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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키스패너로 주방용 수도꼭지를 풀고 있다
 몽키스패너로 주방용 수도꼭지를 풀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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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주방 수도꼭지에서 물이 자꾸 새는 데 고쳐주세요."
"……"
"수도꼭지에서 물 새잖아요. 좀 고쳐 달라니까."
"알았어요."

3월 말부터 아내는 주방용 수도꼭지에서 물이 샌다면 고쳐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엉덩이'가 무겁기로 소문난 저는 차일피일 미루었습니다.

"물이 많이 새는 것도 아닌데 그냥 계속 사용해도 되겠네 뭘. 이게 싼 것도 아니고."
"물이 적게 샌다고요? 눈으로 보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알았어요. 그럼 내가 오늘 사서 고치면 되지."

오랜만에 아내 바람을 들어주기 위해 직접 수도꼭지를 구입했습니다. 남자는 나이들면 아내 말을 잘 듣는다고 하는데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연장에 있었습니다. 옛날에 샀던 몽키스패너가 수도꼭지보다 지름이 짧았습니다.

"여보 몽키스패너가 이것보다 작아요."
"그럼 어떻게 해요."
"조금 더 큰 것을 사야죠. 당신이 몽키스패너 좀 사다주세요."

"아니 공구를 당신이 사야지, 나보고 사라고 하면 어떻게 해요."
"오늘은 내가 할 일이 많잖아요. 저녁 때 시간도 없어요."
"참 그것 한 번 고치기 힘드네요. 알았어요. 크기가 얼마예요?"
"집에 있는 것보다 한 치수 더 큰 것 사면 돼요."

 스패너로 주방용 수도꼭지를 풀고 있다
 스패너로 주방용 수도꼭지를 풀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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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어이없어 하는 것 같았습니다. 3년 전 주방 수도꼭지가 고장났을 때도 이 핑계 저 핑계대면서 차일피일 미루었습니다. 결국 아내가 수도꼭지를 사왔는데 대충 보고 잘못 샀다고 닥달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아내는 결국 나섰고, 혼자 고쳤습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제가 직접 스패너를 들고 고쳤습니다. 3년만에 '사람이 좀 된 것'입니다.

"나 사람 좀 됐죠?"
"……"
"아니 3년 전에는 아예 고칠 생각도 하지 않았고, 당신이 사온 게 규격이 틀렸다고 타박만 했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수도꼭지도 직접 사고, 새벽부터 일어나 이렇게 고치고 있잖아요."

"예. 사람 좀 되셨네요."
"앞으로 갈수록 사람이 돼야 될 텐데."
"더 이상 속만 썩이지 마세요."
"내가 무슨 속을 썩인다고."
"그렇죠. 당신은 속을 썩이지 않지요. 지구가 자기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그런가. 아무튼 오늘은 당신을 위해 작은 일을 한 것은 분명해요."
"고맙습니다."

 코브라 풀기를 참 힘들어요
 코브라 풀기를 참 힘들어요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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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에 집이 있기 때문에 집집마다 잠금밸브가 없습니다. 밸브가 하나밖에 없어 수도를 고치려면 사람들 양해를 구하거나 아니면 밤 12시 이후에 혹은 아침 일찍 수리를 해야 합니다. 수도요금도 자신이 쓴 것으로 계산하지 않고 사람 수대로 냅니다. 쉽게말해 '인두세'입니다. 이러니 사람들이 물을 아껴쓰지 않습니다. 자기가 쓴 것만큼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불편합니다. 그래도 다 고치고 나니 아내는 얼굴에 웃음이 돌았습니다.

"그래도 남편답네요."
"그런가."
"고마워요."
"뭐 이만할 일가지고. 앞으로 조금씩 사람다워지도록 노력할게요."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네요. 보세요. 물이 새지 않으니까 당신도 좋지요."
"예."

주방 수도꼭지 고치는 일. 아주 작은 일지만 아내를 아주 기쁘게 해 줍니다. 남편들이여. 아내는 큰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일에 감동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태그:#몽키스패너, #주방용 수도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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