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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여러분께, 사죄."

2012년 3월 6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이하 KBS 새노조) 조합원 600여 명은 서울 여의도 KBS 신관에서 파업 출정식을 가졌다. 이들은 '공영방송 KBS를 지켜내지 못했다'며 국민에게 사죄하는 마음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파업 슬로건은 '리셋 KBS'. 이후 KBS 새노조는 95일간 파업을 이어갔다. MBC, YTN, <연합뉴스> <국민일보>까지. 사상 초유의 언론사 동반파업이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3월 6일. KBS 새노조 조합원들은 KBS 신관 라디오 공개홀에서 파업 1주년을 기념하는 문화제를 열었다. 문화제의 제목은 '가다 못 가면 쉬어가지'.

이날 사회를 맡은 오태훈 새노조 사무국장은 "행사를 준비하면서 고민이 많았다, MBC를 비롯해 언론사 노조들이 '멘붕'인 상황에서 문화제를 해야 하나"라면서 "오늘을 기점으로 해서 박근혜 정부 하에서 언론인들이 다시 싸울 수 있는 힘을 갖고자 문화제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문화제에는 200여 명의 조합원이 참석했다.

강신주 박사 "오버하지 말고 한 걸음만 가라"

 6일 KBS 신관 라디오 공개홀에서 열린 KBS 파업 1주년 문화제에서 김현석 KBS 새노조 노조위원장이 발언을 하고있다.
6일 KBS 신관 라디오 공개홀에서 열린 KBS 파업 1주년 문화제에서 김현석 KBS 새노조 노조위원장이 발언을 하고있다. ⓒ 홍현진

오태훈 사무국장의 '비장한' 발언은 곧바로 철학자인 강신주 박사에게 일침을 맞았다. 문화제 1부는 강신주 박사의 초청 강연으로 진행되었다. 강 박사는 "오늘 여러분에게 투쟁의 방향을 가르쳐주려고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정권이 바뀌면 세상이 좋아진다'고 생각한 사람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서 시니컬해졌다. 문재인한테, 안철수한테 뭘 기대한 건가. 그들은 아무것도 안 해준다."

강 박사는 "거대담론을 생각하지 말자, 이걸 생각하면 실패한다"면서 "'나는 게릴라'라고 생각하고 장기전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거대 구조를 한꺼번에 바꾸는 '정규전'이 아니라 작은 것들을 하나하나 바꿔가는 '비정규전'을 하라는 것. 

"유사 이래 언론의 자유가 있었던 적이 어디 있나. 그건 상시다. 여러분은 죽었다 깨어나도 언론정책을 바꾸지 못한다. '모 아니면 도'가 아니라, 여러분들이 방송현장에서 하는 많은 것 중에서 한 걸음만 더 나가면 된다. 오버하지 말고, 한 걸음만 가라. 그리고 다음 후배들이 들어왔을 때 그들이 '도'의 자리가 아니라 '개'의 자리에서 시작할 수 있도록 해주면 된다."

강 박사의 강의에 깨달음을 얻었을까. 이어 무대에 오른 김현석 KBS 새노조 위원장은 준비해온 메모지를 꺼내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열심히 싸우자, 5년 동안 잘 해보자'고 써왔는데 안 읽겠다"며 웃었다. 김 위원장은 "1년 전, 이기는 싸움을 했는데 못 이겼다"면서 "패장이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열심히 하겠다"고 짧게 소감을 전했다.

"박근혜 정부 5년, 방송이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달라"

 6일 KBS 신관 라디오 공개홀에서 열린 KBS 파업 1주년 문화제에서 노회찬 전 국회의원,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가 토크콘서트를 하고있다.
6일 KBS 신관 라디오 공개홀에서 열린 KBS 파업 1주년 문화제에서 노회찬 전 국회의원,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가 토크콘서트를 하고있다. ⓒ 홍현진

이날 문화제에는 '표현의 자유'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물들이 초대손님으로 나왔다. '표현의 자유'를 위해 경찰대 교수직을 사임한 표창원 전 교수와 이른바 '삼성 X파일'에 들어있는 '떡값검사'의 실명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전 의원이 그 주인공. 두 사람의 미니 토크콘서트 사회는 정세진 아나운서가 맡았다.

노회찬 전 의원의 '의원직 상실'에 대해 표창원 전 교수는 "도난"이라며 분노했다. 표 전 교수는 대법원의 판결을 "식당 갔는데 주방에서 남은 음식을 모아서 다른 손님들에게 내놓는 것을 발견하고는 '야, 이 자식들아 왜 그래!'라고 했는데 식당의 행위는 묻지 않고 반말한 것을 문제 삼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노 전 의원은 "<중앙일보>는 계속해서 이 사안을 모르쇠로 일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고, <조선일보>는 <월간조선> 편집장이 똑같은 사안으로 유죄판결을 받았을 때는 사설까지 실어서 규탄하더니 저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면서 "삼성을 의식하는 보도관행이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정세진 아나운서는 두 사람에게 'KBS 새노조는 보수라고 생각하나, 진보라고 생각하나'라고 물었다. 이에 표창원 전 교수는 "새노조는 자신들이 알리고자 하는 것을 알리는 당연한 자유를 지키고자 한 것뿐이지 그 안에서 이념은 없는 것 같다"고 답했다.

"저는 여러분이 좋아하는(웃음) 종편에서 일한다. 종편도, 진보언론도, 대안언론도 모두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 안에서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우리나라 현 상황에서 보수, 진보는 없는 것 같다."

이에 정세진 아나운서가 표 전 교수에게 '주로 종편만 나가시죠?'라고 묻자, 표 전 교수는 "예전에는 '김비서(KBS)'가 저를 많이 찾아줬는데 전혀 안 찾아주더라, '만나면 좋은 친구'(MBC)도 똑같은 상태"라며 "다른 애인이 생겼나보다"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노 전 의원은 "이기는 싸움보다 이길 때까지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럴 때 새노조도 진보적인 노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5년간의 언론의 역할에 대해 노 전 의원은 "언론에 대한 제2의 민주화운동, 제2의 6월항쟁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일부 언론이 스스로가 기득권이 되어서 또 다른 기득권과 유착해서 낡은 가치를 지키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면서 "이에 대한 민주화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표창원 전 교수는 공영방송의 신뢰성, 공정성 회복을 강조했다. 표 전 교수는 "국민들은 파업이 일어나고 이럴 때면 '문제가 있나' 하다가 타결이 되면 '아 문제없구나'라고 생각한다"면서 "늘 살아 있음을 보여달라"고 당부했다.


#KBS#KBS 새노조#강신주#표창원#노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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