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2월 19일 대선 결과는 정권교체를 열망했던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박근혜 시대 5년, 이 사회에서 진보를 고민하는 이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오마이뉴스>는 정치, 사회 각계의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진보의 길을 모색하는 기획을 수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말]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전진한 소장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전진한 소장 ⓒ 안호덕

"진보라는 것이 무엇이냐에 대해서 다시 고민해야 한다. 진보는 말그대로 그 시대를 뛰어 넘는 가치다. 지금 진보 진영에서 가지고 있는 가치는 예전의 사람들이 그 시대를 넘어서기 위해 대안적으로 생각했던 가치들이다. 21세기에 맞는 시대정신이 무엇이냐에 대한 고민의 부재가 진보진영의 현재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예전의 가치에 안주하려는 진보, 한마디로 문화지체현상(cultural lag)에 빠져있다고 볼 수 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은 봄이되 봄이 아니라고 했다. 날씨이야기가 아니다. 대선 이후 진보진영의 모습이다. 패배를 딛고 다시 마음을 하나로 합쳐 새로운 세상의 문을 두드려야 할 진보진영. 어디를 봐도 희망의 싹이 보이지 않는다. 거대 야당인 민주통합당은 생계형 정치 정당이라는 비판에도 별반 달라지는 게 없는 모습이다. 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은 서로 앙금만 남긴 채 불안한 휴전 상태다. 지리멸렬한 시민사회단체들 역시 힘들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전진한 소장을 만나 그가 생각하는 진보운동에 대해 들어봤다.

"진보,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www.opengirok.or.kr)'를 모르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 간단하게 소개해달라.
"국민의 알권리 실현과 사회 전반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여 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한 시민단체다. 기록 관리를 전문으로 사는 사람들, 탐사 보도를 중심으로 하는 방송 PD, 기자 등 언론종사자, 시민사회 단체 등 세그룹이 만나서 합치된 이해와 요구로 2008년 10월 9일에 탄생했다. 현재는 회원 870여 명에 이르고 회원의 후원 회비와 민간재단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정부 지원은 처음부터 받지 않고 있다. 정보공개청구가 국민의 평범한 알권리로 자리 잡는다면 민주주의가 한층 성숙되리라는 생각에서 만들어진 단체다."

- 조금 지난 일이기는 하지만 대선 이야기를 안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지난 대선에 대한 소회를 말해달라.
"100만표 정도 차이로 문재인 후보가 이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딱 그만큼 졌다.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왜 졌을까 곰곰 생각해봤다. 우리끼리 재미있고 우리끼리 확신에 차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이 들었다. 이긴다는 생각은 우리만의 언어, 우리만의 소통방식으로 우리들안의 놀이터에서 생각한 환상에 불과했다. 앞으로 제대로된 고민과 반성이 없다면 진보진영에서 정권을 되찾기 어렵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런 생각을 정리하면서 보니까 무슨 근거로 진보진영이 대선에서 이길 것이란 예측을 했을까 되돌아보게 되었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자. 민주통합당의 패인이 뭐라고 생각하나.
"민주통합당은 지역정당을 탈피하려는 노력에 소극적이었다. 김부겸 전 의원 등 몇 사람을 빼면 대부분 지역에 안주해 왔다. 호남에서는 패권의 맹주로서 안일했고, 반대로 부산, 대구 등에서는 헌신성 있는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다. 새누리당이나 보수세력들은 똘똘뭉쳐 움직인 반면 민주통합당은 여러가지면에서 부실했다. 프레임 싸움에서 지역 대 지역의 구도가 아니라 지역 대 가치의 구도를 만들어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민주통합당은 국민들에게 자신들이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정당인지를 얼마나 각인시켰는지 돌아봐야 한다."

- 또 하나 안타까웠던 부분이 통합진보당 사태다.
"민감한 문제라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개인적으로 지난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을 지지했던 이유는 정치인 이정희라는 새로운 아이콘에 대한 희망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련의 과정은 이런 지지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통합진보당 사태는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민주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만들었던 진보의 역사가 한순간에 무너진 사건이었다. 비단 정당의 문제로만 국한시킬 문제만도 아니다. 진보진영 전체가 시대를 뛰어 넘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지 되돌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내부에 반민주적이고 폭력적인 요소들은 없는가 성찰이 필요하다. 전형적인 상향집중식 사업방식은 거대한 도전을 받고 있다.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시대의 조류에 따라 자기 몸을 바꾸면서 가치를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이 지점에서 본다면 진보진영은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 4월 재보선을 앞두고 있다. 여전히 진보진영은 어수선하다. 노회찬 전 의원 선거구 노원병에 안철수 전 대선후보가 출마했고, 진보정의당에서는 노회찬 전 의원의 부인인 김지선 후보가 출마했다. 어떻게 보나.  
"'안철수 현상'은 안철수라는 인물이 철저하게 기득권에 매몰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최연소인 만 27세에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학과장을 역임했다가 이를 버리고 컴퓨터 백신을 개발해 안철수연구소를 만들었고, 다시 카이스트 교수로 옮기는 과정 등 매순간 그의 선택이 국민들에게 감동을 줬다. 교수시절 그는 젊은이들과 소통하면서 희망을 주려고 노력했다. 그런 견지에서 본다면 안철수의 노원병 선택은 의외다. 부산 출마나 차라리 이번 재보선에 출마하지 않는 것이 그의 각인된 이미지를 지켜내는데 낫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진보정의당 쪽 관련해서는 노회찬 전 의원의 의원직 상실이 대단히 부당한 일이지만 부인 김지선씨를 후보로 내세우는 과정이 좀 더 민주적인 수렴절차를 거쳤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과정이 생략되면서 노회찬의 진보적 상징성이 일정부분 반감되었다는 느낌이다."

"일상적인 민주주의 실현 방식 고민해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전진한 소장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전진한 소장 ⓒ 안호덕
- 시민단체에 오랫동안 몸 담은 입장에서 진보진영이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보나.
"진보진영에 젊은이들이 모여들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젊은이들이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한다. 희망이 있고, 활기가 있고, 재미가 있어야 사람들이 모인다. 진보의 가치는 지키되 계속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바꾸어야 할 것과 지켜야할 것, 버려야할 것과 새롭게 만들어나가야할 것들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을 같이 해 나갔으면 좋겠다."

- 마지막으로 정보공개센터에서 시민단체나 진보진영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많은 국민들은 아직 공공기관이 군림하는 존재라 생각한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이제는 4, 5년에 한번씩 하는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가 아니라 일상적인 민주주의를 생활에서 실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주민참여예산제나 주민소환제 등 일상적 민주주의를 확대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제도를 활용하고 이를 적극 확대해 나가야 하는 시점이다.

정보공개청구도 일종의 일상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강력한 방법이다. 이런 방식에 대해서는 일반국민뿐만 아니라 시민단체나 진보진영 내부도 익숙하지 않다.  정치권이나 언론이 제기하는 문제만을 가지고 이슈 파이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궁금해하거나 문제점을 인식하는 사안에 대해 정보를 취합하고, 일반 국민들 눈높이에서 자료를 분석해 낼 때 시민운동이나 진보진영 역시 공감을 얻을 것이고 제 역할을 해 낼 수 있다고 본다.

정보공개센터는 올해 중점사업으로 일상적 국회 감시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뿐 만 아니라 국회 운영 전반에 대해 감시하고 정보공개를 청구해서 많은 국민들에게 알려낼 계획이다.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다양한 주제를 발굴하고 문제를 취합해 가면서 새로운 운동을 고민했으면 좋겠다. 정보공개센터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응하겠다."

한 시간 정도 진행된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래도 봄이 올 수 있는 건 봄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있어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킬 것은 지키면서 새 것을 고민할 때 진보의 생명력이 유지될 수 있다는 전진한 소장의 말이 가슴에 남았다. 조금 피해서 가고픈 주제에도 거침 없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그를 보면서 그것은 단지 말 재주가 아니라 진보의 확신과 신념이 주는 힘이라고 느꼈다. 새로운 생명이 피어나는 봄, 진보가 다시 생기를 품고 기지개를 켤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정보공개센터#전진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의 진보는 냉철한 시민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찌라시 보다 못한 언론이 훗날 역사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