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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사장자리 인사 청탁과 함께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기소돼 1·2심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진 한명숙(69) 전 국무총리가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로써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했다는 '정치검찰'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한명숙 전 총리는 이날 트위터에 "대법원의 무죄 확정 판결로 4년 만에 진실이 밝혀졌습니다. 저에게 신뢰와 성원을 보내주신 국민 여러분이 계셔서 그동안의 고통을 견디고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고 감사를 표시하며 "또한 검찰개혁을 통해 국민에게 신뢰받는 검찰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랍니다"라고 검찰에 당부했다.

검찰은 한명숙 전 총리가 총리 재임 시절인 2006년 12월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 오찬장에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공기업 사장으로 취업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인사 청탁과 함께 봉투 2개에 담은 5만 달러를 받았다는 혐의로 2009년 12월 불구속 기소했다.

이 사건의 직접적인 증거는 돈을 건넸다는 곽영욱 전 사장의 진술밖에 없었고, 한명숙 전 총리는 돈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해 왔다.

1심 "곽영욱 진술 의심 들고, 검사의 주장은 상황적 타당성이 결여"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서 인사청탁과 함께 뇌물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가 2010년 3월 17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5차 오전 공판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는 모습.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서 인사청탁과 함께 뇌물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가 2010년 3월 17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5차 오전 공판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는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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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제27형사부(재판장 김형두 부장판사)는 2010년 4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뇌물)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공적인 장소에서 뇌물공여를 했다는 곽영욱의 진술은 한명숙에게 돈을 줬다는 사실을 무조건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실제로 만난 날이 오찬일 밖에 없다보니 생겨난 이상한 결과가 아닌지 의심이 들고, 또 곽영욱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두 사람은 금품수수를 약속하지 않았는데, 한명숙이 이를 '센스'로 알아차렸다는 것을 전제로 일사분란하게 돈 봉투를 전달하고 처리하는 것을 상정한 검사의 주장은 상황적 타당성이 결여됐다"고 밝혔다.

이어 "오찬이 끝나면 오찬장 문 앞으로 와 있는 수행과장은 물론, 열린 문을 주시하며 오찬장 앞을 주목하고 있었을 경호팀 등이 있어 방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를 쉽게 알 수 있는 상황인데, 한명숙이 대담하게 돈을 받아서 서랍장 등에 숨겨두고 나온다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이라는 의심이 든다"고 덧붙였다.

또 "한명숙이 돈봉투를 받아 서랍장이나 드레스룸의 문을 열고 숨겨 놓으려 했다면 한명숙은 오찬 참가자 중 가장 늦게 나와야 하는데, 이는 의전이나 사회통념 그리고 일상적인 총리공관 오찬의 관례 등에 비추어 보면 매우 이례적인 상황임에도 이러한 이례적인 상황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한명숙의 손가방이나 핸드백은 오찬 중에는 수행과장이 갖고 있었고, 당일 한명숙은 코트도 입고 있지 않았으며, 입고 있던 옷은 3만 달러와 2만 달러가 든 편지봉투가 들어가기에 너무 작은 점, 당일 일정이 많아 서둘러 집무실로 가야할 상황이어서 한명숙이 두툼한 돈봉투 2개를 받아서 이를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처리하고 떠났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총리공관 및 동석자가 있는 오찬자리라는 상황, 오찬을 마친 후 의전에 따라 퇴장과 배웅이 이루어진다는 의전 정황 그리고 오찬 중에는 동석자간에, 오찬 후에는 경호원과 수행과장 등 다수의 주시 속에 행동이 이루어진다는 정황 등을 고려하면, 한명숙이 오찬 직후 다른 사람들 모르게 곽영욱으로부터 돈을 수수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며 무죄로 판단했다.

항소심, 곽영욱이 검찰 때문에 허위진술을 했을 가능성에 무게

이에 검찰이 항소했으나, 서울고법 제4형사부(재판장 성기문 부장판사)는 2012년 1월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 무죄 판결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먼저 "형사재판에서 범죄사실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엄격한 증거에 의해야 하는 것이므로, 검사의 입증이 위와 같은 확신을 가지게 하는 정도에 충분히 이르지 못한 경우에는 비록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명이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면이 있는 등 유죄의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곽영욱이 뇌물공여 장소와 시기를 총리공관 오찬장으로 선택한 것에 합리적 의심이 들고, 오찬장 구조와 당시 상황은 뇌물을 전달하기에 매우 적당하지 않으며, 곽영욱이 선택한 뇌물전달 방법도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점, 한명숙이 5만 달러를 받고 처리하는 방법에 관한 검사의 가정도 이해되지 않는 점 등을 종합하면, 곽영욱의 진술에는 합리성과 객관적 상당성이 결여돼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렇다면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유일한 직접증거인 곽영욱의 진술은 합리적인 의심을 배척할 정도에 이르지 못해 신빙성이 부족하고, 그밖에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법관으로 하여금 공소사실에 관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에 이르지 못해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한편, 재판부는 곽영욱이 검찰 때문에 허위진술을 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재판부는 "피고인 곽영욱이 뇌물공여를 자백했다가 번복하자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가 진행됐고, 곽영욱은 당시 상황에 관해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힘들었다'고 진술한 점, 이런 상황에서 곽영욱으로서는 뇌물공여를 진술하라는 검찰의 추궁에 부합하지 않는 진술을 하는 것은 기소된 횡령죄, 증권거래법위반죄 사건의 처리와 관련해 불이익한 처분을 받아 그가 가장 두려웠던 구금의 장기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곽영욱은 당심에서 '하라는 대로하면 내보내 준다고 해서 비자발적으로 진술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점, 곽영욱은 뇌물공여에 관한 검찰 조사 당시 신체적·정신적으로 매우 피폐한 상황에 있어 장기간 구금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었고, 자신과 가족의 재산상 이익, 궁박한 처지를 벗어나기 위해 검찰의 뇌물공여 조사에 협조하며 허위로 진술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또 곽영욱은 검찰 진술을 번복하는 경우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한 상태에 있어 검찰의 의도에 영합하게 허위로 진술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돈을 건넸다는 곽영욱의 진술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만한 신빙성 없어"

사건은 검사의 상고로 대법원으로 올라갔으나, 대법원 제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14일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총리공관에서 미화 5만 달러를 받았다는 혐의(뇌물수수)로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상고심에서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곽영욱의 수사기관 및 법정에서의 구체적 진술내용을 시간적 흐름에 따라 분석해 볼 때 곽영욱이 대한석탄공사 사장 선임 등과 관련해 당시 국무총리이던 한명숙에게 뇌물을 공여했는지 여부와 뇌물의 액수 및 전달방법에 관한 진술은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이어 "뇌물수수 장소로 지목된 국무총리공관 오찬장의 구조, 오찬 참석자 현황, 오찬장에서의 통상적인 의전, 오찬장 주변 경호 및 수행 업무 내용, 곽영욱이 교부했다는 돈봉투 2개의 크기와 두께 등 형상, 당시 한명숙이 착용한 의류와 핸드백 소지 여부 등에 비춰 곽영욱의 진술대로 오찬장에서 동석자나 수행원 등의 눈을 피해 현금 5만 달러를 나눠 담은 봉투 2개를 주고받는다는 것이 가능한지 의문이 드는 점에서 곽영욱의 진술은 합리성과 객관적 상당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또 "곽영욱이 검찰에서 처음으로 뇌물공여 사실을 진술할 당시의 심리적·신체적 상태, 곽영욱에 대한 최초의 혐의 내용과 실제로 기소된 범죄사실 내용의 차이 등에 비춰 곽영욱이 검찰의 수사협조에 따른 선처를 기대하고 허위사실을 진술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따라서 곽영욱이 총리공관 식당에서 대한석탄공사 사장 지원을 도와주는 것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한명숙에게 5만 달러의 뇌물을 공여하고, 한명숙이 이를 받아 뇌물을 수수했다는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곽영욱의 진술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만한 신빙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한명숙#뇌물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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