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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는 많은 사람을 만나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이란 표현 중엔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는 의미가 더 강합니다. 같은 계층을 만나면 기기에 맞춰 준비하면 일이 그렇게 힘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 계층의 선만 지키면 될 테니까요. 하지만 계급 계층,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만나야 하기 때문에 시의적절한 순발력이 필요한 것이 전도입니다. 적어도 감당하지 못해 쩔쩔 매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어제(4월 25일) 한 아파트로 전도를 나갔습니다. 저희 부부와 강전윤 권찰이 한 팀이 되었습니다. 갔던 집을 재방문해서 다시 복음을 전하고 선물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한 집이 눈에 잡힙니다. 이틀 전, 수요일 만난 청년입니다. 47세를 청년으로 불러도 될지 모르겠지만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그렇게 불러도 크게 실수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가지고 자녀들이 장성해도, 젊은이가 드문 농촌에서는 50대 중반의 청년회장이 흔하니까요. 당사자들도 청년으로 불리는 것을 기분 나빠하지 않습니다.

이 청년은 좀 특이한 친굽니다. 수요일이니까 24일이네요. 아파트 전도를 하러 다니던 중,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좁은 승강기 안이 담배 냄새로 진동을 하더군요. 누군가 안에서 담배를 몰래 피우다가 내린 것이 분명합니다. 승강기에는 우리 전도팀 일행과 한 명의 남자가 타고 있었습니다. 제가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아니, 누가 예의 없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담배를 피운 게로군. 무식하기 짝이 없는 사람일세. 아무리 담배가 좋기로서니 다른 사람들을 좀 생각해줘야지…."

그때 옆에 바짝 붙어 서 있던 아내가 저를 쿡 찔렀습니다. 바로 앞 문 곁에 서 있는 남성을 눈으로 가리키면서 말입니다. 그 남성이 담배를 피우다가 우리가 타자 얼른 뒤로 감추었던 것 같습니다. 승강기 안에서 담배를 피워 댈 정도면 정상적 사고(思考)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그는 한 다리가 몹시 불편한 듯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은근히 겁이 났습니다. 나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그가 들었다면 내 말을 근거 삼아 시비를 걸어올지도 모릅니다. 그 때 제가 선수(先手)를 쳐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제가 점잖게 톤을 낮추어 타이르듯 말했습니다.

"담배가 좋아도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피우는 것은 좀 그렇지 않아요?"

그가 힐끔 나를 쳐다보더니 갑자가 저자세로 바뀌며 하소연하듯 얘기했습니다.

"아저씨, 미안합니더. 힘들게 살다보니 갑갑해서 미칠 것 같습니더. 술 담배가 아니면 버틸 것 같지 않습니더. 용서해주이소."

저는 잘 되었다 싶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전해서 삶에 희망의 불을 지펴주는 것이 목회자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다시 말을 건넸습니다.

"나는 직지사 입구에 위치한 덕천교회 이명재 목사라고 하는데, 잘 되었군요. 집이 몇 층 몇 호예요? 가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데…."

그러잖아도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고 대화하고 싶은 분이 필요했는데, 잘 되었다면서 아파트 호수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아파트 관리실에 물어볼 말이 있어서 가는 중인데, 10분 후에 자기 아파트로 오시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10분이면 한 집 정도 심방하고 가면 딱 맞을 시간입니다. 15층에 혼자 사는 아주머니 댁을 방문한 다음 가기로 했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60을 조금 넘긴 나이인데 앞을 보지 못하는 분입니다. 15분 쯤 지난 것 같습니다. 그 사내 집을 찾아가서 벨을 누르니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가 부재중이라는 얘깁니다.

전도를 하는 중간 중간 그 집에 들러 벨을 눌렀습니다만 그때마다 인기척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두 시간여를 그 총각 때문에 그 아파트에서 더 지체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가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다음을 기약하며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함께 간 강전윤 권찰은 그 남성이 거짓으로 동호수를 댄 것이 아닌지 의심쩍다고 했습니다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아파트 관리실로 가서 이야기가 길어져서 그런 것 같다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어제(4월 25일)입니다. 몇 집을 먼저 들렀습니다. 커피를 대접받기도 하고 또 가는 집마다 하나님을 믿든 안 믿든 기도를 해드렸습니다.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기도해 드린다는 데 거절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 노총각의 아파트로 가서 벨을 눌렀습니다. 이럴 때면 괜스레 긴장이 됩니다.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혹시나 하고 세 번째 벨을 눌렀을 때, 누구냐며 주인장이 걸어 나와 문을 열고 빼꼼이 내다봤습니다.

"덕천교회 이 목사예요. 오늘은 집에 계시네요."

그는 낮잠을 자다가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그는 얘기할 때마다 답답해서 살맛이 나지 않는다는 말을 약방의 감초처럼 끼워 넣었습니다. 그는 유선방송에서 나온 사람인 줄 알고 문을 열어주었다고 했습니다. 유선방송 선(線)을 연결하기 위해 직원이 나오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어제는 10분 기다리면 돌아오겠다고 한 사람이 두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던데, 어찌 된 일이에요?"

그는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아파트 관리비가 생각보다 훨씬 많이 나와 가서 따지다 보니 두 시간도 넘게 이야기가 이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더러워서 아파트 못 살겠다고 욕을 섞어가며 억센 말을 내뱉었습니다. 이곳 임대아파트로 이사온 지 한 달 남짓 지났는데 다른 데로 이사를 가야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화가 나서 대책 없이 내뱉은 말일 것입니다. 그의 8평 좁은 임대 아파트에는 이불 하나와 냄비, 밥그릇 그리고 수저 한 벌 외에 다른 것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소주 페트병을 비롯해서 우유병이 보였고 한 종이 상자 안엔 다 피운 담배갑이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생명과도 같이 여겨진다는 뜯지 않은 담배가 방 모서리에 몇 갑 놓여 있었고, 먹다 반 정도 남은 소줏병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의 삶의 내용을 순식간에 파악할 주 있는 정경들입니다. 그는 교통사고를 당해 2년 동안 병원 신세를 지다가 퇴원한 지 6개월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술병으로 물 심부름 하다 교통사고로 장애를 갖고 있는 노총각의 물 심부름을 하고 있는데, 패트병이 모두 대형 소주병이어서 오해를 사기 십상이다.
▲ 술병으로 물 심부름 하다 교통사고로 장애를 갖고 있는 노총각의 물 심부름을 하고 있는데, 패트병이 모두 대형 소주병이어서 오해를 사기 십상이다.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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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중간에 강전윤 권찰을 지목하더니 3층 통장 댁에 가서 정수기 물 좀 받아다 달라고 했습니다. 빈 페트병을 가져가서 받아오면 된다는 것입니다. 통장 댁은 늘 문을 열어놓고 다녀서 아무나 정수기 물을 받아가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전도를 나와서 물 심부름을 하기는 처음이라며 어색해했지만, 혼자 가기 어려우면 사모님과 같이 다녀오라고 제가 강 권찰에게 일렀습니다. 그들이 든 페트병은 소주병이어서 그들을 더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대형 소주병을 두 개씩 들고 물 심부름을 간다? 전도인들에게 아무래도 자연스런 장면은 못 됩니다. 전도를 하다보면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들이 돌발하게 된다며 저는 강전윤 권찰에게 다녀 오라고 권했습니다.

단 둘이 남자 그는 청산유수(靑山流水)처럼 속내를 털어놓았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내용을 말할 수 있는지 놀라울 정도입니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배척을 당한 자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시절을 잘 못 만나 이렇게 억을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의 말을 요약하면 대충 이런 내용입니다.

나는 김천 외곽 어모에서 태어나 살아왔다. 김천에서 대학까지 나오고 사업을 해서 많은 돈도 만져봤다. 하지만 세상을 우습게 알고 허랑방탕 살아오다가 그 많던 돈도 다 날렸다. 나의 활동 영역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미국 호주 등 외국에도 숱아게 돌아다녔다. 퇴폐 향략에 빠져 세상을 조롱도 해보았고 주먹 세계에 발을 들여놓아 조직 폭력배 생활도 해 보았다.

그러다가 감옥에도 들락거렸다. 그러던 중 한 목사님에게 전도를 받아 교회에도 다녀보았지만 오래지 않아 신앙에 대해 회의가 찾아왔다. 또 절에도 나가 불공도 드려보았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 않았다. 이젠 인생의 종착역에 다다른 것 같다. 답이 없다.

그가 저에게 특별히 부탁하고 싶은 것은 억지로 전도하려 하지 말고 종종 찾아와서 자기의 말을 들어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자기는 목사든 스님이든 그 누구도 가지고 놀 수 있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는 반 지시조로 말을 했습니다. 주객(主客)이 전도된 형국입니다. 감동을 주어서 스스로 교회 나오게 하는 것이 정도(正道)라는 말에 저는 동의를 표하며 그를 위해 기도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처음에 기도 같은 거 필요 없다며 완강히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에게 목사님이 사람들에게 해줄 것은 기도밖에 없다며 타일렀습니다.

수그러진 그에게 머리에 두 손을 얹고 안수 기도를 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세상, 평안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이 쉽게 풀릴 수 있도록 도와주십사 하고 기도했습니다. 무엇보다다 교통 사고로 불편해진 오른쪽 다리를 온전히 회복시켜 주시고 주 예수 믿고 천국 가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얌전히 기도를 받는 그에게서 불쌍한 영혼임을 확인하니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도움을 청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달라며 저는 제 명함을 손에 쥐여주고 그 집을 나섰습니다. 그 집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구름 낀 하늘이었는데 갑자기 햇살이 강하게 쏟아졌습니다. 오후 늦은 시각에 내리쬐는 햇살이 이렇게 강렬하게 느껴지기는 오랜만입니다.


#전도#소주 패트병#장애인#주공 임대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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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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