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수정 : 17일 오후 10시 50분]
"그는 통일관보다 안보관이 세다." 오랜 세월 시민단체에서 활동해온 한 시민운동가의 말이다. 그는 류길재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가 박근혜정부의 첫번째 통일부 장관에 내정됐다는 발표에 이같이 말했다. 통일부 장관이 통일관보다 안보관이 세면 통일정책은 안보정책으로 가는 것일까?
17일 인수위원회는 류길재(54)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를 박근혜 정부의 첫 통일부 장관으로 내정했다. 북한의 로켓발사와 핵실험 등으로 한반도 주변의 긴장감이 높아지는 가운데 새 정부의 대북정책을 이끌어갈 인사로 주목받고 있다. 그는 위기의 남북관계를 극복할 어떤 처방전을 갖고 있을까.
류 내정자는 2010년 설립된 박 당선인의 싱크탱크 국가미래연구원 외교안보분야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대선 때는 박 당선인의 캠프 국민행복추진위원회의 외교통일추진단 추진위원을 맡은 대북 전문가다.
지난달 13일 갑작스럽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직을 사퇴한 최대석 이화여대 교수와 함께 박 당선인의 대북 정책 핵심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마련하는 데 관여한 인사 가운데 하나다. 학계에서도 합리적 보수주의자로 남북대화와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비둘기파' 학자로 평가받는다.
류 내정자는 이날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후 김형석 통일부 대변인을 통해 "한반도 상황이 워낙 엄중하고 이에 대해 많은 국민이 걱정하고 계신 것을 잘 알고 있다. 남북관계 주무부처 장관으로 내정된 데 대해 막중한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안보를 튼튼히 하면서 당선인이 제시하신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지향하는 바에 따라 한반도에 신뢰가 쌓여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류재길 내정자 "막중한 책임... 한반도에 신뢰 쌓여나가도록 노력"유 내정자는 지난달 28일 '차기정부의 대북정책 평가 세미나'에서도 통일 전 단계를 '분단의 평화적 관리', '신뢰 형성단계', '북한 비핵화 및 개혁·개방' 등 3단계로 나누고 "현실적으로 2단계까지가 적절한 기대치"라고 밝혔다. 또 제3차 핵실험 이후에도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설득해야 하며 제재를 하더라도 북한과의 대화와 교류 협력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비핵화를 목표로 하기보다는 남북관계 개선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미다.
유 내정자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새로 신설된 청와대 '국가안보실'과의 충돌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안보실은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 자문기관인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역할을 대신하는 외교안보라인의 핵심이다. 최근 국가안보실장에 임명된 김장수 전 국방장관은 군 장성 출신으로 유 내정자와 달리 대북정책에서도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인물이다.
김근식 경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류 내정자에 대해 "평소 입장은 북한과 대화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중도보수 학자"지만, "북한의 핵실험으로 안보 이데올로기가 강하게 제기된 상황에서, 대통령을 대화와 협력으로 잘 설득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는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류길재 내정자는 박근혜 당선인의 의중을 잘 따를 수 있는 인사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박근혜 정부의 통일, 외교, 안보 정책은 국가안보실에서 컨트롤 할 것으로 보이는데 통일부 장관이 얼마나 자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책적 평가는 개인의 성향 차원이 아니라 조직적인 차원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류 내정자는 박 당선인과 '박정희 인맥'으로도 묶인다. 류 내정자의 아버지 고 류형진 박사는 5·16쿠데타 이후 제3공화국 수립 전까지 국가 최고 기관의 역할을 했던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의장고문을 맡아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을 입은 인물이다. 교육학자였던 류 박사는 '국민교육헌장'의 초안을 작성하기도 했다. 이후 '국민교육헌장'은 반공사상 주입과 집단주의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았고, 지난 1994년 사실상 폐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