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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사람이 모두 고민하고 있는
어두운 대지를 차고 이륙하는 것이
이다지도 힘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것은
우매한 나라의 어린 시인들이었다
헬리콥터가 풍선보다도 가벼웁게 상승하는 것을 보고
놀랄 수 있는 사람은 설움을 아는 사람이지만
또한 이것을 보고 놀라지 않는 것도 설움을 아는 사람일 것이다
그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자기의 말을 잊고
남의 말을 하여 왔으며
그것도 간신히 떠듬는 목소리로밖에는 못해 왔기 때문이다
설움이 설움을 먹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러한 젊은 시절보다도 더 젊은 것이
헬리콥터의 영원한 생리이다

일구오십년 칠월 이후에 헬리콥터는
이 나라의 비좁은 산맥 위에 자태를 보이었고
이것이 처음 탄생한 것은 물론 그 이전이지만
그래도 제트기나 카아고보다는 늦게 나왔다
그렇지만 린드버어그가 헬리콥터를 타고서
대서양을 횡단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동양의 풍자를 그의 기체 안에 느끼고야 만다
비애의 수직선을 그리면서 날아가는 그의 설운 모양을
우리는 좁은 뜰안에서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항아리 속에서부터라도 내어다볼 수 있고
이러한 우리의 순수한 치정(癡情)을
헬리콥터에서도 내려다볼 수 있을 것을 짐작하기 때문에
헬리콥터여 너는 설운 동물이다

―자유
―비애

더 넓은 전망이 필요 없는 이 무제한의 시간 위에서
산도 없고 바다도 없고 진창도 없고 미련도 없이
앙상한 육체의 투명한 골격과 세포와 신경과 안구까지
모조리 노출낙하시켜가면서
안개처럼 가벼웁게 날아가는 과감한 너의 의사 속에는
남을 보기 전에 네 자신을 먼저 보이는
긍지와 선의가 있다
너의 조상들이 우리의 조상과 함께
손을 잡고 초동물세계 속에서 영위하던
자유의 정신의 아름다운 원형을
너는 또한 우리가 발견하고 규정하기 전에 가지고 있었으며
오늘에 네가 전하는 자유의 마지막 파편에
스스로 겸손의 침묵을 지켜가며 울고 있는 것이다
(1955)

헬리콥터가 이 세상에 처음 나온 것은 20세기 초반이었습니다. 1907년, 프랑스 사람 폴 코르뉴(1881~1944)가 2미터 높이에서 20초간 공중 정지하는 데 성공한 것이 기계적인 헬리콥터의 최초 성공 사례였습니다. 1937년에는 독일 사람 하인리히 포케(1890~1979)가 포케 울프 Fw-61기를 개발합니다. 본격적인 비행이 가능한 헬리콥터로는 포케가 만든 Fw-61기가 최초였지요.(이상 '위키 백과' 참조)

헬리콥터가 우리나라 상공에 처음 나타난 것은 언제였을까요. 그것은 이 시의 2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1950년부터 1953년까지의 한국전쟁 중이었습니다. 헬리콥터가 군사용으로 처음 쓰인 것은 1940년대 후반 영국령 말레이시아에서의 대게릴라전 때였습니다. 한국전쟁은 그후에 일어난 대규모 전쟁 중의 맨 첫 자리에 놓여 있지요. 그런 점에서 한국전쟁은 헬리콥터의 본격적인 각축장이었다고 봐도 될 겁니다.

헬리콥터는 독특합니다. 무엇보다 그 거대한 물체가 수직으로 이착륙을 하고, 공중에서 정지하거나 전후좌우로 움직이는 모습은 '마술'처럼 비춰질 만합니다. 그러니 그 육중한 동체가 "풍선보다도 가벼웁게 상승하는 것을 보고"(1연 5행) 놀라지 않을 사람이 있었을까요. 그 '상승'은 자유를 위한 비상에 다를 바 없었습니다. 화자가 헬리콥터에서 "자유의 정신의 아름다운 원형"(4연 10행)을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겠지요.

이 시의 화자는 "설움이 설움을 먹었던 시절"(1연 11행)을 지나온 듯합니다. 그 설움은 '고민'과 '어두운 대지'를 배경으로 합니다. 화자와 마찬가지로 많은 이가 그 배경 속에서 서러움을 토해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자기의 말을 잊고/ 남의 말을"(1연 8, 9행)을 해왔지요. "그것도 간신히 더듬는 목소리로"(1연 1연 10행) 말이지요.

그런 이들에게 "어두운 대지를 차고 이륙하는 것이/ 이다지도 힘이 들지 않는다는 것"(1연 2, 3행)을 아는 일은 놀라움 그 자체였을 겁니다. 더군다나 그것이 '설움'을 안고 날아오르니 얼마나 기꺼울까요. 그런 점에서 화자가 "헬리콥터여 너는 설운 동물이"(2연 13행)라는 비유를 쓸 때, 그 목소리는 반어적으로 찬탄의 심정이 깔려 있지 않았을는지요.

이 시에서 '헬리콥터'는 자유의 원형질 그 자체입니다. 그것은 "자유의 정신의 아름다운 원형을 (중략) 우리가 발견하고 규정하기 전에 가지고 있었"(4연 10, 11행)습니다. 그것이 날아가는 것은 '자유의 마지막 파편'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 비상은 '자유'(3연 1행)이되, 설움을 품고 가므로 '비애'(3연)입니다. 더군다나 그것은 '자유'를 위한 '마지막 파편'이기 때문이지요.

여러분은 이 작품에서 어떤 결기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으신가요. "고민하고 있는/ 어두운 대지'로부터 벗어나 설움을 던져버리고 진정으로 자유로운 삶을 누리고 싶은 수영의 간절함과 같은 것들 말입니다. 과연 1955년의 그 무엇이 수영으로 하여금 이토록 뜨겁게 자유를 원하게 했을까요.

저에게는 1연 8, 9행의 "너무나 오랫동안 자기의 말을 잊고/ 남의 말을 하여 왔으며/ 그것도 간신히 떠듬는 목소리로밖에는 못해 왔"다는 구절이 범상치 않게 다가옵니다. "자기의 말"과 "남의 말"의 대립은 유창한 목소리와 "떠듬는 목소리"의 대립을 함축하지요. 그런데 그는 지금 잘 알지도 못하는 "남의 말"을 "떠듬는 목소리"로 지껄여온 자신을 돌아봅니다. 그러고는 결심하는 듯합니다. "자기의 말"로 당당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겠다고 말이지요.

수영은 1965년에 쓴 <연극하다가 시로 전향>이라는 산문에서 "나의 진정한 시력(詩歷)은 불과 10년 정도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 글에서 그는 그 출발점에 선 시를 1956년의 <병풍>과 <폭포>로 제시하고 있지요. 이 시는 이들 <병풍>과 <폭포>가 쓰인 바로 전 해에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는 그런 <병풍>과 <폭포>를 예비하는 작품들이었을느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수영이 자신의 말을 스스로의 당당한 목소리로 유창하게 내뱉는 일은 시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세우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1966년에 쓴 <박인환>이라는 산문에서 해방 후의 자신이 "모더니스트들을 추종하기에 바빴"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온전한 정신과 말을 찾지 못한 자의 통렬한 자기 고백이자 반성이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에서 문학으로 전향한 수영이 붙잡고 있었던 것은 "바로 보마"(1945년 작품인 <공자의 생활난> 참조)의 정신이지 않았을는지요. 그것을 위해 수영은 당시로서는 경이로운 신문물인 '헬리콥터'를 비유로 끌어왔습니다. 더듬거리며 남의 말을 해왔던 과거와, 짙은 설움에 젖어 온통 어둠 천지인 세상의 현실로부터 벗어나는 완전한 자유를 꿈꾸면서 말이지요. 자유를 위한 설움 속의 절규가 애달프게 다가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수영#<헬리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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