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공자와 공자 사상에 대한 평가는 가히 극단적이다. 김경일은 유교 이데올로기가 건강한 시민사회로 성숙하는데 걸림돌이 되므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했다. 최병철은 이러한 공자 비판을 두고 선무당이 사람 잡는 꼴이라고 비판하며, 서구의 기계론적인 관점을 타파하고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반박했다.

지난 세기말에 뜨겁게 달아올랐던 '공자 논쟁'은 모두 한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주도하였고, 그럼에도 이러한 극단적인 평가가 나온 것 또한 공자와 공자사상이 갖는 영향력을 반증한다고 하겠다. 이러한 논쟁은 역으로 공자와 유학, 그리고 그 경전들에 대한 관심을 아울러 증폭시켰다.

그러므로 새 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하고 10여 년이 지나는 동안, 공맹사상과 유학 경전들은 부활하는 듯하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사회적으로 크게 증가하고, 고전의 중요성이 재평가되면서, 공맹에서 미래적 가치와 진보성을 찾아내고, 때로 현실 사회의 모순을 바로잡아가는 지침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게다가 공자 사상을 담은 어록집인 <논어>는 개인주의적 인간관을 바탕으로 한 서구 사상과 달리, 인간의 관계를 중시하는 인간관을 담고 있으며, 신비주의를 표방하지 않고 오직 인문사회적 성격이 강해 개인의 종교적 성향과 상관없이 폭넓게 읽혀지고 있는 고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365일 매일 읽는 논어>
 <365일 매일 읽는 논어>
ⓒ 시간과 공간사

관련사진보기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IT 회사에서 근무하는 등, 고전과는 거리가 먼 경력을 가진 심범섭이 펴낸 <365일 매일 읽는 논어>는 방대한 <논어>의 말씀들 중에서 365개의 문장을 추출해 매일 한 문장씩 읽고 음미할 수 있게 구성한 책이다. 그래서 단순하다. 논어에 대한 설명도 없고, 머리말도 매우 소략해 오직 논어의 말씀에만 집중하게 하는 책이다. 다만 각 문장마다 붙여진 제목만이 저자의 생각을 담고 있을 뿐.

'하루를 시작하기 전 '논어'와 함께' 하면. '생각이 바뀌고 삶이 바뀌어 질 수 있'으며, 진정한 행복, 단단한 성공, 의미 있는 삶을 꿈꾸는' 사람에게 '아침의 상쾌한 미소를 드'린다고 했다. '삶을 치유해주는 공자의 지혜'라는 문구는 <논어>를 묵상하고 정화하는 경전으로 삼아, 우리의 생활 가까이 배치하려는 저자의 의중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논어> 속 이야기가 주는 재미와 깨달음

나는 공자의 말씀만 담아 가르침을 전하는 문장에 별로 재미를 못 느낀다. 그것보다 제자들과 대화하는 장면이나, 이야기가 담긴 문장이 더 재미있으며, 대화와 이야기에서 흘러나온 가르침에서 얻는 깨달음의 깊이도 더하는 것 같았다.

공자가 안연에게 말했다. "쓰일 때는 나아가 도를 행하고, 쓰이지 않을 때는 물러나 은거하는 일은 오직 나와 너만이 할 수 있다." 그 말을 듣고 자로가 말했다. "스승님께서 군사를 거느린다면 누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아무 것도 없이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 잡으려 하고, 아무 것도 없이 (맨몸으로) 강물을 건너려 하다가 (비록)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사람과는 함께 하지 않겠다. 반드시 일에 임하여 두려워하고, 계획하기를 좋아하여, 일을 이루어내는 사람과 함께 할 것이다."(본문 116쪽, 괄호는 필자)

저자는 이 장면 위에다 '무모하게 나서지 말고 주도면밀하게 계획하라'는 제목을 붙여놨다. 공자와 안연의 대화 내용과 상관없이 문득 엉뚱한 질문을 하는 자로에게 웃음이 났지만 마치 기다리고 있은 양 답변하는 공자의 역량과 그 답변 내용에 고개가 숙여졌다.

왜냐하면, 당시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는 패자(覇者)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힘이 지배하는 시대였고, 모든 나라들이 백성을 늘리고, 나라 땅을 넓혀 패권을 쥐기 위한 시대였으니, 마땅히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을 수 있는, 용맹스럽고 기개가 뛰어난 자가 주목받고 쓰이는 세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조심이 소심으로 취급되고, 치밀함이 겁쟁이로 오인될 수 있는 시대에 공자의 답변은 시대를 앞서서 열어가는 안목이 없이는 나올 수 없는 내용이라고 보았다.

이 장면을 읽고 나자 문득 이순신의 바다가 떠올랐다. 조선과 일본의 7년 전쟁(임진왜란) 중, 23전 23승으로 전승의 신화를 이룩한 이순신이야말로 공자가 함께할 사람이 아닐까? 이순신의 전승 신화는 바로 '일에 임하여 두려워하고, (치밀하게) 계획하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왜군의 간계에 넘어가 부산포를 공격하라는 조정의 명령까지도 거부하여, 역모로 몰려 압송되면서까지 이순신이 지킨 원칙은, 반드시 이길 수 있을 때까지 준비하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이는 평상심을 잃은 자가 닿을 수 있는 경지가 아닌 것이다. 다음의 장면도 재미있다.

자공이 물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좋아한다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충분하지 않다." 자공이 물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미워하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충분하지 않다. 마을 사람들 중에서 선한 사람이 좋아하느니만 못하고, 선하지 않는 사람이 미워하느니만 못하다."(260쪽)

마을 사람들이 모두 미워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 무모한 사람, 지나치게 욕심이 많고 독선적인 사람이 아닐까. 그렇다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인기가 높은 그런 사람도 공자는 못 마땅하게 생각한다. 그 사람은 아마 어진 사람이라기보다 인심에 영합하는데 능한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마을 사람들 중에 선한 사람들에게는 호감을 받고, 마을 사람들 중에 선하지 못한 무리들에게는 미움을 받아야 더 잘 사는 사람이라고 공자는 말한다. 그 사람이 잘 살면(도에 맞게 살면), 선한 사람들은 당연히 좋아한다는 것이고, 선하지 못한 사람들은 질시하며 꺼리게 된다는 것일 테지. 그러니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좋아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지나친 욕심일 터. 어떤 사람이 나를 좋아하고 미워하는지 살펴볼 일이다. 그래야 내가 잘 살고 있는지 못 사는지를 그나마 가늠할 수 있으니까.

군자와 소인... 나는 소인이다

잘 알다시피 공자는 수양적 인간인 '군자'와 세속적인 인간인 '소인'으로 나누어 대비시키고 있다. 공자의 이러한 측면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도 있지만, 한 편으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면에서 교육적이다. 목표가 없다면 누가 길을 가겠는가.

그런데, 군자는 깊은 배움과 사유를 통해 훌륭한 인품을 갖추고 있는 지성인이지만, 그렇다고 소인이 형편없거나 나쁜 사람을 의미한다고 보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소인은 아직 그릇이 작거나, 덜 성숙된 존재이다. 수양과 실천의 단계로 소인과 군자를 봐야지, 윤리적인 관점에서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덕을 마음에 품고, 소인은 편안히 살 땅을 마음에 품는다. 군자는 법에 따라 일이 처리되는 것을 마음에 품고, 소인은 이익과 혜택을 마음에 품는다."(55쪽)

여기서 덕과 법은 군자가 품는 높은 수양의 단계를 말하고, 땅과 혜택은 소인이 품는 낮은 수양의 단계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덕과 법을 우선하면, 땅과 혜택은 따라오는 것으로 공자는 보았겠지. 이는 주종의 관계를 말한다. 덕과 법은 주(主)이고 뿌리이며 근본인 반면, 땅과 혜택은 종(從)이고 가지이며, 끄트머리인 것이다. 그렇다고 잎과 가지와 꽃은 없어도 되고 오직 뿌리만 있을 순 없다. 다만 뿌리에 힘쓰면 잎과 가지와 꽃은 자연히 따라오는 것임을 뜻한다.

그리고 '군자는 의로움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거나 '군자는 두루 사귀면서도 편을 가르지 않고, 소인은 편을 가르면서도 두루 사귀지 않는다'거나 '군자는 평온하여 여유가 있지만 소인은 늘 근심한다'는 말씀. 그리고 '군자는 태연하되 교만하지 않고, 소인은 교만하되 태연하지 못하다'거나 '군자는 자신에게서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찾는다'는 말씀들이 모두 군자와 소인을 대비하는 문장들인데, 대체로 짧고 간단해서 대비 효과를 높이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소인이다. 아직도 군자의 덕성을 배양하지 못하고 있으니. 하지만 소인이 있음으로써 군자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불가의 말씀에 '부처는 중생을 복전(福田)으로 삼는다'고 했는데, 통하는 말이다. 소인이 없는 군자는 있을 수 없다. 소인은 말 그대로 작은 사람일 뿐이다. 나쁜 사람이 아니다. 소인을 긍정해야 소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역설을 배운다. '군자는 위로 통하고, 소인은 아래로 통한다.' 위아래가 다 소중하지 않은가 말이다.

<논어>는 과연 힐링의 경전인가

저자는 <논어>가 인간 개인과 사회의 상처를 치유하는 힐링의 경전이 되기를 원한 것 같다. 자로가 군자에 대해서 묻자, '자기를 수양하여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修己安人)' 라고 한 것을 보면, 수양을 잘 한 사람이란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사람이므로 그 자체만으로 깊은 힐링의 경지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공자는 매우 준엄하게 자신을 가다듬도록 하고 있다. 거기에는 상처와 치유가 근본적으로 없어 보인다. 공자는 토로했다. '어찌 할꼬? 어찌 할꼬? 하지 않는 사람은 나도 어찌 할 수 없다'고. 흐르는 물처럼 밤낮을 가리지 않고 흘러갈 뿐이다.

공자가 말했다. "산을 만드는 것에 비유하자면, 마지막 흙 한 삼태기를 채우지 못해 산을 못 이루고 그만 두는 것도 내가 중지하는 것이며, 땅을 고르게 다지는 데 비유하자면 비록 한 삼태기를 부었더라도 일에 진척이 있었다면 내가 그리 한 것이다."(176쪽)

모든 게 나로부터 비롯되고 나로부터 끝마치는 것이다. 도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남이 나를 몰라주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주지 못함을 근심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는 이치가 서늘하다.

<365일 매일 읽는 논어>는 말씀만 있고, 그 말씀에 대한 주석이 없다. 그래서 그 말씀이 어디서부터 나온 것이고,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다. 말씀의 내용이 이해되지 않으면 추측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부분이 이 책의 약점이랄 수 있다. 매일 한 편씩 읽고 새기는 기능적인 면에 치우치다보니 말씀의 속살을 만나는 재미가 부족하다. 주제별로, 또는 형태별로 나누어 구성하고 손길을 내밀었다면, 책 읽는 재미를 훨씬 더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365일 매일 읽는 논어>(심범섭 | 시간과 공간사 | 2013.02. 1만3000원)



365일 매일 읽는 논어 - 삶을 치유해 주는 공자의 지혜

공자 지음, 심범섭 옮김, 시간과공간사(2013)


#공자#논어#힐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