다른 일은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였다.

안씨는 1988년 목공예를 배우기로 결심하고 직장을 다니면서도 작가들을 찾아다니며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던 중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상의 끝에 귀농을 감행했다. 부부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잘한 결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 "조금만 늦었어도 아이들이나 생활 때문에 귀농을 못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힘든 기억 없다 vs. 생활고 때문에 식당 차렸었다

 집 현관 오른쪽에 '미당농원'이란 글귀가 쓰인 목간판이 장승처럼 버티고 섯다. 안찬기 씨 작품이다.
 집 현관 오른쪽에 '미당농원'이란 글귀가 쓰인 목간판이 장승처럼 버티고 섯다. 안찬기 씨 작품이다.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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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안씨 부부를 만난 곳은 1차선 도로와 맞닿아 있는 조립식 주택이다. 집 왼편에는 복숭아를 수확해 선별하고 포장하는 작업장이 자리 잡았고, 집과 작업장 너머에는 이들 삶의 터전인 복숭아 과수원이 펼쳐져 있다. 현관 오른편에는 '미당농원'이란 글귀가 쓰인, 9척은 족히 넘어 보이는 목 간판이 장승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시골 농부답지 않게 보라색 바탕에 쥐색 띠가 들어간 털모자를 눌러쓴 안씨가 수줍은 눈인사와 나직한 목소리로 반갑게 맞았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연료가 나무인 화목보일러가 있었고, 주변에는 작은 테이블과 간이 의자 몇 개가 놓여 있다.

이 부부가 농촌에 내려오고 3년 동안 수입이 없었다. 복숭아는 식재 후 3년이 지나야 겨우 열매가 달리고 6~7년이 지나야 본격적인 수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목공예를 위해 내려왔지만, 재료를 구하기조차 어려웠다. 결국, 남의 집 일을 다니며 생계를 유지했고 거기서 농사일도 배웠다.

'귀농하고 힘들었던 점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부부는 큰 이견을 보였다. 남편 안씨의 말이다.

"그 당시 대학을 갈까도 생각했는데 나무를 선택하고 귀농을 했어요. 요즘 강의 요청이 있어 출강하거나 공모전에 출품할 때 아쉬운 점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대학 졸업장이 없다는 것인데 세월이 좀 더 흐르면 학벌보다 실력을 중시하는 사회가 오겠죠. 귀농 후 경제적으로는 어려웠지만 정말 잘한 결정이었고, 지금 다시 그 시간이 와도 귀농을 선택할 겁니다. 지금까지 힘든 기억은 한 번도 없어요. 바깥세상과 큰 교류 없이 일정 공간에 갇혀 자신과 싸움을 하고 있지만, 꿈을 이루고자 열심히 농사짓고 나무를 만지는 순간순간이 정말 행복합니다."

남편의 말에 아내 황씨는 발끈했다.

"행복이요? 생활고 때문에 8년 전에는 식당을 운영했었어요. 2년 정도 식당을 했는데 무거운 그릇이며 식 재료를 나르면서 허리 디스크가 생겨 결국 식당을 접었어요. 남편을 보면서 진작 식당을 접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무 조각할 손으로 설거지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어요. 그땐 작품 활동은 꿈도 못 꿨거든요."

이 부부는 귀농하고 생활고 때문에 겪어야 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선한 얼굴에 짙은 그늘이 드리우며 쓰린 과거를 들춰냈다.

"산수화라는 작품이 있었어요. 지금은 작품을 보관할 공간이 있지만, 예전엔 마땅한 장소가 없어 시골집 한쪽에 세워 뒀다가 분실했어요. 진짜 아끼던 작품이었거든요. 그리고 촛대가 있었어요. 그 작품도 시간과 정성을 많이 쏟은 작품이었습니다. 시골에 막 내려와서 돈도 없고 생활에 쪼들리다 보니 촛대를 포함해 그동안 만든 작품 다섯 점을 지인에게 팔아달라고 줬어요. 그런데 한꺼번에 분실한 거예요. 상심이 너무 커서 3년 동안 조각도를 만지지도 않았어요."

조각도 잡은 지 20년 만에...

 목공예 예술가 안찬기 씨가 전통문양을 새긴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목공예 예술가 안찬기 씨가 전통문양을 새긴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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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복숭아 농사에만 전념했다. 안씨는 농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무렵인 2008년 조각도를 잡은 지 20년 만에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했다.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보고 싶어서였다.

"2008년 대한민국 서각대전에서 특선을 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아내를 만난 것 빼고는 이보다 기쁜 일이 없었어요. 20년간 한우물만 팠더니 이런 일도 생기더라고요. 상 받고 나서 전국 단위 행사에 불려다니면서 사람들 앞에서 시연회도 했습니다. 사람들한테 인정받고, 박수도 받고 기분 좋더라고요."

안씨는 이후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공모전에서 출품해 이름을 알렸다. ▲ 2009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선·한양공예 예술대전 우수상 ▲ 2010년 대한민국남북통일세계예술대전 대상 ▲ 2011년 대한민국남북통일세계예술대전 우수상·국제각자 공모전 준대상·한양공예 예술대전 장려상 등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인사동 예술의 전당에서 그룹과 초대 전시회를 열었다.

안씨의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신문·방송 등 언론의 취재 요청이 쇄도했지만, 자신을 드러내길 꺼리는 성격과 준비가 안 됐다는 이유로 모두 거절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역에서는 안씨가 '국선작가'라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아 웃지 못할 일화도 생겼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저도 나름 국선작가인데 친구가 오더니 '집에서 쓸 냄비 받침대를 만들어 달라'는 거에요(웃음). 기가 막혔지만 2시간 동안 정성을 다해 만들어 줬어요. 그랬더니 친구가 굉장히 미안해하며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작품을 하나 만드는데 작은 것은 하루, 대작은 3~4개월이 걸려요. 농사지을 때는 작품 활동을 전혀 하지 못하다가 농한기 때 주로 작품에 매달리는데 그러다 보니 지난해에는 두 작품밖에 못 했어요. 지인들이 오시면 달라고 하시고 거절할 수 없어서 줬어요. 하지만, 지금은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어서 양해를 구하고 주지 않습니다."

나무가 재료인 예술은 쇠나 돌·흙처럼 바로 가공할 수 없다. 나무를 구매하고 변형을 막기 위해 3년 동안 자연에서 건조하고 나서 원하는 크기로 잘라 2년을 더 실내에서 더 건조 시킨 후에야 작업이 가능하다. 작품 하나를 완성하려면 최소 5년은 기다려야 한다. 그만큼 정성과 시간이 많이 투자된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전통문양 나무 갤러리 만드는 게 꿈

 안찬기 씨가 조각한 전통문양 작품
 안찬기 씨가 조각한 전통문양 작품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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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씨는 자신의 농원을 예술과 농업을 함께 체험하는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다. 미국 LA에서 소문을 듣고 올 정도로 배우려는 사람들은 많지만 바쁜 농사일에 시간 내기가 녹록지 않다. 나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농사를 열심히 짓는단다.

"저는 차 번호 같은 건 잘 외우지 못해요. 그런데 사물의 형상 같은 건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머릿속에 있는 잔상을 그대로 나무에 옮겨 멋진 작품 하나를 완성했을 때 큰 희열을 느낍니다. 저 같은 기분을 경험하기 위해 선지는 모르지만 배우려고 오시는 분들은 많이 있어요. 하지만, 제대로 시간을 내드리지 못해 늘 죄송하죠. 열심히 살면 나무만 만지면서 살날 이오겠죠."

농사와 작품 활동의 매력에 대해 묻자 안씨는 "복숭아 농사 정성껏 지어서 평소 고마운 분들에게 보내드리면 정말 좋아하신다"라며 "한 번은 결혼을 하고 몇 년 동안 아이를 못 가진 분들이 우리 복숭아를 드시고 임신해 출산했다는 말을 듣고 내가 더 기뻤다"고 말했다. 이어 "농사나 작품 활동 모두가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큰 매력"이라고 덧붙였다. 안씨는 우리나라 전통문양 나무 갤러리를 만드는 게 꿈이다.

"농사를 열심히 지어서 경제적 문제가 해결되면 역사학자들의 고증을 거쳐 예로부터 내려온 우리 민족의 전통문양을 나무에 새겨 전시하는 갤러리를 만드는 것이 꿈입니다. 지금도 틈틈이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1000여 점 만들어서 전시하면 역사박물관이나 학생들의 학습 공간으로 쓰일 수 있겠죠."

경칩이 코앞이다. 복숭아나무에 새순이 돋으면 조각도가 들려 있던 안씨의 손에는 농기구가 들릴 것이다. 굳은살이 박인 거칠고 투박한 안씨의 손, 오랜만에 아름다운 손을 만났다.

 안찬기 씨 목공예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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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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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찬기 씨 목공예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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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찬기#목공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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