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은 무엇에서부터라도 나를 끊어준다
등지고 있는 얼굴이여
주검에 취한 사람처럼 멋없이 서서
병풍은 무엇을 향하여서도 무관심하다
주검에 전면(全面) 같은 너의 얼굴 위에
용이 있고 낙일(落日)이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끊어야 할 것이 설움이라고 하면서
병풍은 허위의 높이보다도 더 높은 곳에
비폭(飛爆)을 놓고 유도(幽島)를 점지한다
가장 어려운 곳에 놓여 있는 병풍은
내 앞에 서서 주검을 가지고 주검을 막고 있다
나는 병풍을 바라보고
달은 나의 등뒤에서 병풍의 주인 육칠옹해사(六七翁海士)의 인장(印章)을 비추어주는 것이었다
(1956)이 시는, 1955년 1월에 창간되어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문예지 구실을 해 온 <현대문학>의 1956년 2월 호에 실린 작품입니다. <현대문학>은 보수파 문학인으로 분류할 수 있는 조연현과 오영수의 합작품이었습니다. 그전에 조연현은 모윤숙과 함께 순수 문예지인 <문예>(1948~1954)를 펴내다가 그만둔 적이 있었는데, 이 <현대문학>은 그 <문예>를 잇는 본격적인 순수 문예지라고 할 수 있었지요.
수영이 해방 직후에 연극에서 시로 전향한 사실은 앞에서도 몇 번 말했습니다. 그때 수영이 문학지에 처음 실은 작품은 그 스스로가 수준 이하의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는 <묘정의 노래>라는 작품이었지요. 그런데 이 작품이 실린 <예술부락>에선 마침 조연현이 주간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서로 성향은 많이 달랐지만, 둘 사이에 이어진 인연의 끈이 제법 공교롭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 작품은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수영 자신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그러나 현대시로서의 진정한 자질을 갖춘 처녀작이 무엇인가 하고 생각해 볼 때 나는 얼른 생각이 안 난다. 요즘 나는 라이오넬 트릴링(Lionel Trilling)의 <쾌락의 운명>이란 논문을 번역하면서, 트릴링의 수준으로 본다면 나의 현대시의 출발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나 하고 생각해 보기도 했다. 얼른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십여 년 전에 쓴 <병풍>과 <폭포>다. <병풍>은 죽음을 노래한 시이고, <폭포>는 나태와 안정을 배격한 시다. 트릴링은 쾌락의 부르조아적 원칙을 배격하고 고통과 불쾌와 죽음을 현대성의 자각의 요인으로 들고 있으니까 그의 주장에 따른다면 나의 현대시의 출발은 <병풍> 정도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고, 나의 진정한 시력(詩歷)은 불과 10년 정도밖에는 되지 않는다. (<김수영 전집 2> '산문', 230쪽)시의 '현대성'을 나타내는 증표의 하나로 '죽음'을 생각한다니, 여러분들로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죽음'을 비단 현대성과 관련짓지 않더라도, 죽음에 대한 수영의 생각은 조금 각별한 데가 있었습니다.
우선 '죽음'은 수영이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은 구절에서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앞에서 소개한, "늘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라"라는 뜻의 '상왕사심(常往死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는 또 <나의 연애시>라는 산문에서, "남자도 그렇고 여자도 그렇고 죽음이라는 전제를 놓지 않고서는 온전한 형상이 보이지 않는다"라는 종잡을 수 없는 말을 적어놓기도 합니다. 같은 글에 쓴, "죽음이 없으면 사랑이 없고 사랑이 없으면 죽음이 없다"라는 구절에 이르러서는 거의 말장난을 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수영이 자신의 삶에서 '죽음'을 중요한 열쇳말로 받아들이게 된 데에는 한국 전쟁 중에 사선(死線)을 넘나든 체험이 중요하게 작용했을 겁니다. 그때 체험한 물리적인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이 그의 내면에 강한 흔적을 남기게 된 것이 아니었겠는지요.
하지만 수영에게 문제가 되었던 것은 그런 '물리적인' 죽음만이 아니었습니다. 육체의 죽음 못지않게 그를 크게 괴롭혔던 것은 정신의 죽음이었습니다. 언젠가 그는 <이일 저일>이라는 산문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 그는 '구공탄 냄새'를 '정신의 죽음'에 빗댄 비유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글에 있는 한 대목을 보겠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나도 모르는 나의 정신의 구공탄 중독에서 벗어나야 할 것 같다. 무서운 것은 구공탄 중독보다도 나의 정신 속에 얼마만큼 구공탄 가스가 스며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 더 무섭다. 그것은 웬만큼 정신을 차리고 경계를 해도 더욱 알 수 없을 것 같으니 더욱 무섭다. (<전집 2> '산문', 115쪽)여기서 말하는 "정신의 구공탄 중독"은 곧 '정신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수영이 이 시로부터 몇 년 후에 내놓은 그 유명한 <사령(死靈)>(1959)이라는 작품의 '사령' 또한 이와 상통합니다. 이즈음 수영에게 '죽음'은 역설적이게도 온전하게 살아 있기 위한 몸부림의 증표와 다름 없었습니다.
이 시에서 '병풍'은 화자에게 "무엇에서부터라도 나를 끊어"(1행)주는 구실을 하는 강인하고 단호한 사물입니다. '병풍'이 "무엇을 향하여서도 무관심"(4행)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 까닭도 그런 강인함과 단호함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겠지요. 그런데 '병풍'은 화자가 "무엇보다도 먼저 끊어야 할 것이 설움"(7행)이라고 하면서 세속의 '허위'로부터 벗어날 것을 주문하기도 합니다.(8, 9행 참조)
그래서일까요. 이 시에서 '병풍'의 이미지는 신비롭습니다. '용'과 '낙일(지는 해)'을 포함하여, 흔히 병풍 속의 산수화에서 안개에 싸여 그윽한 풍취를 자아내는 섬을 이르는 '유도' 등으로 그 모습을 묘사한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시의 흐름상, 병풍의 산수화를 그린 이가 그 자신을 일컬는 말로 '육칠옹해사'(육칠십 세 정도 된, 바닷가에 사는 선비)라는 표현을 쓴 것도 그런 그윽함과 신비로움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을 테지요.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말하는 것은 곧 '삶'과 '생명'을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삶'과 '생명'은 '죽음'과 함께할 때 그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수영이 '병풍'을 통해 '죽음'을 말한 진짜 의도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삶'과 '생명'을 강조하려는 데 있었다는 것을, 이 작품 이후에 나온 <눈>과 <지구의(地球儀)>, <꽃> 등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눈>에서 "살아 있다"가 거듭 반복되면서 강조되는 '눈'의 생명력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1950년대 중반 이후 수영을 사로잡은 최대의 화두는 바로 '생명'이었습니니다. 그런 점에서 이 시는, 수영이 전후의 삭막하고 피폐한 삶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참된 생명의 삶을 살아가는 여정을 잘 보여 줍니다. 죽음을 아는 사람만이 삶과 생명의 참된 의미를 알 수 있다는 것을 수영의 <병풍>을 통해 다시 한번 되새겨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