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에 대해 시민들의 불안감과 함께 궁금증이 커지고 있습니다. 정치권과 정부의 잘못된 연금정책이 혼란과 불신을 키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연금전문가인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김연명 교수의 글을 통해 공적연금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와 함께 올바른 대안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10여 차례에 걸쳐 연금에 대한 글을 실을 예정입니다. 연금과 관련된 다른 입장의 글이나 독자 여러분들의 질문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국민연금이 '다단계 피라미드 사기'라고 주장하는 '수상한' 사회단체가 있다. 워낙 국민연금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어서 그런지 이 단체의 주장에 솔깃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국민연금이 '다단계 금융 피라미드'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파산할 것이며 그 부담은 미래의 특정세대가 뒤집어 쓸 것이라는 내용이다.

국민연금을 '다단계 금융피라미드'로 보는 것은 국민연금을 내가 낸 돈으로 내가 찾아가는 개인연금이나 개인저축으로 이해하는 것보다는 좀 더 국민연금의 본질을 잘 이해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정답은 아니며 국민연금을 악의적으로 비방하는 매우 잘못된 비유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국민연금은 다단계 금융 피라미드와 같은 원리로 설계되어 있지만 두 제도간에는 본질적 차이가 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국민연금은 '다단계 사기'가 아니라 '다단계 연대' 제도이다.

다단계 피라미드와 국민연금의 차이

다단계 피라미드는 한국에서 사용되는 말이고 일반적으로는 다단계 피라미드식 사업을 '폰지 게임'이라고 한다. 그 유래는 찰스 폰지 (1882-1949)라는 미국 사업가에서 유래되었다. 폰지는 이탈리아에서 무일푼으로 미국에 이민했다. 폰지는 머리가 좋았던 모양이다. 그는 사업에 투자하면 45일 내에 50%의 투자수익금을, 90일내에 100%의 수익금을 준다고 하여 엄청난 돈을 모아 일약 유명인이 되었다.

하지만 폰지의 수익금 지급방식은 나중에 투자한 사람의 돈을 먼저 투자한 사람에게 지급하는 돌려막기 수법이었고, 결국 폰지는 파산하고 감옥에 갔다. 그 이후에도 폰지는 유사한 사업을 벌여 또 구속되었고 말년에는 눈까지 멀어 브라질에서 비참하게 살다 죽었다고 한다. 이것이 '폰지 게임'이라고 알려진 다단계 금융피라미드의 유래다.

폰지 게임은 별도의 수익사업 없이 신규투자자에게 돈을 걷어 기존 투자자에게 배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규투자자가 모집되지 않으면 바로 망하게 된다. 국민연금은 다단계 금융피라미드와 원리가 비슷하다. 왜냐하면 젊은 세대가 보험료와 세금으로 노인세대를 집단적으로 부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 다단계에서는 먼저 투자한 사람과 중간에 투자한 사람 그리고 나중에 투자한 사람들이 다단계를 이루지만 국민연금에서는 할아버지세대, 부모세대, 그리고 자식세대가 다단계를 이룬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세대간 다단계는 '사기'는 아니다. 국민연금이 다단계 금융사기가 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는 전쟁이나 전염병 등으로 젊은이들이 모두 죽거나 혹은 전 국민이 모두 아이를 낳지 않아 보험료와 세금을 납부할 젊은세대가 완전히 사라지게 되면 국민연금은 다단계 사기가 된다. 즉, 한반도에서 젊은이들이 다 사라지고 노인들만 남으면 그 노인들은 보험료만 내고 연금을 못 받으니 사기를 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두 번째는 우리의 자식들이 노인부양을 위한 보험료와 세금의 납부를 거부해 버리는 경우다. 그러나 어느 나라 역사를 보아도 경제활동인구가 보험료와 세금 납부를 집단적으로 거부한 사례는 없다. 이것도 역시 가능성 제로에 가깝다. 따라서 국민연금은 다단계이지만 다단계 사기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는 셈이다.

다단계 부양 원리를 갖고 있는 국민연금에서 논쟁이 될 소지는 다른 두 가지이다. 하나는 초기 가입자들이 혜택을 보고 나중에 가입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손해를 볼 수 있는 불공평한 구조의 문제다. 국민연금도 이 구조를 갖고 있다. 1988년 시작된 국민연금은 초기 가입자들이 낸 돈 보다 훨씬 많은 돈을 가져가고 나중에 가입한 사람일수록 적게 가져간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손해를 보게돼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퍼져 있다.

물론 현재의 젊은세대도 낸 보험료보다는 더 많은 연금을 타가기 때문에 '절대액'에서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다. 할아버지, 부모, 그리고 손자세대간에 부담과 혜택의 차이가 나는 이 구조를 일부에서는 불공평하다고 비판하지만 나는 세대간 공평성을 확보하는 정당한 구조라고 본다. 왜 그런지는 향후 글에서 자세히 설명하기로 하고 이 문제는 일단 넘어가도록 하자.

노인세대 때문에 국민연금 거덜난다?  

 노년유니온 등 복지.노인단체 회원들이 7일 오후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기초연금, 4대 중증질환 공약 등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복지공약 성실 이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노년유니온 등 복지.노인단체 회원들이 7일 오후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기초연금, 4대 중증질환 공약 등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복지공약 성실 이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다른 논쟁의 소지는 노인들은 점점 많아지는데 젊은 인구가 줄어들어 후세대가 세금 납부를 집단적으로 거부하지는 않지만 부담할 능력이 없어 조금만 부담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현재의 20-40대 젊은이들이 노인이 되었을 때 연금을 적게 받는 경우이다. 여기서 연금개혁에 대한 결정적인 입장 차이가 나타난다. 2060년 경에 국민연금기금이 고갈되면 미래에 경제활동을 하게 될 후세대들이 보험료와 세금을 걷어 노인들에게 연금을 주게되는데 이들의 부담이 감당이 불가능할 정도로 크냐는 것이다.

대부분의 언론과 학자들은 기금 고갈시 후세대의 부담이 너무 커서 재정적으로 감당이 불가능하니 후세대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후세대 부담을 줄이는 방법은 우리의 연금을 줄이거나 우리가 보험료를 더 내는 수밖에 없다. 즉, 지금보다 연금을 더 깎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후세대가 감당 못할 정도의 부담을 하게 된다는 후세대 부담의 과중함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객관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는 후세대 부담 총량이 적다고 본다. 

지금처럼 노인인구가 급증하고 출산율이 낮아지면  2050년에 우리나라 노인들은 전체 인구의 40%가 된다. 그런데 인구의 40%를 차지하는 노인들에게 2050년에 지급해야 할 국민연금 총량은 GDP 대비 5.5%로 추정하고 있다. 기초노령연금을 20만원으로 인상하고 삼성 이건희 회장을 포함한 부자들까지 모두 포함하여 전체 노인인구에게 기초노령연금을 준다해도 GDP대비 4.3%로 추정된다. 즉,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 지출액을 합해서 GDP의 10%가 안 된다. 이 정도면 후세대가 감당이 불가능할까? 이게 잘 감이 안 잡힌다면 다른 나라 사례를 좀 살펴보자.

유럽국가들은 2010년에 노인인구가 평균 15%일 때 연금으로 GDP의 11%를 지출했지만 나라가 망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오히려 굴곡은 있지만 인류가 지금까지 구축한 사회체제 중 가장 안정된 사회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유럽연합 보고서에 의하면 2050년 유럽국가들의 노인인구는 평균 25% 정도가 되는데 이때 지출되는 연금총액은 GDP의 약 13%가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재정 규모는 경제성장률과 생산성 증가를 감안할 때 부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유럽학자들의 주된 의견이다.

따라서 한국의 노인인구가 40%가 되는 2050년에 연금총액으로 GDP의 9.8%를 지출하면 후세대 부담이 과중하고 재정이 거덜난다는 주장은 매우 과장된 것이다. 앞으로 37년 뒤인 2050년에 가서야 우리나라는 노인인구 40%에게 유럽국가들이 2000년대 초반에 노인인구가 15% 일 때 지출한 수준의 연금을 쓰게 되는 것이다. 즉, 앞으로 약 40년 뒤에 우리 사회가 GDP의 10%를 연금으로 지출한다는 것은 우리 손자들에게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연금기금이 2060년에 고갈되면 연금을 못받게 되어 국민연금이 다단계 사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다른 글에서 필자가 썼듯이 기금이 고갈되어 연금을 못받을 것이라는 걱정은 하늘이 무너질까봐 동굴에서 살겠다고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생각이다.

(관련기사 : 기초노령연금 인상 논란? 악마는 다른 곳에 있다)

대부분의 복지국가는 적립금이 없지만 노인들에게 품위 있는 수준의 연금을 주고 있다. 가령 독일은 연금적립금이 하나 없이 노인에게 다 연금을 주고 있다. 2000년대 후반 독일 노인인구가 20.1%로 세계 3위였을 때 독일은 GDP의 11%되는 돈을 연금으로 지출했다. 이중 약 7.5%는 국민연금 보험료로 나머지 3.5%는 세금으로 충당하였다. 그래도 독일의 노인빈곤율은 10% 정도로 우리나라의 45%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다. 우리나라도 기금이 고갈되는 2060년을 전후하여 우리들의 손자세대들이 보험료와 조세로 우리들의 연금을 주면 된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그 부담이 크지 않고 충분히 감당할만한 수준이다.

관료와 국민들이 국민연금에 대해 진짜 걱정해야 할 일은 후세대 부담이나 재정파탄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출산율을 높이고 경제의 생산성을 높여 부를 더 창출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후세대 인구가 줄어들어도 생산이 높아지면 노인을 충분히 부양할 수 있다. 이것은 서구의 복지국가 역사가 보여주는 교훈이다. 현재의 생각으로 100년 뒤를 예측하는 것은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일이다.

지금부터 100년 전인 1913년을 생각해보자. 당시는 농업인구가 전체 인구의 90%를 넘었다. 하지만 지금은 농업인구가 10%도 안 되지만 쌀이 부족하지는 않다. 1912년에 조선시대 관료는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농업인구가 10%로 줄어들면 쌀 생산량이 줄어 백성들은 다 굶어죽을 것이다(!). 그 당시로는 애국심을 가진 관료의 합리적 추론이었겠지만 지금 보면 얼마나 황당한 이야기인가? 국민연금기금 고갈 걱정 그만하고 어떻게 하면 나라를 더 부강하게 만들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국민들의 정신건강에도 좋고 국민연금에도 좋다.

선진국 젊은이들은 바보인가

 국민연금관리공단 홈페이지에 소개된 국민연금 관련 내용.
국민연금관리공단 홈페이지에 소개된 국민연금 관련 내용. ⓒ 국민연금관리공단

대중적인 글에서 학술논쟁을 소개하는 것이 마땅치 않아 간략히만 적는다. 한 사회단체에서 유명한 경제학자 맨큐를 인용하면서 하버드대 경영학 교수가 미국 국민연금제도를 다단계 사기로 규정했다는 언급을 하고 있다. 이것은 한쪽의 시각이다. 그 사람보다 더 명성있는 경제학자들은 국민연금이 다단계 피라미드의 속성이 있지만 이 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일반 금융피라미드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정리하면 국민연금은 다단계 금융피라미드의 원리를 갖고 있지만 이것을 '다단계 사기'로 규정하는 것은 허무맹랑한 선동이다. 국민연금이 젊은 세대에 대한 금융피라미드 사기라면 젊은 세대가 거의 20%에 가까운 보험료를 내 노인에게 연금을 주고 있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선진 복지국가들은 다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일까?

선진국의 젊은이들은 바보라서 앉아서 사기당하고 있단 말인가? 그들은 불만은 있을지언정 국민연금을 폐지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선진국에서 젊은이들의 공적연금 신뢰도는 매우 높다. 내가 지금 노인들을 부양하면 나의 자식들이 나를 부양할 것이라는 믿음과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복지국가는 지금까지 인류가 이룩한 사회체제 중에 세대간, 계층간, 남녀간에 상호부조(연대)와 신뢰가 가장 잘 구축된 사회이다. 이런 사회에서 국민연금같은 제도를 통해 젊은 세대가 노인을 집단적으로 봉양하는 것을 '세대간 연대'라고 하지 '세대간 사기'라고 하지 않는다.

농업사회에서 태어나 미처 노후준비를 못한 노인들에게 젊은 사람에게 세금을 걷어 연금을 주고 노인빈곤을 없애는 것은 세대간 연대를 강화하는 일이다. 이것이 세대와 지역, 계층으로 쪼개져 양극화되어 가는 한국 사회가 추구해야될 사회통합의 방향이다.

국민연금이 '금융피라미드 사기'라고 운운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선동이다. 국민연금은 산업사회에서 가족이 더 이상 노인을 부양하지 못한 상황에서 노인 부양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만든 '합리적인 다단계 피라미드'(a rational ponzi game)이다.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노인빈곤 문제를 해결한 유럽 복지국가의 역사는 국민연금같은 공적연금제도가 매우 합리적인 다단계 노인부양제도임을 증명하고 있다.

* 국민연금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더 빨리 알고 싶은 독자들은 <오마이TV> 팟캐스트 방송 '이슈털어주는 남자' 방송분 268회 '조삼모사 노령연금', 276회, '악덕 대기업 배불리는 내 국민연금'을 듣기 참고하기 바란다. 그리고 이 글에 말미에 첨부된 ppt 파일 '국민연금에 대한 11가지 오해와 3가지 진실'을 읽어보길 부탁드린다. 

첨언하자면 모 단체에서 뿌린 '신국민연금 8대비밀'이라는 문건의 내용은 필자가 오랜 시간에 걸쳐 정교화시킨 국민연금 이론체계를 상당부분 인용도 없이 선택적으로 도용하여 국민연금 폐지라는 엉뚱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참으로 얼굴이 두꺼운 사람들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국민연금
댓글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17,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입니다. 관심 분야는 복지국가, 공적연금, 동아시아복지 등입니다. 시민단체에서 오랜 동안 복지운동을 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국민연금바로세우기 국민행동'(약칭 연금행동) 정책위원장을 맡아 국민연금개혁운동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사회복지, 특히 연금에 대한 오해가 많아 시간되는데로 제 생각을 전하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