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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익현(동명증권 법인영업1팀) : 주문 접수...이거 생각보다 떨리네.
장석준(동명증권 법인영업3팀) : 꿀단지야, 똥파리야?

꿀단지, 브로커(증권사 매매 중개인)들에게 많은 매매 수수료를 안겨주는 펀드 매니저 또는 딜러를 일컫는다. 반면 별로 영양가 없는 매니저들은 '똥파리'로 불린다. '상똥파리'도 있다. 펀드 운용 성격이나 규제 때문에 많은 거래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매니저들이란다. 그래도 꿀단지든, 똥파리든, 브로커들에게는 모두 갑(甲)이다.

그들만의 '부티크'를 아십니까

 장편소설 <돈 : 어느 신입사원의 위험한 머니게임>
장편소설 <돈 : 어느 신입사원의 위험한 머니게임> ⓒ 새움출판사
새움출판사에서 내놓은 소설 <돈 : 어느 신입사원의 위험한 머니게임>의 한 '장면'을 요약한 것이다. 이 책, 일단 흥미롭다. '리얼한' 묘사로 낯선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계속 자극한다. 또 매우 적나라하다. 지하철에서 읽기에는 '갑과 을의 밤 문화'가 낯뜨겁다. 그러다 서늘함이 밀려온다. '부티크'에 이르러서다.

"부티크라고 꼭 지저분한 것들만 있는 게 아냐. 요즘 시장에서 한창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자문사들도 처음엔 대부분 다 부티크였어. 부자들 돈을 모아서 잘 굴리다 보니 실력으로 입소문도 나고 언더그라운드에서 유명해지니까, 법인 신고를 통해서 양지바른 곳으로 나온 거지."

부티크, '값비싼 옷이나 선물을 파는 가게'가 아니다. 개인 투자자에게 자금을 위탁받아 대신 운용해주는 소규모 투자 자문사를 가리킨다.

소설에서 이들의 '탈법'과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매우 충격적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증권가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은 모두 실화이며, 심지어 황당하기 그지없는 검은 음모들도 시장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란 저자의 말이 '과언'이 아니라고 느껴질 정도다. 영화 <작전>, 김민정의 팜므파탈 매력에 묻혔던 이야기가 실제 존재한다는 말인가.

이 책을 쓴 장현도 작가의 프로필을 보면 그러하다. 책을 통해 20대 후반까지 금융가에서 법인 브로커로 일하다가 '부티크'를 설립했다고 '커밍 아웃'했다. 소설의 결말보다 오히려 그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다. 19일 <오마이뉴스> 사무실, 직접 만나보니 아직 앳된 얼굴. 한 때 거액을 주물렀을 그 손 또한 고왔다.

- 1982년생으로 알고 있다. 결혼은 했나?
"세 아이를 두고 있다. (빠르다는 말에 웃음) 스물다섯에 결혼했다."

-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 MBA를 졸업했다고 밝혔다.
"국내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미국 유학을 다녀왔다. 현지 유수 기업에 취업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데, 마침 그때가 서브 프라임으로 직격탄을 맞은 시기였다. 그래서 2009년 귀국, 여의도 금융가에 들어가게 됐다."

영화 <작전>의 김민정, 나도 '부티크' 대표였다

 소설 <돈>의 장현도 작가
소설 <돈>의 장현도 작가 ⓒ 이정환
- 법인 브로커로 일했다고.
"처음 현대선물에 있다가 여러 중소 증권사로 옮겨다녔다. 처음에는 재미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길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 어떤 부분이 적성에 맞지 않던가.
"법인 브로커는 대단히 독특한 직업임에 분명하다. 문제는 엘리트들의 과잉 포화상태라는데 있다. 옛날에는 40대 초반까지만 일해도 노후와 재산 등을 다 보장해줄 수 있는 직업이 브로커였다. 그런데 이제는 브로커가 너무 많다는 거다. 과거에 비해 '파워'도 없다. 내가 느끼기에 말 그대로 전화 받는 ARS 역할, 그 정도더라.

그러다 보니 인맥이나 학맥에 기대는 현상이 더욱 심하다. 브로커로서의 능력 자체보다는 '관계'에 따라 고객이 결정되는, 공부도 안 하고 금융 시장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동료가 무지막지한 수수료를 뽑아내는 그런 상황을 보면서 괴리감이 들었다. 이런 모습이 내가 생각했던 금융가가 맞나 싶었다."

- 전문성이 비전문성에 밀리는 모습에 직업적인 회의를 느꼈다는 말인가.
"그렇다. 몸도 못 버티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술이 또 여의도가 굉장하다.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해서 복도에 토하고,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면 이게 정말 내가 원했던 일인가... 정말 앞으로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몸을 상해가며 수수료를 뽑는 것이 나의 앞으로 20년인가, 그런 회의감이 컸다."

- 법인 브로커란 직업, 아직 낯설다. 영화 <로그 트레이더>(1999)를 본 적이 있는데, 주연 이완 맥그리거의 그 직업을 떠올리면 되나.
"영화 초반 이완 맥그리거 직업이 바로 법인 브로커였다. (그럼 영화에서 이완 맥그리거에게 주문을 넣던 이가 펀드 매니저가 되는 것이고?) 맞다. 영화에서처럼 처음 법인 브로커로 일하다가 '내가 직접 고객 돈을 굴려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펀드 매니저로 전업하는 경우가 실제로 적지 않다."

"서로 '쉬쉬쉬'할 뿐, PI 규모 부티크 상당수 존재"

- 책을 통해 탈법적인 '부티크'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처음 알게 됐다.
"간단히 설명하면 펀드매니저들이 일하는 자산운용사, 그것의 비합법적 버전이다. 하는 일, 일과도 다 똑같다. 자산운용사가 돈을 잘 굴려 100억을 110억으로 만들었다고 하자. 고객에게 이익을 돌려주고 운용사 입장에서는 영업 이익이 발생하고 세금을 내게 된다. 부티크도 고객에게 이익을 돌려주는 것까지는 같다. 다만 영업 이익을 신고를 하지 않는다, 이 차이다."

- 한 마디로 탈세업체 아닌가.
"그렇다. 그럼에도 당국에서 적발하기가 매우 어렵다. 합법적 거래에서는 펀드 계좌 이름이 있다. 하지만 부티크 경우는 그런 게 없다. 고객 계좌를 부티크가 운용해 수익을 나눠먹는 것이다. 세무당국에서는 '투자 잘 했네' 정도로만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이상하게 여기려면 발생 수익을 다른 계좌로 이체하는 상황이 일어나야 하는데, 계좌 주인이 출금하니까, 현금으로 오가니까.

이런 식으로 굉장히 정교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적발이 힘들다는 것이다. 물론이다. 여의도, 강남에 숱하게 있다고 보면 된다. 돈 좀 있는 사람들은 부티크를 이용하지 않겠는가. 일부 증권사 직원들이 소개해주는 경우도 있다. 서로 '쉬쉬쉬' 하는 것뿐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접하는 주가 조작 세력? 부티크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 영화 <작전>에서 김민정씨가 맡았던 역할이 부티크다?
"그렇다. 그 영화를 보면 검은 커튼 뒤에 가려진 자산가들에게 설명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나. 부띠크 투자자들, 계좌를 개설해준 사람들인 거다."

- 상당히 화가 나는 이야기다.
"물론 그렇지만, 부자들 부티크를 왜 찾을까. 단순히 돈을 많이 벌어줘서? 이것도 큰 이유지만, 세금 신고가 안 되니까. 그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좋은 시스템이다."

- 그렇다면 현재 활동하는 부티크 규모를 어느 정도라고 보나.
"매매 주체하면 기관, 외국인, 그리고 개인이다. 물론 주도세력은 기관과 외국인이지만, 이렇게 세 주체가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자체가 무엇을 의미하나. 증권가에서 외국인이 던지고 개인이 받아내고 있다는 말을 간혹 한다. 이런 말 자체가 모순이다. 그 사이즈(규모)를 일반적인 개념의 개미 투자자들만으로는 받을 수 없다. 개미 투자자들 중 PI(자기자본거래) 규모의 부티크가 상당수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내 인생의 실패... 부티크"

 영화 <작전>의 한 장면. 소설 <돈>을 쓴 장현도 작가는 이 영화에서 배우 김민정씨가 맡았던 역할은 이른바 '부티크' 대표였다며 "PI(자기자본거래) 규모 부티크가 상당수 있다"고 주장했다
영화 <작전>의 한 장면. 소설 <돈>을 쓴 장현도 작가는 이 영화에서 배우 김민정씨가 맡았던 역할은 이른바 '부티크' 대표였다며 "PI(자기자본거래) 규모 부티크가 상당수 있다"고 주장했다 ⓒ 영화사 비단길

- 이제 증권사에서 나온 시점으로 돌아가자. 언제 부티크를 설립했나.
"2010년 말이다."

- 법인 브로커로 일하면서 전문성이 비전문성에 밀리는 모습에 직업적인 회의를 느꼈다고 했다. 그렇다고 굳이 '비합법'을 선택해야 했을까.
"(한동안 생각하다가)… 돈의 노예였다. 모든 인정과 평가의 척도라고 생각했었다. 이 세상의 가치 중 돈을 쫓았던 거다. '뭐 나이 마흔까지 일하냐, 서른 중반까지 바짝 벌고, 그 돈 쓰고 살아야지', 그런 마음이 강했다. 그런 지름길에 있었고, 비록 떳떳하진 않더라도 내 적성과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 생각을 버렸지만, 떨쳐냈지만, 그때는 그랬었다. 인정받는 하나의 수단이자 조건이 바로 돈이었다."

- 책 저자 소개에 부티크를 통해 큰 성공과 실패를 동시에 경험했다고 나와 있다. 큰 성공이라면?
"창피한 일이다…."

- 그래도 궁금하다.
"나이에 맞지 않는 수입…. 남들이 연봉 얼마다 하면 우스워 보였었다. 10배를 벌면 20배를 벌고 싶고, 20배를 벌면 100배가 벌고 싶어지더라. 책에만 나오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정말 그랬었다. 사실 미쳤던 거다. 뇌가 녹았던 거다. 그렇다고 내가 재벌이 된 것도 아니고, 값비싼 차를 산 것도 아니고, 집을 더 좋은 곳으로 이사한 것도 아니었다. 카드 긁는 게 부담 없을 정도였었지만, 생활 수준 자체가 크게 올라가거나 하지는 않았다."

- 당국의 시선을 피하기 위한 이야기 아닌가.
"그렇지 않다."

- 큰 실패는?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다. 한 달에 많은 돈을 벌 수 있지만, 많은 돈을 잃을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런 실패를 두어 차례 겪었다. 단순히 돈만 잃는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알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 언행에 큰 상처를 입었다. '너 때문에 내가 산다' 혹은 '네가 최고'라고 했던 고객이 어느 날 갑자기 '메꾸지 못하겠으면 너 집 팔아, 차 팔아'라고 하더라. 한 순간에 바뀌더라. 나 스스로의 노예이기도 했지만, 누군가의 노예였던 것이다. 오히려 지금은 그런 경험이 고맙다. 오만방자했던 내가 덕분에 빠져나올 수 있었으니까."

- 결국 돈에 질린 것인가.
"질렸다. 굉장히 질렸다. 부티크는 내 인생의 실패였다."

-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나는 말이 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나 공감하지 않는 이야기다.
"외면하려고 하는 이야기 아니겠나."

- 적어도 지금은 돈이 갑(甲)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여의도 똥파리들 '밤문화' "정신병이냐고 하더라"

 소설 <돈>의 장현도 작가
소설 <돈>의 장현도 작가 ⓒ 이정환
- 왜 하필 작가로 빠져나갔나.
"무슨 가게를 열거나, 이런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돈에 질려 있었으니까. 자본이 소요되는 일은 피하고자 했다. 돈 잃을 일 없는 직업을 찾았다. 작가가 생각보다 적성에 잘 맞는 것 같았다. 생산적인 일이란 생각도 들었고."

- 소설 이야기로 넘어가자. 일단 잘 읽히더라. 아무래도 그쪽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작용하고, 똥파리, 상똥파리, 꿀단지 등 업계 은어들이 현실감을 높였기 때문인 것 같다. 작가의 말을 통해서는 '소설에 등장하는 증권가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은 모두 실화'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들의 밤 문화도 상세하게 묘사했던데, 어디까지가 사실인가.
"대부분 사실이라고 보면 된다."

- 그렇게 자세하게 묘사한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리얼리티를 살리고 싶었다. 보통 브로커나 딜러가 하는 말들, 그들의 일상을 사실성 있게 다루고 싶었다. 물론 보는 시각에 따라 불편할 수 있다. 원고를 본 지인도 '정신 이상한 사람이 쓴 것 같다'고 하더라. 하지만 무엇보다 리얼리티를 살리고 싶었다."

- 돈의 맛의 더러움? 퇴폐성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는 아니었나.
"배보다 배꼽식 해석 아닐까? 단순하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독자들이 찝찝한 기분으로 계속 읽어나가길 바랐다."

- 소설을 통해서 부각하고 싶었던 주제는?
"굳이 어떤 주제를 던지고 싶지 않았다. 나름 숨겨 놓은 의미는 있지만, 이런 이야기를 쓰니까 알아달라, 그런 건 싫었다. 그보다는 소설을 읽으며 느끼는 '찝찝함', '왜 찝찝할까?'는 물음을 독자님들이 가져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무거운 주제 의식을 담는다는 자체가 나의 내공으로는 아직 무리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함께 '찝찝하길' 바랐다."

브레이크 밟기 어려운 '돈의 맛'

 한 트레이더의 탐욕으로 몰락한 베링스 은행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로그 트레이더(Rogue Trader)'의 한 장면
한 트레이더의 탐욕으로 몰락한 베링스 은행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로그 트레이더(Rogue Trader)'의 한 장면 ⓒ google.com

- 전작 <트레이더>를 내놓은 지, 5개월만에 다시 책을 냈다. 작가 생활을 계속할 생각인가.
"이 일의 가치를 계속 찾고 싶다. 이야깃거리는 많지만, 전문성에 한계를 느꼈다. 취재 등 별도의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미숙하더라도 '이 사람 책에는 이런 맛이 있다'고 느끼도록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느끼는 독자 숫자가 비록 많지 않더라도 말이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우리나라가 경제 논리에 대해서는 굉장히 미개하다고 생각한다. 이건 단순히 무슨 재테크 서적 몇 권 본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무감각하다고 해야 하나? 자신의 돈을 잘 지키려 하지 않는다. 나만 그런 게 아닌데도, 사람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지 못한다. 모르기 때문이다."

- 나의 돈을 누가 어떻게 노리는 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그래서 앞으로 써보고 싶은 주제 중 하나가 1997년 IMF 사건이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굴욕 중 하나 아닌가. 꼭 다뤄보고 싶다."

인터뷰에 참여한 인턴 기자가 '돈에 대한 열망이 강하고 구체적인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그는 "악마의 목소리는 굉장히 달콤해서 브레이크를 밟기가 결코 쉽지 않다. 십중팔구는 도망자가 되거나 파멸에 이르기 쉽다"며 "나도 엑셀을 더 밟았으면 지금쯤 동남아 어디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서늘한 경고'도 잊지 않았다.

"'목돈으로 주식이란 거 해볼까', 이런 생각은 굉장히 위험하다. 그 사람이 싸워야 할 상대방, 모니터 반대편에 있는 사람은 몇 십 년을 그것만 해 온 사람이다. 싸움이 되겠는가."


#부티크#장현도#돈#트레이더#똥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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