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머나 너 왜 이렇게  살이 빠졌니? 얼마나 빠졌기에 표가 확 난다."
"나 3개월 만에 5kg이 나 빠졌어."
"좋지, 다이어트가 따로 필요 없으니 얼마나 좋아."
"얘 이건 좋은 일이 아니지."
"맞아 좋은 일이 아니야. 힘들어서 빠지니깐 기운이 없어."

지난주 친구들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친구 5명이 만나는데 2명이 손자들을 데리고 나왔다. A는 6개월 된 손자를 유모차에 태우고, B는 4살 된 손자를 걸려서. 좀처럼 나올 것 같지 않았던 친구 A가 손자 보는 몇 달 동안 문밖에도 나와 보지 못했다고 한다. 행여 손자가 감기라도 걸릴세라.

손주 돌보느라 몇 달째 외출도 못했다는 친구

이번에 손자들을 봐주는 두 친구들은 모두 시어머니들이다. 보통은 친정엄마들이 손주들을 많이 봐주고 있다는데 그렇지만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힘들 줄은 알았지만 몰라보게 훌쭉해진 친구의 모습에서 내가 생각했던 그 이상으로 더 힘들었나 보다 싶다.

A가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불만불평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그동안 어떻게 참았을까 싶을 정도로. 그의 얘기를 빌리자면 손자가 손에서 떨어지지 않고, 안거나 업어야 보채지 않는다고 한다.

그 친구는 아들 내외가 금요일이면 손자를 데리러 오는데 저녁을 먹지 않고 온다는 것이다. 이건 정말 안 겪어 본 사람은 모른다. 그까짓 거 밥 한 끼 차려주는 게 뭐 그리 힘들다고 하냐지만 손자를 보는 할머니들은 하루 종일 일에 치여 살기 때문에 간단하게 볼 일이 아니다.

젊은 나이라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60세가 넘은 나이에 그것은 보통 무리가 아나다. 어쩌다 한두 번이면 그럴 수도 있고, 아들, 며느리 내외가 와서 지들이 차려 먹고 치우고 한다면 또 말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런데 친구는 꼭 자기가 차려준다고 하니.

어쨌든 할머니가 손자를 돌보면서 누군가가, 그것이 자식 뿐 아니라 손님이 와도 밥을 차려낸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아들 내외가 오면 저녁상을 차려주고 반찬까지 싸가지고 간다고 한다.

"아들, 며느리 내외한테  말하지. 나 힘드니깐 너희들 올 때 저녁은 해결하고 오라고."
"아니 그런 말을 어떻게 해?"
"왜 못해. 못하는 것은 네가 아직 덜 힘들어서야."
"아니야 많이 힘들어. 그런데 그건 지들이 알아서 해야지. 내가 일일이 어떻게 말을 해."
"요즘 젊은 엄마 아빠들은 애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몰라. 애를 키워본 사람들은 몰라도, 애를 안 키워본 사람들은 힘든 줄 정말 모른다. 직접 안 겪어 보면 절대 몰라." 
"그건 얘 말이 맞아. 직접 애를 안 키워보면 절대로 몰라. 그리고 그까짓 밥 한 끼 차려주는 게 뭐 그리 힘들다고 하지만, 애들도 그거 말 안 해주면 정말 모른다. 네가 그렇게 힘들면 말을 해."

B도 "우리 애들도 주중에 손자 보러 오는데 저녁밥 안 먹고 와. 그럼 나도 얼마나 힘든데" 한다. 내가 "너는 밥 먹고 오란 말 왜 못하는데" 하니, "그러게 나도 못하겠더라. 자기도 아들 장가 가봐라. 그런 말이 쉽게 나오나. 내가 옛날에 우리시어머니한테 섭섭한 말을 들은 것은 쉽게 잊혀지지 않더라"고 한다.

"아니 왜 그렇게 생각을 해. 난 우진이 봐줄 때 두 달 밖에 못 봐주었지만 딸, 사위하고 불러놓고 이야기 했어. 아이 데리러 올 땐 저녁밥 해결하고 오라고. 그것까지 하면 내가 너무 힘들다고". 무언가 선을 긋지 않으면 서로 힘들어질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손주 볼보면서 자식들 밥까지 해대야 하는 요즘 할머니들, 고달프다

두 손자를 키워준 친구도 "처음에는 그런 말이 서운할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은 아예 확실히 해두는 것이 좋아. 그래야 묵은 감정이 안 생겨" 한다. 난 그들에게 "애들 밥까지 차려줄라니깐 너무 힘들다라는 불평을 일삼을 바엔 애들에게 솔직히 말하는 것이 좋지" 했다.

친구의 하소연이 듣기 싫어서가 아니다. 오랜만에 본 그의 얼굴에서는 웃음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고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엇인가 작은 숨구멍이라도 필요해 보였던 것이다. 아들 내외가 금요일 늦게 끝나면 친구 집에서 자고 가는 날도 더러 있다고 한다.

그런 날이면 친구의 몸은 물먹은 솜처럼 천근만근이라고 한다. 친구는 그나마 주말에 쉬어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손자를 잘 봐줄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기는데 말이다. A에게 그런 말을 할 때는 내 감정은 빼고 "내가 힘드니깐 애 데리러 올 때에는 밥 한 끼 정도는 너희들이 알아서 해결하고 왔으면 좋겠다"라고 진심을 담아 이야기 하라고 했다.

 관절염을 앓고 있는 오영은씨 시어머니가 손주 예림양을 돌보고 있다.
 관절염을 앓고 있는 오영은씨 시어머니가 손주 예림양을 돌보고 있다.
ⓒ 오영은

관련사진보기


60대에 들어선 나이에 집 청소, 주방일 빨래 등 살림 하랴, 아기 목욕시키고, 기저귀 갈고, 우유먹이고 우유병 소독하기 등 손자를 돌보는 일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거기에 집안 대소사, 은행의 볼 일 또 아들 내외가 오면 손님상 차리듯 상을 차려내고, 설거지 하고 아이들이 제 집으로 돌아갈 때 반찬까지 싸서 보낸다는 것은 하루 이틀 아니고서야 이겨낼 장사 없을 것이다.

친구가 "나이는 못 속이나보다. 예전 같았으면 이건 일도 아니었을 텐데" 한다. "그러게 말이다. 자식들이 결혼하면 한 가지 걱정이 더 생긴다더니. 아무튼 요즘은 할머니들의 수난시대이다" 하고 말했다.


#할머니들의 수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주로 사는이야기를 씁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