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김두권 선생님 전상서
김두권 선생님! 저는 고국 강원도에 사는 박도입니다. 선생님께서 지난해 11월 5일 보내주신 옥서를 받고, 또 올 2월 13일에 보내주신 선생님의 시집 <운주산>과 옥서를 받고도, 이제야 답장 올림을 용서하십시오.
사실 저는 지난해 가을부터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라는 책의 원고를 집필한다고, 거기에 온 정신을 쏟느라 좀 바쁘기도 했습니다. 지난 연말에 집필을 끝낸 다음 올 초에 출판사로 원고를 보냈고, 지난 주말 2교를 보았으니 빠르면 이달 중순이나 하순쯤이면 책이 출간될 듯합니다.
엊그제는 3.1절로 저는 모처럼 텔레비전의 여러 특집 프로그램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고, 문득 도쿄에 계시는 <종소리> 시인회 회원들과 김 선생님에게 받은 시집과 옥서 등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면서도 즉시 답장을 쓰지 못하다가 오늘에야 작심을 하고 컴퓨터 자판을 두들깁니다. 그 무엇이 저로 하여금 이렇게 늦게야 답장을 쓰게 하였거나 주저케 하였는지는 선생님께서는 이해하시면서도 한편으로는 매우 섭섭하셨을 겁니다. 구구한 변명의 말씀은 올리지 않겠습니다.
오늘 아침 이 답장을 쓰고자 선생님의 옥서와 보내주신 시집 <운주산>을 다시 펼쳐봅니다.
운주산 - 김두권운주산어찌하여 요즘 자꾸 내 눈앞에 떠오른 것일까잊지 못할 고향의 산아가만히 그 이름만 외워도수려한 그 모습 안겨오네향수에 젖는내 고향의 못 잊을 산아얼마니 많은 해와 달이 지나갔는가내 고향에 돌아가면맨 먼저 운주에 오른다고 다짐하던청춘시절 그때로부터운주는 사철이 아름답지만여름의 운주가 제일이야어릴 적 여름방학이 되면너의 푸른 자락에 해종일 뒹굴었더라철이랑 순이랑 어깨동무들과 함께우거진 잡목 밑졸졸 흘러내리는 계류를 따라참나물을 캐던 일지금도 이 눈에 선히 떠오르네참나물 그 향기 이제도바람결 따라 풍겨 오는 듯해 솟는 운주해 지는 운주가없이 푸른 너의 하늘에 떠가는흰 구름에 꿈을 실어 보내며내 꿈을 키우던 곳운주는 첫 발자국이 찍힌 산내가 찾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어머니 숨결이 어려 있는 내 고향요즘 꿈속에 자꾸 찾아오네고향의 운주정다운 운주고향 갈 차비를 다그치란 말인가아, 운주가 나를 부른다운주가 나를 부른다 (1991년)어린 시절 고향의 뒷산저는 대한해협을 건너 도쿄 한복판에서 어린 시절 고향의 산을 그리는 선생님의 망향 사연을 매우 느꺼운 마음으로 읽은 뒤 인터넷에서 '운주산'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기계면과 영천시 자양면, 임고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기계면과 영천시 자양면, 임고면의 경계 상에 있다. 해발 806.2m로, 포항 지역을 관통하는 낙동정맥의 한 줄기를 이룬다. 멀리서 보면 구름을 받치고 있는 기둥처럼 보여 '운주산(雲柱山)'이라고 하였다. 산세가 험난해 방어지로 적합하여 임진왜란 때 백암 김륵의 부대가 성을 쌓고 진터를 설치하여 왜적과 항전을 벌였으며, 1910년대 산 아래에 있던 안국사가 포항 지역 의병부대인 산남의진(山南義陳)의 근거지로 알려져 일제에 의해 불태워지기도 하였다. 산 중턱에 1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넓어 전쟁 때 주민들의 피난처로 이용된 동굴이 있다. [두산백과]재일 종소리 회원들이 펴낸 <치마저고리>라는 시집의 날개에서 김두권 선생의 약력도 보았습니다. 1925년 경북 영천 출생으로 교토 인문학원 수학, 교토조선학교 교원, 교무주임, 문예동 중앙사무국장, 부위원장 역임… 등
선생님께서 팔십 평생 그리면서도 끝내 찾아보지 못하는 고향은 사실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닙니다. 도쿄 나리타나 하네다 공항에서 두 시간이면 김해국제공항에 닿을 수 있고, 거기서 승용차를 타면 두 시간 내에 닿을 수 있는 곳입니다. 곧 이른 아침 도쿄에서 출발하면 점심은 운주산 아랫마을에서 고향의 산 산채비빔밥을 드시고, 저녁은 도쿄 신주쿠 선생 댁에서 드실 수 있도록 세상은 참으로 좁아졌습니다.
그런데도 선생의 고향 운주산은 선생님께는 모스크바보다도, 남극 킹 조지 섬보다도 더 먼 곳이라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최근 10여 년간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동남아 등 여러 곳을 근현대사 자료 수집 목적으로, 독립전사들의 유적지를 답사한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조국 한반도에만 있을 줄 알았던 38선, 휴전선의 철조망이 곳곳에 쳐있음을 알고 매우 가슴 아팠습니다.
내 조국 백두산도 가까운 길을 두고서 중국을 거쳐 멀리 찾기도 하였습니다. 다행히 저는 작가의 신분으로 2005년 북한을 방문하여 묘향산, 백두산을 찾아가 봤지만 아직도 일천만 이산가족 가운데는 세계 방방곡곡은 다 둘러보아도 당신 고향 뒷산을 찾지 가지 못한 아픈 실향민이 부지기 수로 끝내 눈을 감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돌아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우수리스크 역에서
- 박 도내 십 수 년째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선열들의 발자취를 따라해외를 누벼보니까나라와 겨레를 두 조각낸 38선(휴전선)은 한반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베이징에도 있었고, 도쿄에도 있었고, 블라디보스토크에도,워싱턴에도 있었다.어느 영웅이 나타나두 조각 세 조각 네 조각으로 찢어진나라와 겨레의 속살에 깊이 새겨진38선을 지우고,휴전선 철조망을 걷어낼 수 있을까?저무는 10월 하순 한낮극동 러시아 우수리스크 역에서내 아들이나 조카와 생김새가 똑같은구릿빛 얼굴의 노동자를 만났다.나의 안내자는 그들이 시베리아 삼림지대에서 일하는 북한 벌목공들이라고 했다.나는 반가운 마음에그들에게 다가가몇 가지 물었더니 한 노동자가북한 여기저기에서 온 림업부 소속이라고 대답은 하는데수많은 눈초리가 경계의 빛으로 우리 두 사람을 죄고 있었다.나는 그를 덥석 껴안고 싶었지만그와 나 사이에는 날카로운 철조망이여러 겹 드리워 있음을 알아차리고못내 뒷걸음질을 하고는우수리스크 역 육교에 올라 그들 뒷모습만카메라에 담았다내 눈에서는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연해주의 북풍이 몹시 찼다.위의 글은 제가 2009년 10월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맞아 그분의 뒤를 좇으며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시크 역에서 쓴 것입니다.
김두권 선생님! 우리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 이야기는 이 글에 담지 않겠습니다. 솔직히 저는 지난해 시지 <종소리> 50호 발행 도교 기념모임에 다녀오고도 후배 문인의 충고로 관계 당국에 여행 및 참가신고를 하였습니다. 왜 제 동포를 만나고도 굳이 신고를 해야 하는지 왜 우리나라가 이런 나라가 되었느냐고 저에게 묻거나 따지시지 말기 바랍니다.
다만 제가 이 답장을 드리는 것은 선생님과 저는 평생 같은 모국어를 사랑하고 후세들에게 이를 가르쳤으며, 지금도 이 모국어로 작품을 쓰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생님과 저 사이는 자그마한 벽도 없기에 만난을 무릅쓰고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한 나라와 겨레가 정치적인 이유로 분단이 되고 서로 이산가족이 되어도 후세들이 같은 모국어를 쓴다면 그 언젠가는 그들이 반드시 반갑게 합쳐질 것입니다. 그 거룩한 일에 선생과 저는 가장 앞장선 일꾼입니다. 저는 거기에 크나큰 자부심을 가지며 여생을 살고 있습니다. 아마 선생님도 그러실 줄 압니다.
지난해 6월 9일 도쿄에서 열린 시지 <종소리> 50호 발행 기념모임에서 제가 여러분에게 드린 축하의 한 마디와 선생님의 시 <나그네> 일부를 소개하면서 제 글월 줄입니다.
정말 여러분 장하시고 대단하신 분들로 존경합니다. 프랑스의 작가 알퐁스 도데는 <마지막 수업>이라는 작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가령 어떤 국민이 노예의 신분이 되더라도 자기 나라의 국어를 건실하게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마치 자기가 갇힌 감옥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여러분이 종전 후 70년이 다 될 때까지 우리 얼을 지키고 모국어를 지키는 그 뜨거운 조국애에 정말 고개 숙여 경의를 드립니다. 솔직히 저는 여러분의 그 뜨거운 조국애에 감동하여 오늘 여기에 왔습니다. 종소리에 실린 시들은 모두 제 마음을 울렸습니다.
나그네
- 김두권…………타향살이백년을 한다고 하여타향이 고향이 될 수는 없고고향을 떠나천년을 산다고 하여고향이 타향으로 될 수는 없거니나그네는 오늘도 가네가슴속에 지닌 불 고이 간직하고이역의 하늘 아래 바람은 사나와도나그네는 쉼 없이 가네한번 시작한 길을 끝까지 간다네가다가 길섶에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길을 가네가고 또 가네끝없이 가네되찾고야 말 고향이 있기에영원히 마음 놓고 살제 집이 기다리기에 (1987년)김두권 선생님을 비롯한 시지 <종소리> 회원 여러분!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부디 해외에서 옥체 건강하시옵소서.
2013년 3월 3일
고국 강원도 원주 치악산 아래에서 박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